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넘은 뒤에야 엄마에게 비로소 그날을 털어놨어. 이야기를 하면서도 놀랄 지경이었지. 그날의 모든 장면, 색감, 냄새, 피부에 닿던 공기의 서늘함까지 생생하게 기억나서.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말했어.
그랬구나, 몰랐네.
나는, 딸을 낳은 여자끼리 여자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알았어.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있었는지를. 그 남자가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를, 어린 내가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참으며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를.
그 남자가 한 일을 아동성추행이라고 하지. 어른으로 자라오는 시간 동안 어디 그 일 하나만 있었겠니. 자우림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병원놀이 하자고 우릴 옥상으로 불러내 묘한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던 그 오빠’. 그 오빠 같은 사람들이 왜 없었겠어. 마을 사거리에 있던 슈퍼집 둘째 아들. 숨바꼭질한다고 담벼락 사이로 숨어든 내 앞에서 팬티를 내리던 그 장면을 내가 어떻게 잊겠어.
우리 여고 앞에도 많았었잖아. 바바리맨이라 불리던 사람들. 그 사람들, 부지런도 했지. 7시 30분 우리 등교시간에 우리보다 먼저 나와서 등굣길 여기저기 서 있었으니까. 밤 10시 넘어 야자 마치고 나오는 우리를 기다리기도 했으니 밤낮 할 것 없이 성실했네.
우린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깔깔 웃어댔지만 진짜 감정은 숨기고 있었어.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수치심을.
대학생 때는 통학하는 버스 안에서,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출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그들과 마주쳤어. 슈퍼집 둘째 아들들은 대학생이 되고, 아저씨가 되고, 노인이 되어 있었지. 용모 반듯한 학생, 말끔한 정장을 입은 직장인, 평범한 행인의 얼굴을 하고.
나는 지금도 자동차가 길 가에 붙어 주차되어 있으면 그 사이로 지나가기가 꺼려져.
스물여섯 살,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첫 발령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니던 출퇴근 길이 악몽으로 변했던 날이 있었어. 좁은 길가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걷기가 힘든 길에서 마주 오는 차를 피하기 위해 주차된 차와 담벼락 사이로 들어갔지. 들어가고 보니 차 사이드미러 때문에 나갈 수가 없는 거야. 되돌아가려고 돌아선 내 앞에 50대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어. 남자는 빠르게 내 몸을 만지고는 휙 돌아 도망쳤지.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어서 나는 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어. 상황을 인지하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남자의 뒤에다 대고 조용하게 욕을 하는 것뿐이었어.
나쁜 새끼.
정말 그것뿐이었어. 큰소리를 내면 더 무서운 짓을 할까 봐 무서웠거든. 남자가 씩 웃는 게 보였어. 나는 왜 보고만 있었을까. 뒤따라 나가서 더 크게 욕을 했다면, 한 대 때리기라도 했다면 분이 좀 풀렸을까.
떨리는 두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큰길로 나갔을 때 저 멀리 그 남자가 평범한 행인이 되어 걸어가는 게 보였어. 행인이 걷는 길은 언제나처럼 평온했지. 오히려 길이 멀끔한 얼굴로 나에게 묻는 것 같았어.
무슨 대단한 일이 있었냐고.
아니, 아무 일이 없었다고, 그렇다고 하자.
세상을 향한 말인지 스스로를 향한 말인지 모를 말을 삼키는 나만, 색을 잃은 것 같았어. 천연색 세상에서 나만 흑백이었지.
심호흡을 크게 하며 세상의 색을 억지로 삼키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인들 속에 섞여 들어갔어. 나만 홀로 뚝 떨어져 나온 기분이 더 무서웠으니까.
애는 썼지만 내 색은 한동안 천연색을 띠지 못했어. 빛바랜, 한 톤 낮은 색을 띠고 있었지. 다행히도, 그래 다행히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어. 나도 행인, 그 남자도 행인, 우리 모두가 행인이 되어 평범하게 걷고 있었으니까.
평범한 행인이 되어 걷는 지금도 불쑥불쑥 내가 나를 질책해. 왜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었냐고. 왜 하필 거기로 지나갔냐고, 왜 하필 그 버스를, 그 지하철을 탔냐고.
오늘도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당하고 있을까. 누가 홀로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을까. 우리가 당했던, 내가 없는 곳에서 네가 당했을, 네가 없는 곳에서 내가 당했던 그 아픈 일들을 지금도 누군가 겪고 있겠지.
다행히도 이런 이야기를 조금씩이나마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 같아. 관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젠더 감수성 같은 정체를 알기 힘든 모호한 말들이 더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믿어.
이제는 내가 겪은 일들이 내 탓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야 할 나이가 되었어. 아픔을 겪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아니까, 나는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서 너를 볼 것 같아. 그들의 아픔에서 너의 아픔을 볼 것 같아.
너를 대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