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 들어간다는 건 엄마에겐 훈장을 받는 것과 같은 일이야. 뱃속에서 꿈틀대던 작은 생명이 어느 날 세상 밖으로 나와 숨을 쉬고 걷고 뛰더니 어느 순간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교육기관에 입성하는 걸 지켜보는 거지. 그 어느 날 그 어느 순간에 느꼈던 자부심과 뿌듯함도 이기지 못하는 감동에 눈가가 뜨끈해져. 학반과 학번을 부여받는 순간엔 그만한 자격을 갖춘 한 인간을 길러냈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차던지.
우리 엄마도 그랬나 봐. 자식을 처음으로 학교에 보내는 건 마른 나뭇등걸 같던 엄마 마음까지 흔들 정도의 일이었나 봐.
어린 시절 기억 속 엄마는 걸음도 빠르고 손도 빨랐어. 엄마를 따라 걷는 건 어른이 되어서도 힘들었어. 뛰듯이 걸어야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로 엄마는 평생 걸어 다녔어. 팽이처럼 움직이던 손이 지나가는 자리엔 빨래가, 설거지 거리가, 손님이 자르고 간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지. 엄마 손이 지나가고 나면 모든 게 마법처럼 정돈되곤 했어.
미용실을 혼자 운영하며 가사와 육아, 거기다 시어머니 수발까지 해냈으니 우리 엄마 참 대단한 사람이지. 보통 사람의 두 배 세 배 속도로 살아야 했을 거야. 잠시라도 손을 떼면 흐트러지는 하루 살이를 정돈하기 위해선 엄마에게 규칙이 필요했어. 엄마만의 규칙이. 그 규칙은 가장 먼저 엄마에게 적용되었고, 그다음은 내게 적용됐지.
아마 내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엄마의 규칙을 내 것처럼 내면화한 사람은.
엄마의 마음이 딱딱해진 건 아마 이런 환경 때문 일거야.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일상이 무너질 것 같았을 테니. 딱딱해진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져지고 다져져서 나중엔 깰 수 없는 돌덩이가 되었어. 그 돌덩이에 내가 부딪치고 동생이 부딪치고 아빠가 부딪쳤지. 돌이 된 엄마는 더 단단해지지 못하는 것에 불안해하며 평생을 살았어.
그런 엄마의 마음이 내게 봄날 날아다니는 민들레 씨앗처럼 가볍고 보드랍게 느껴졌던 그날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날,
엄마는 읏챠, 하며 포대기로 동생을 들쳐 업고는 미용실 문을 걸어 잠갔어. 내게 책가방을 사준다며 시장에 가자고 했지. 늦은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길을 엄마가 앞서 걸었어. 난 엄마 옆구리에서 달랑달랑 거리는 동생 발을 바라보며 뛰듯이 걸었지.
나는 동생 발이 참 좋았어. 아기답잖아. 아직 제대로 걸어보지 못한 통통하고 보드라운 발바닥을 만지면 그 자리에서 스르르 잠이 들 것처럼 마음이 노곤해졌어. 쪼르르 달려가 동생 발을 만지작 거리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시장에 도착했더라.
익숙한 시장에 들어서서 익숙한 생선 가게를 지나고 익숙한 채소 가게를 지나 시장 가장 안쪽 구석에 있는 익숙하지 않은 가방 가게로 갔어. 가방 가게 아줌마 뒤로 걸린 수많은 가방 중에 내 눈을 사로잡는 건 새빨갛고 네모난 춤추는 요술가방이었어.
춤추는 요술가방!
텔레비전 광고 말미에 울려 퍼지던 말. 가슴을 짜르르 울리던 말. 내 얼굴보다 조금 더 큰 컬러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우던 새빨갛고 네모난 책가방. 그 가방이었어.
가방 뚜껑에 붙은 작 투명한 아크릴 창 안에, 바다처럼 일렁이는 파란 액체 속에 소라, 불가사리, 작은 물고기가 너울너울 헤엄치고 있었지. 춤추고 있었지. 이따금씩 아빠가 데리고 가던 바다가 그 안에 있었어. 바다가 가방에 붙은 게 요술이지. 저 요술은 내가 가져야만 하는 거였어.
엄마에게 저 빨간 가방이 갖고 싶다고 했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줌마가 가방을 가져와서는 요즘 선전하는 가방인 걸 어떻게 알았냐며 보는 눈이 있다고 했어. 엄마는 아줌마 말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대뜸 얼마냐고 가격부터 물었지. 새로 나온 거라 다른 가방보다 비싸다는 아줌마 말에 몸이 움찔하던 찰나, 엄마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게 보였어
그렇게 신기하리만치 단 한 번의 걸림돌 없이 순식간에 내 품에 들아온 가방.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만 보던 것이 내 손에 있으니 꿈이면 깨지 않고 싶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가 입학할 학교를 지날 때 엄마가 말했어.
"학교에 들어가 볼까."
우린 활짝 열린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질러 모래사장과 철봉이 있는 곳까지 들어갔어. 햇볕에 데워진 스탠드에 동생을 앉힌 엄마는 어디서 꺼냈는지 카메라로 나를 찍기 시작했지. 나는 내 키보다 조금 더 높은 철봉에 깡충 뛰어올라 달랑달랑 매달려 앞뒤로 몸을 흔들고 엄마는 그런 나를 카메라에 담았어. 동생은 다 안다는 듯이 스탠드에 앉아 점잖게 눈을 꿈벅이며 우릴 봤지. 엄마는 카메라를 돌려 동생도 찍었어.
나는 우릴 찍는 엄마를 내 마음에 담았어.
봄처럼 생기 있던 우리 엄마. 파하하 웃던 나. 목련나무 아래서 꾸벅꾸벅 졸던 동생.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유는 앨범 속 사진 때문일까,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엄마의 환한 웃음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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