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품은 있는 게 나쁘지 않다.
사치라는 단어는 어감부터 사나워서, 입에 담는 것조차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서 명품이라는 단어를 차용한다. 하지만 명품이라 불린다해서 명품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사치품일뿐이다. 없어도 되는 것, 굳이 없어도 되는 것, 넘치는 것이자 불필요한 것. 그래서 사람들은 사치를 감춘다. 아니라고 말한다. 검소함 뒤에 감추고,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사람의 삶이란 효율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사치 없는 삶은 너무 각지고, 너무 비릿하다. 감정이 배제된 삶은 오래가지 않는다.
사치는 모든 삶에 한 점쯤 있어야 한다. 그 점이 지나치면 허영이 되고, 과하면 가식이 되지만, 잘 고른 하나는 오히려 그 사람을 말해준다. 누구나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말을 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사치품 하나가 그 사람의 개성을 증명하고, 삶의 결을 다르게 만든다. 일상을 관통하는 아름다움이 반드시 실용적일 필요는 없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있으면 삶이 조금 더 기분 좋아지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사치다.
나이에 맞지 않는 사치품은 어색하다. 어린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을 걸치면,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흉내에 가깝다. 반대로 늙은 사람이 젊은 취향을 따라잡으려 하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사치는 무엇보다 자기 삶의 깊이와 균형을 따라야 한다.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을 고를 줄 아는 감각. 그 감각이야말로 진짜 품격이다.
사람들은 종종 남을 의식해 사치를 소비한다.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 타인의 기준에서 얼마나 높게 평가받을까. 그런 사람들에게 사치는 소모품이 된다. 유행이 지나면 버리고, 조금 닳으면 바꾼다. 그러나 진짜 사치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예의이며,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에 대한 기대는 크다. 하지만 모든 명품이 사치인 것은 아니며, 모든 사치가 명품일 필요도 없다. 값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이는 어릴 적 처음 산 시계를, 어떤 이는 젊은 날 첫 월급으로 산 가방을, 혹은 책상 서랍 속 만년필 하나를, 몇십 년이 지나도록 곁에 둔다.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 사람의 시간과 선택이 묻은 유물이고, 기억의 껍질이다.
평생을 두고 소중하게 여길 사치품 하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것은 삶의 반복 속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중심이 되어준다. 계절이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환경이 변해도, 늘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물건 하나. 그것은 말없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다." 사치는 자기 자신을 잊지 않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사치품은 반드시 노력해서 얻어야 한다. 누군가에게서 선물 받거나,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들여 얻는 사치는 결국 부담이 된다. 몸보다 큰 옷처럼, 불편하고 과하게 느껴진다. 수고 없이 손에 넣은 물건은 감동이 없다. 진짜 사치는 땀 위에 놓인다. 밤을 새우고 번 돈, 스스로를 이겨내며 모은 돈, 나를 닮은 시간을 견뎌낸 끝에 얻게 된 물건. 그래야 그 물건은 나를 닮고, 나는 그 물건에 애정을 갖는다.
사치란 결국 애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