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십자로 가로지르던 큰길은 가지처럼 뻗은 작은 골목길들로 이어져 있었어. 서툴게 붓을 잡은 아이가 그린 선처럼 굵어졌다 얇아졌다 비뚤비뚤 아주 제멋대로인 길이었지.
내가 자주 다니던 골목길도 큰길 옆구리에서 흠칫 놀라듯 느닷없이 시작되었어. 굵은 나뭇가지에 불규칙하게 삐죽 튀어나온 잔가지처럼.
그 길을 통과하면 다른 쪽 큰길로 빠르게 갈 수 있었어. 폭은 1미터 조금 넘었을까. 어른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든 정도였으니. 일곱 살 내가 걷고 달리기엔 적당한 폭이었어. 가장 폭이 좁은 곳은 양팔을 벌리면 손끝에 벽이 닿는 정도여서 까슬까슬한 그 벽을 스치며 뛰기도 했어. 길의 가장자리를 쓸며 달릴 땐 내가 다 큰 어른이 된 것처럼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 길에도 삶이 있었어. 담과 담 사이에 마디처럼 자리 잡은 대문들로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나지막한 담 위를 올려다보면 옥상에 빨래가 너풀거리고 있었어. 옥상 난간에 올려진 작은 화분으로, 드디어 핀 하얀 꽃으로 향하던 시선을 위로 훅 올리면 길모양을 한 구름 하나 없는 쪽빛 하늘이 흐르고 있었지.
하늘을 보며 걸으면 마치 내가 하늘색 카펫을 밟고 걷는 것 같았어.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한 두 개 정도 부르며 하늘을 밟다 보면 어느새 반대쪽 출구로 나오곤 했어.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 꼬부랑길로 들어섰어. 아이들은 목적지도 약속도 없이 그냥 걸을 수 있는 존재니까. 두 발이 달린 생명체가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 그걸 산책이라 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듯 앞으로 이동하는 행위를 산책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그것도 산책이었겠지.
그날은,
골목길에 그 남자가 서 있었어. 남자와 마주친 건 그날이 두 번째였을 거야. 무릎이 튀어나온 파란색 추리닝 바지와 목이 늘어난 흰색 티셔츠를 입은, 덥수룩한 장발을 한 남자. 그 남자가 그날 또 손짓을 했어.
이리 와. 100원 줄게. 100원, 갖고 싶지 않니.
싫어요.
싫다고 했지만 100원이 갖고 싶었어. 1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 눈앞에 스쳐갔지. 50원짜리 아이스크림, 10원으로 한 줌 살 수 있는 젤리, 20원짜리 껌. 그러고도 돈이 남으면 얼마 전 문방구에 들어온 주스 기계에서 주스를 뽑아먹을까. 한 잔에 20원이었지 아마. 아무리 그래도 낯선 사람에게 돈을 받아도 될까. 엄마에게 혼날 것 같은데.
고민에 빠진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남자가 입을 뗐어.
그럼 500원 줄까.
100원보다 훨씬 묵직한 500원을 손에 쥐었을 때가 떠올랐어. 공손하게 다리를 모으고 나는 학이 그려진 꿈같은 돈.
그래서 그 남자를 따라 걸었어.
남자는 잔가지 같던 그 길에 또다시 잔가지처럼 뻗은 더 작은 길로 걸어 들어갔어. 성큼성큼 걷는 남자의 발소리와 뒤를 쫓는 가쁜 내 숨소리조차 담기에 벅찼던 그 좁고 좁았던 길. 길 끝에 파란 대문이 있었어. 남자의 옷만큼 낡은 대문. 간신히 남은 푸른빛 두 문짝 아래는 녹이 슬어 갈색 레이스를 덧단 듯했어. 그 동네 그 골목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문이었지.
끼익.
쇠마찰음을 내며 대문이 열리고 이내 마당이 보였어. 남자는 익숙한 듯 곧바로 마당을 가로질러 집과 담벼락 사이 틈으로 들어갔어.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좁은 틈 끝에 나무문이 있었어. 사람 얼굴 크기만 한 불투명 유리창이 가운데에 있는 문은 생긴 게 꼭 우리집 부엌문 같았어. 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우리집처럼 부엌이 있었고 부뚜막이 있었어. 부뚜막을 성큼 오른 남자가 미닫이 방문을 열고 방 한가운데 앉더니 손짓을 하며 말했어.
들어와.
차마 들어갈 수 없었어. 부뚜막을 오르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우리집처럼 금방 성큼 올라갈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 집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어. 주저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남자가 바지를 내리고 팬티만 입은 채로 다시 말했어.
들어와. 500원 갖고 싶지 않니.
싫어요.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내가 울먹이자 남자는 달래듯 말했어.
그냥 와서 나처럼 바지만 벗으면 돼.
싫어요. 싫어요.
잠시만이면 돼.
남자는 거의 애원하고 있었어.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나무문을 지나고, 좁은 틈새를 지나고, 마당을 지나 녹슨 파란 대문 밖으로 뛰쳐나왔어. 잔가지의 잔가지처럼 뻗은 좁은 길을 빠져나와 하늘이 흐르는 골목길을 있는 힘껏 달렸어.
큰길로 들어서서야 비로소 크게 숨을 쉴 수 있었어. 물속에 한참 있다 물밖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처럼 가슴 깊숙이 공기가 들어오도록 숨을 들이마셨어. 숨이 거듭될수록 몸에서 나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지.
도망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동시에 덜컥 겁이 났어.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서. 엄마가 절대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마라고 했는데 돈 준다는 말에 따라가 버렸잖아. 엄마 말을 듣지 않은 나쁜 아이가 되어 버렸어. 내가 나쁜 아이가 된 게 너무 부끄러웠어. 엄마 말을 어기고, 돈에 욕심을 낸 내가 너무 부끄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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