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속에 나는 나는 날개 달고

무지개 동산에 올라 있는 너를 만났어

by 책사랑꾼 책밥

2017년.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사유는 무뇌아 임신이었다. 마흔에 갑작스러운 임신도 당황스러웠는데 뱃속 아이가 다른 장애도 아니고 머리가 자라지 못해 임신을 유지해 출산을 해도 생명 유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 슬픔, 상실감. 빠른 결정을 하라는 의사의 말은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내 인생도 여기서 마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도 새 생명을 품은 어미라면 죄책감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틀 동안 인터넷을 뒤지고 수술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러 다녔다. 의사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눈물부터 났다. 죄를 지었는데 제발 용서해주세요, 한 번만 살려주시면 안돼요?라고 말하면 들어줄 것 같은 의사를 찾고 싶었지만 아무도 긍정의 답을 내어주진 않았다. 가는 곳마다 초음파를 했고 수술을 권유했다. 15주. 짧으면 짧고 길면 긴 뱃속 아이와의 교감 주기였다. 제대로 태동도 못 느껴보고 허망하게 보낸 아이는 나한테 가장 아픈 세 번째 손가락이 되었다.


가끔 꿈을 꾼다. 어린아이가 안겨 있는 꿈.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다. 아주 병약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은 아이를 내가 안고 있었다.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아등바등 대며 병원을 찾았는데 그곳에 엄마 아빠가 앉아 계셨다. 나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외면하는 부모님이 꿈속에서도 야속했다. 사실 셋째를 임신했을 때 엄마 반응이 딱 그랬다. 둘만 낳아도 되지, 피임 좀 하지, 애들 다 컸는데 언제 또 키우려고 그러니 했던 엄마의 말이 내심 상처로 남았나 보다.


상처가 된 일에 대해 대체로 잘 버리지 못하는 성향이긴 하나 부모 된 자로서 내가 관리를 잘 못해서 일어난 일인 만큼 남 모르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그까짓 거 이제 잊어버리고 살렴.' 했었다. 그까짓 거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엄마 앞에서는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종종 꿈을 통해 보여주는 걸까?



어쩌면 어제 만난 아이는 오래 걸렸지만 무지개 동산으로 가던 길에 이제 괜찮다고, 잘 있으라고 인사하러 왔던 게 아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