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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Jul 14. 2024

엄마의 카메라(2)


두꺼운 앨범을 보며 생각해. 이 많은 사진을 엄마는 언제 다 찍었던 걸까.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하루를 살며 틈틈이 내 머리를 땋고 내 옷을 사고, 동생을 씻기고, 먹이고 그 모습을 찍고. 꽉꽉 눌러찬 해야 할 일들 사이 습자지 같은 틈을 밀고 들어온 카메라야 말로 요술 아닐까?

엄마 손에 카메라가 들려있었다는 건 내 마음을 아프게 해. 엄마에게 받은 상처를 상처라 느끼는 내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 그럴 때마다 애써 떠올려.

엄마 손에 들려있던 매를.


엄마는 억울함과 분함이 복받칠 때마다 주변에 있는 그 어떤 길쭉하고 단단한 것이든 손에 들었어. 아빠가 허황된 꿈을 꾸며 몇 날 며칠을 들어오지 않을 때, 시어머니가 화냥년이라고 욕을 해댈 때 엄마 마음에 불꽃일었지. 꾹꾹 눌러 담았던 불길은 나와 동생이 싸우거나 내가 친구랑 놀고 싶다고 떼를 쓸 때 거센 화염이 되어 뿜어져 나오곤 했어. 세찬 태풍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무 같던 매가 용케 팔이나 다리에 닿으면 그 자리는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고 피멍이 생겼지. 한참 동안 쓰라렸던 피멍이.
아마도 엄마 가슴에 이미 가득했을 그 피멍이.

매를 떠올리면 매 앞에서 느꼈던 무기력함이 떠올라.  매를 피해 구석으로 몰리던 기분도. 그 공포, 그 아픔.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에게 쏟아지던 엄마의 하소연 끝에 또다시 이어지던 아빠의 매. 아빠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지.
몇 대 맞는 게 좋겠냐고.
한 대도 맞기 싫었어. 우리가 맞는 동안 엄마는 자리를 피하거나 그냥 바라보고 있었어. 속이 시원했을까. 괜히 말했다 싶었을까. 아빠는 엄마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우리를 때리는 것으로 채워주려 했어. 우리는 그렇게 모질게 왜 맞아야 했을까. 장난감 때문에 싸워서? 내가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해서?

희수야.

너는 내가 왜 엄마에게 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했었지. 나 같은 모범생이 혼날 게 뭐 있냐고. 나도 모르겠더라. 엄마가 일하는 동안 동생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내가, 상장으로 벽을 도배하던 내가, 동생 책가방을 챙겨주고 숙제까지 해주던 내가 왜 혼이 나야 했을까. 내가 왜 맞아야 했을까.

엄마가 원망스러워.

엄마에 대한 원망이 차오를 때즈음 카메라가 떠올라. 봄 햇볕 아래 스탠드에 앉아 있던 동생의 맑고 까만 눈동자가 떠올라. 동생이 입고 있던 내가 물려준 스웨터도. 엄마가 일하는 틈틈이 짰던 그 스웨터. 엄마가 땋아준 머리와 장날에 사줬던 귀걸이도 떠올라.

그래서 엄마에게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내 손을 다정하게 잡아준 적이 없었지. 친구와 싸웠을 때 선생님 때문에 힘들어할 때 위로해 준 적이 없었지. 엄마에게 안겨본 적은 단 한 번. 스무 살이 넘은 어느 날이었어. 스무 살이 넘어서도 아빠에게 맞는 내가 안쓰러웠나 봐. 나는 그날 엄마가 안아주지 않았으면 죽으려고 했었어. 딸이 죽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엄마는 알았던 걸까.

엄마에게 고마워,
아니 엄마가 원망스러워.
아니 엄마가 미워.

엄마가 불쌍해.

그래, 엄마가 불쌍해.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은 날들이 3년 넘게 이어지고 있어. 어른이 된 나는 엄마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진짜 어른이 되고 있어.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가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 나는 내 아이가 나처럼 엄마를 어떤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고통받는 일이 없었으면 해.

나는 분명 엄마가 돌아가시는 날 울겠지. 그리고,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 울겠지.
나는 내가 죽었을 때 내 아이들이 울어도 되고 웃어도 상관없어. 단지, 그 웃음과 울음의 의미를 알 수만 있으면 좋겠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건 아이들이 떠올리는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거야. 아이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일으켜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멋지게 한 사람 몫을 다하고 즐겁게 살다 간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엄마를 떠올리니 왜 눈물이 날까.  

왜 엄마는 눈물이 나게 할까.


나는,
자식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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