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 말이 이해가 되는 때
아기를 만드는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비해 쉽다. 임신을 유지하고 아기를 낳기로 결정하는 일은 결심이 필요하다.
출산과 육아를 겪어보니 육아는 출산에 비해 백배 어렵다고 느낀다. 물론 출산할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기의 머리가 예상보다 컸다. 자연분만을 하면서 자궁이 같이 딸려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공포를 겪었다. 그래도 출산은 길어야 이틀이고 육아는 끝이 없어 보인다. 신생아를 케어하며 잠 못 자고 세 시간 단위로 살기 시작한지 한 달. 3.5kg으로 태어난 아기가 5kg이 넘기까지.
이제 한 달이 지났지만 50일의 기적이 생겼으면 좋겠다, 100일의 기적은 과연 올까. 이 아기는 언제 통잠을 자려나 바라게 된다.
나를 닮은 구석이 있어서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자식이지만 피곤함 앞에서는 짜증나고 힘든, 아직은 초보엄마다. 어렸을때는 모성애가 강조되는 사회에서 컸고 자식의 입장이라 '엄마는 당연히 이래야해!' 이렇게 느껴졌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가지면서 엄마라고 꼭 처음부터 아기를 무한정으로 사랑할 수는 없구나를 느낀다. 조건없이 예쁘고 최대한 잘해주고픈 내 자식이지만 힘들때는 힘든거다. 아기의 사랑스러움이 모든 힘듦을 상쇄시키고 잊을만큼 능가하진 않는다. 예쁘지만 힘든. 그게 육아려나? 아기가 빨리 크는건 또 아쉬운데 말이다.
그리고 낳은 정도 있겠지만 키우는 정이 더 크지 않을까싶다. 같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시간이 아기를 품었던 시간보다 더 길테니까.
영아산통으로 새벽에 세네 시간씩 울어서 그 조그만 신생아 목소리에서 쉰소리가 나고 그마저도 안 나올 때 진정 '맴찢'표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새벽마다 남편과 같이 한쪽씩 아기 손잡고 밤을 새우고 있노라면 전우애가 느껴진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기가 아플 때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쓰러워 울고, 팔목이 나가떨어질거 같아 힘들어서 울고, 육아가 남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쉬워보이지 않아 짜증나서 울고 매일 틈나는대로 우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엄마는 울면서 강해지는 건가 싶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엄마로 거듭난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일들이 계속 이어진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날짜는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봐왔던 tv 프로그램은 출산 이후로 챙겨보지 못한다. 나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내 아기.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내 아기. 아픈지, 잠은 잘 자는지, 배변활동은 원활하게 하는지, 불편한 데는 없는지, 밥을 너무 많이 먹는 건 아닌지.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가 제일 잘 알고 챙겨줘야 하는 사항들. 이보다 더 나에게 강력한 존재의 이유를 제공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하나만 키워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둘이나 키우셨을까. 엄마가 되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 문장의 진정한 뜻을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엄마라는 호칭은 잠도 못 자고, 외출도 못하고, 자식을 위해 나를 온전히 버린 순간에서야 얻는 타이틀인 것이다. 이 땅의 자식을 키우는 모든 엄마들, 그에 못지않게 육아에 힘쓰는 아빠들. 모두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