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으로 수육을 준비했다. 고기를 삶는 동안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엄마에게 카톡으로 사진이 한 장 왔다. 젊은 모습의 엄마 아빠가 두 아이와 찍은 사진이다. 한 명은 아빠가 안고 있고 그보다 좀 더 큰 한 명은 엄마 앞에 서있는 단란한 4인 가족의 사진이다. 모르는 사진은 아니지만 갑자기 이 걸 왜 보내셨지? 생각부터 들었다.
"나는 없잖아." 하고 답장을 보냈더니 엄마가 답장을 보내왔다.
"태어나기 전~~"
그리고 1분 후 또 왔다.
"너 없는 생각만 나니?"
뭐라고 대답을 해야 엄마가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궁리해봤다. 두어 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이렇게 보냈다.
"사진을 보낸의미를 저는 못 알아채겠는데요."
더 이상의 카톡 대화는 오고 가지 않았다.
' 내가 또 눈치가 없었나.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걸 그랬나. 원하는 답이 아니어서 엄마도 그 이상 말을 안 하신 거겠지?
하아...... 엄마와 이런 카톡 대화 힘들다...... '
유독 엄마와 감정싸움이 잦았다. 그것도 결혼 후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아이 낳고 두 달 만에 복직을 했고 100일도 안 된 아이는 가정어린이집에서 불안함을 온몸으로 견디며 온갖 바이러스와 싸워야 했다. 요로감염, 모세기관지염, 폐렴으로 한 달에 두 번 입원하는 일도 있을 정도로 자주 아팠다. 그럴 때마다 휴가를 내야 했고 집안 살림도 엉망이고 업무는 더 엉망이었다. 거래처 결제하는데 계좌번호 입력 실수를 해서 엉뚱한 회사에 입금한 적도 있었고 어음 발행도 잘 못해서 호되게 깨진 날도 있었다. 매년 1,2월은 법인결산을 앞두고 야근이 많은 시기인데 아이 낳고 1월에 복직해서 산후조리도 부족한 몸으로 야근까지는 무리여서 수북이 쌓인 원장을 들고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젖 먹여서 재워놓고는 혹시나 아기가 깨는 소리를 못 들을까 봐 작은 조명만 켠 채로 일 한 날이 수두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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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은 일상의 대화를 길게 나누는 것이 아직도 벅차고 힘들다.
엄마는 직장을 관두고 육아만 전념하기를 권유했다. 나는 엄마의 의견을 잘 수용하는 딸이었다. 죽어도 싫다, 못하겠다는 말은 해본 적이 없다. 순수한 어린양으로만 산 건 아니었는데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의사 결정은 엄마의 말에 따른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육아냐 직장맘이냐의 선택의 기로에 서있던 그때도 엄마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내 선택이다. 그런데 이게 엄마와의 감정 대립에서 하나의 원인이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왜 나를 도와주고 싶지 않았겠는가. 아마 당신이 도움되지 않아 더 야속했을 엄마의 마음을 그땐 몰랐다.
아이들이 체격이 남달라서 아기인데도 제법 무게가 있다 보니 내가 안고 다니면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갔다. 걷고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쩍 아이들에게 할머니 잔소리가 시작된다. "엄마 허리 아파. 걸어 다녀. 너 무거워서 못 안아줘."
듣기 싫은 잔소리다. 내 새끼 내가 안아 주는 게 당연한데 왜 그렇게 못 안게 하는지 야속하게만 들린다. 엄마 딸인 내 걱정하느라 한 말인 줄 알면서 이상한 소리 한다고 속으로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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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싸우는 게 지겹고 지치니까 언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가족인데 끊을 수 없는 관계잖아. 용서가 안되면 이해하는 방법도 있어."
이해... 이해라...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든 단어였다. 내가 왜? 왜 항상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거지? 엄마여서 전부 옳은 건 아닌데 말이다.
차별이라고 말하기보다 이제껏 마음이 아픈 자식으로 살아온 나를 지금이라도 알아봐 달라고 투정 부린 건데 안타깝게도 엄마와 나의 래포는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언니 말대로 연을 끊기 전에는 영원히 수평선 바다를 바라봐야 한다.
지금은 코로나 19가 시작되기도 몇 년 전부터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덤덤하게 지내고 있다.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엄마는 나 못지않게 힘든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살고 있으니까. 엄마에 비하면 나는 남편이 직장을 잘 다니고 있고, 아이도 둘 밖에 없고, 시부모님도 안 계시니까. 그리고 나도 딸 둘을 키우면서 내가 엄마한테 그랬듯 나한테 벌써부터 서운함을 드러내는 애가 있으니까.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엄마와의 거리를 다시 새겨 보는 일이었다. 만일 엄마를 아직도 이해하지 않고 살고 있다면 마음의 소리를 낼 뻔했다. 나한테 보낸 사진은 언니들에게도 보내졌고 엄마도 젊고 이쁜 날이 있었다는 얘길 듣고 싶었는데 나한테는 듣지 못해서 아마 서운했던 모양이다. 보상받고 싶은 과거가 내게도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