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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Jun 02. 2024

육교 아래 사진관(2)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요’ 라고 말했어. 괜.찮.아.요 네 음절에 울음이 네 번이나 툭툭 터지려는 걸 꾹꾹 참으며.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침부터 엄마가 고생했고, 아빠도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했고, 아저씨에게도 울지 않는 착한 아이처럼 보여야 했으니까.

실은,
괜찮았을 리가 없잖아.
엄마가 오늘을 위해 사준 귀걸이였는데, 오늘을 위해 아껴줬던 건데. 뱃속을 툭툭 건드리던 울음이 목으로 자꾸 밀려 올라와 눈가를 데우고 볼을 달궜지만 끝내 울지 않았어.
곧 울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를 아저씨가 몰랐을 리가 없지. 아저씨는 내가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을까. 떼쓰고 울면 사진 찍기가 힘들 텐데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고, 수월한 아이를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아저씨가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랐어. 나를 착한 아이로, 어른스러운 기특한 아이로 봐주길 바랐어.

사실은,
울어도 괜찮았었는데.
다섯 살 아이가, 아끼는 귀걸이를 잃어버리면 우는 게 당연하잖아. 어른은 아이를 달래는 게 당연하고. 나는 왜 그런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게 여겼을까. 왜 울지 않고 주먹만 꼭 쥐었을까. 왜 애꿎은 복주머니 끈만 베베 꼬았을까. 괜찮냐고 물어보지도 않는 아빠에게 왜 서운함 하나 느끼지 않았을까.
그날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는 게 우선이라는 그릇된 믿음이 마음 깊이 새겨지던 날이었어. 그 믿음 위에 그 후에도 얼마나 많은 믿음들을 새겨왔는지.

희수야.
너는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사람이었어. 수능 다음 날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어. 좋아하는 오빠가 네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몸이 아플 때도 울었어. 나는 구슬 같은 눈물 방울이 솟아나는 네 눈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지. 어쩜 사람 눈에서 저런 것이 나올까.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앞에 두고 저런 것들을 쏟아낼까. 네 눈물을 지켜봐 준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는지 알 수 없지만, 너는 누가 받아주든 받아주지 않든 울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어.

나는 내가 잘 울지 않는 이유를 환경 때문이라 생각했어. 우는 딸의 마음을 읽을 여유가 없이 본인의 삶에 지친 엄마 아래서 자랐기 때문에, 나보다 더 잘 우는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감정을 삼키고, 분함과 억울함을 삼키고 마는 사람이 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살아온 시간들은 믿음을 확신으로 여기게 했지.

나도 너처럼 울 수 있었는데. 아프다고, 슬프다고, 분하다고 표현할 수 있었는데. 누가 나에게 울지 마라고 한 걸까? 엄마? 아빠? 아니면 어린 동생? 아니, 내 울음을 막은 건 바로 나였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 굵고 영롱한 것들을 실컷 쏟아낼 줄 알던 너인데. 나는 네가 마지막 울음을 토하지 못해 세상을 떠난 거라 생각해. 마지막 울음은 차마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거니.
네 마음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눈물을, 울음을, 네가 차마 언어로 형용할 수 없었던 감정을 누군가가 읽어줬더라면. 읽은 마음에서  파생된 그다음 마음이, 또 그다음 마음이 네게 다른 길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나는, 내 울음을 표현할 언어를 찾아왔고 지금도 간절하게 찾고 있어. 가슴 한 구석에 울음 덩어리로 뭉쳐서 쥐고만 있는 건 너무 괴로우니까. 나는 내 울음의 정체를 알고 싶어.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싶어. 내가 내 울음을 알아주고, 눈물을 흘리게끔 도와주고, 그 눈물을 닦아줄 거야.

한 가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언어를 찾는 과정을 함께 해 줄 존재야. 그게 사람이든 뭐든 상관없어. 아마도 너에게 가장 필요했을, 그 존재를 향한 간절함을 채우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아서, 차라리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아픔을 드러내어도 되는 상대방이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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