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먹은 날

by 신서윤

과일 하나 먹은 게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마트에 가면 사계절 내내 색색으로 쌓여 있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이고, 누군가에겐 어릴 적부터 아무렇지 않게 먹어온 평범한 과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무화과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마흔을 코앞에 둔 어느 날에야 비로소 무화과를 처음 먹었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다. 왜 나는 단 한 번도 그것을 먹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특별히 싫어했던 것도 아니고, 알레르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선택되지 않았을 뿐이다. 사과와 배, 귤과 포도처럼 늘 손이 먼저 가던 과일들 사이에서 솔직히 말하면, 내 삶에서 무화과는 ‘과일’이라는 범주 안에 제대로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무화과를 먹던 날의 장면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다. 일부러 기억하려 애쓴 것도 아닌데, 그날의 빛과 공기, 접시에 놓인 무화과의 빛깔까지 함께 떠오른다. 장소는 평생교육원의 수필 수업 시간이었다. 그 교실에서 나는 가장 어린 학습자였고, 함께 앉아 있던 분들은 하나같이 부모님 연배이거나 그 이상인 분들이었다.


수업 쉬는 시간, 그분들은 집에서 가져온 간단한 음식을 나누는 걸 좋아하셨다. 과일이나 떡들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그 소소한 나눔의 자리는 따뜻했지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늘 어색함이 먼저였다. 감사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순간들. 내가 아직까지도 익숙해지지 못한 풍경이다. 싹싹하게 어울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회가 있다면 정중히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드는 건 아마도 내 기질 때문일 것이다.


그날도 작은 접시에 통째로 올려진 무화과가 하나둘씩 놓였다. 자줏빛 껍질과 둥근 형태의 과일을 보며, 나는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무화과라는 과일과의 첫 대면이기도 했기에, 낯섦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 다른 분들은 집에서 사과나 배를 나누듯 아무렇지 않게 손에 들었지만, 나는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내가 그 질문을 누군가 특정한 사람에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치 혼잣말처럼, 허공을 향해 물었다.

“무화과는 어떻게 먹어야 하나요?”

잠시의 공백도 없이 여러 목소리가 돌아왔다. 그냥 통째로 베어 먹어도 되고, 껍질이 신경 쓰이면 얇게 벗겨도 된다는 말들. 그 짧고 다정한 설명들 속에서 나는 괜히 안도했다. 과일 먹는 법을 물어보며 쭈뼛거리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손에 든 무화과를 반으로 갈랐을 때, 그 속은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붉었다. 촘촘히 박힌 씨들은 과일이라기보다는 어떤 생물의 단면처럼 보였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조금 낯설고, 그래서 한순간 더 망설이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한 입을 베어 물었다. 달콤함과 풋내가 동시에 퍼졌고, 부드러움 속에서 오독거리는 식감이 살아났다. 내가 알고 있던 어떤 과일과도 닮지 않은 맛이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더 또렷하게 남는 맛, 한 번에 정의할 수 없는 감각들이 혀 위에서 겹쳐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늦게 이 과일을 만났을까. 무화과는 그 시간 동안 한결같이 존재했을 텐데, 나는 삶의 많은 장면을 지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입에 올렸다. 선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쳐 지나간 것들,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순간과 사람들처럼.


무화과를 먹는다는 건, 단순히 새로운 과일 하나를 알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삶에 너무 늦게 도착한 어떤 세계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날 먹은 무화과의 맛이, 여전히 입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무화과를 한 입 먹으며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조금은 설레는 일이라는 것도. 인생의 절반쯤을 살아왔다고 느끼는 나이에, 아직 처음 겪는 맛이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무화과는 삶의 어떤 순간을 닮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수수하고, 특별히 눈에 띄지 않지만, 속을 들여다보고 직접 맛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지나쳤고, 누군가는 아직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누군가는 끝내 모른 채 살아갈지도 모를 어떤 경험들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무화과를 사 먹는다.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화과를 먹을 때마다 그 첫날이 함께 떠오른다. 늦게 알게 된 것들, 뒤늦게 시작한 마음들, 그리고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를 ‘처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모름을 잘 받아주셨던 이름모를 어른들의 따뜻한 다독거림도.


과일 하나 먹은 게 뭐 대수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에는, 분명히 ‘무화과를 처음 먹은 날’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내가 아직도 변할 수 있고, 아직도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준 하루였다.



하루가 걸린 자리: 처음 먹는 맛은, 내가 아직 변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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