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나는 동시 청탁을 늘 전화로 해왔다.
주변에서는 “요즘은 다 문자로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나는 굳이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직접 듣고, 그 안에 묻어나는 온도와 호흡을 잠시라도 느끼고 싶었다.
짧은 인사 한마디 속에도 그 사람이 지닌 결이 드러나곤 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가 청탁을 받을 때 가장 기분 좋았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예의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이유를 밝히고,
부탁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정성 어린 목소리.
그 진심이 고스란히 담긴 전화 한 통이 늘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인지 ‘청탁’이라는 말은 문자보다 직접 전하는 목소리와 더 잘 어울린다고 오래도록 믿었다.
그 믿음 덕분에 나는 몇 해 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문자로 청탁을 보내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하루를 겨우 넘긴 날이었다.
평소처럼 단단한 마음을 다져 전화기를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굳이 전화를 왜 하느냐”던 살짝 쓸데없다는 비꼼이 들린 말들이 떠올랐고,
“어차피 대표자만 기억하지, 누가 누구 전화를 했는지 기억도 못 한다”던 조언도
문득 귓가를 스쳤다.
맞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전화를 걸었다.
싫었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돌아보니 그것은 어쩌면
작가들의 육성을 직접 듣고 싶었던
나만의 작은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자를 보내고 나니 마음은 예상보다 더 허전했다.
단체문자로 보내면 더 간편하고,
서로에게 덜 부담이 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정중하고 예의를 갖춰 문장을 다듬어 보냈다.
하지만 ‘후루룩’ 보내진 단체문자가 화면에 남겨진 순간,
문득 나도 결국 모두와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동안 지켜온 방식에서 잠시 벗어난 것뿐인데
어쩐지 오래 붙잡아온 내 마음의 습관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나간 듯했다.
그럼에도 오늘 보낸 문자 몇 통이
내가 그동안 걸어온 전화의 시간까지 지우는 것은 아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품어온 관계의 온기,
작가들의 고유한 목소리에 기대어 나눴던 짧은 순간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오늘은 단지 마음이 조금 지친 날이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청탁을 전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전화든 문자든, 결국 중요한 건
상대에게 건네는 마음의 방향일 테니까.
다만 오래도록 지켜온 습관을 잠시 내려놓은 오늘의 기록이
내게 작은 쉼표가 되어주길,
그리고 내일의 나는 다시 조금 더 단단해져 있기를
그렇게 조용히 바라본다.
하루가 걸린 자리: ‘전화’라는 습관을 내려놓은 날, 마음이 먼저 허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