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사소함을 가장한다

by 신서윤


소소한 만남 사이에서는 소소한 기쁨과 소소한 상처와 소소한 실망이 따른다.

긍정보다 부정이 더 많다는 건 아무래도 나의 기질인 탓으로 돌리겠다.


11월의 금요일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바쁘다.

하루하루가 바쁘지만 하루 일정이 겹치는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꼭 놓치기 싫은 일정들만 겹쳐 앉는다.


한 곳은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였고, 한 곳은 그런 시를 쓰는 사람들의 자리였다.

딱 봐도 한 곳만 가기엔 아쉬움이 남았다.

심지어 시를 쓰는 사람들의 자리엔 내가 그동안 눈여겨보았던 출판 관계자가 온다는 지인의 귀띔과 함께 시간 되면 꼭 오라는 메시지도 서로 다른 이들에게 연달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갈 수가 있을까, 챙김이란 배려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기에, 그 초대가 더 고맙게 느껴졌다.


어쨌든 아침 10시부터 준비해서 부탁한 세미나 준비부터 진행까지 모두 마치고 연구자들의 뒤풀이는 성공적인 세미나였다는 기분 좋은 마무리와 함께 맛있는 고기는 구워지고 있었다. 세미나 용품을 정리하고 내 나이를 떠올리며 잠시 멈칫했지만. 늦게 도착한 저녁 자리는 옷으로 옆자리를 차지한 몇몇 띄엄띄엄 놓여있는 의자들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같이 고생한 진행자들과 함께 모여 건배 한번 할 수 없이 뿔뿔이 흩어져 처음 또는 어색한 이들과 함께 앉은자리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들 자신들의 지식을 나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재밌었는지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 탓인지 조금은 지적인 이야기와 먼 질문들을 나이 많은 아줌마인 난 툭툭 던져내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할 것 인가 블라 브라블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듣다 왜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할까 겁내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며, 나도 모르게 툭 던져 버린 질문.

"근데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면 안 되나요? "

이런 질문을 던지고 나니 지금까지 세미나에서 나누었던 학술적이고 벤야민적이고 아도르노적인 이야기들은 뭐가 되는 건가.

나 분위기 참 못 맞추는구나.

앗차! 싶었다.

상대방에 눈동자, 찰나의 흔들림. 이걸 동공 지진이라고 하던가.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질문은 받아본 적 없겠지. 너무 쓸데없이 원초적인 질문일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풍경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활기가 있었다. 누가 고기를 그리 열심히 서로 구워주겠는가.


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에서 떠나 시를 쓰는 작가들에게 갈 시간이 다 되어 갔다.

술이 좀 들어가고 이야기의 범위가 깊어질 뿐 아니라 옆 테이블까지 넓이도 확장되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기 직전 난 오늘의 소감이라 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저는 세미나나 학술대회 오면 너무 재밌어요. 답 없는 이야기들을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그들은 유수한 대학을 나온 똑똑한 사람들이다. 심지어 수도권 대학 교수들이니 내 말에 들어있는 행간의 의미를 느꼈을 거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내게 정말 즐거웠다. 과장이 아니다.


다음 자리로 이동하며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늦게 간 나머지 공간의 행사는 마무리 단계였고, 이어진 자리로 장소는 옮겨졌다. 익숙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미 채워진 식탁에 배를 채우고 온 나도 재밌는 이야기들이 넘치는 자리가 신이 났다.


어찌 보면 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지도 몰랐다. 그저 조금 더 지금 사는 사람과 가까운 이야기들이 걸어 나왔다. 그전에는 조금 높은 곳에서 떠다니는 이야기들이었다면, 이곳은 조금 더 낮은 곳으로 말들이 내려와 사람이 닿는 땅과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나는 그 둘 다 모두 재미있었다.


그러다 우울증, 뭐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작가분들은 요즘 우울증이라고 병원에 가서 약을 먹는 게 참는 성향의 문제로 설명하려는 이야기. 그렇게 몇 사람은 우울을 성향의 문제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 말은 오래된 시선의 씁쓸한 잔향처럼 들렸다. 예전 어딘가에서 스쳤던 말투가 겹쳐 들려 익숙하게 느껴졌다.

거기서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아프면 약을 먹어야지 왜 참고 견디느냐 요즘 약 좋아져서 부작용도 적다는데 왜 꽁으로 앓을까 그들이 얼마나 힘들면 세상이 던지는 부정적이고 날 선 사회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찾으러 가겠냐는 이야기를 던졌다.

내 말에 그저 좀 더 참고 견뎌야 글도 쓰고 예술도 하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들이 답으로 달려왔다. 거기서 난 또 참았어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게 아닌데 글 안 쓰는 사람들은 약 먹고 나아야 되는 거 아닌가 살아야 하는 게 먼저 아닌가 하는 나의 말. 대화의 흐름은 잠시 멈춰 섰다.


예전에 스쳐 지나간 나의 개인사가 문득 떠오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황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알지 못하면서, 맞네 틀리네, 강함과 약함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야기로 또 반복해서 주는 상처. 이제 그만 듣고 싶은 그저 그런 생각이었다. 우울증 약을 먹었던 난,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취약한 인간으로 규정된 기분이었다.


취약하고 불쌍한 이들이 가는 정신병원이라는 낙인의 자국은 남기기 싫다는 숨은 말의 뉘앙스들. 그런데 가는 나약한 이들과 나는 다르다는 그런 말들은 때때로 마음의 결을 비껴간다. 나도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러면 얘길 하지 왜 안 했느냐며, 나를 향해 말할 테지. 여러 경험 끝에, 그런 말은 결국 약점으로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오랜 시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무언가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그 둘을 다 겪어보고 나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자리였다.


나도 우울증 있었는데 약 안 먹어도 버텼어. 약 먹는 사람들은 그걸 좀 못 참고... 참을성의 문제라며, 그런 문제들을 예술로 전환해야 한다는 식의 말들. 그들의 우울이 나의 우울과 같을 거란 생각이 너무 속상했다. 다행히 그들은 죽지 않았지만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태를 성향의 문제로 치환하는 사람들을 보며 드는 슬픔.

오래된 낙인의 그림자가 문득 스친 것뿐일지도 모른다.


헤어지는 자리에서 누군가는 다른 이들의 글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의 기대와 대답의 결이 미세하게 어긋났다.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만 남았다. 또 언젠가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그땐 또 지금의 이야기가 기억이 날까 싶다. 나도 모르게 흐르는 말들이 강이 되어 간다.


가까운 자리에서도 즐거운 자리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결을 모른다. 그래서 상처가 나고, 그래서 생각이 자란다. 오늘의 감정도 아마 그렇게 쓸렸을 것이다. 불편함도 글이 되고, 스침도 문장이 된다. 그리고 한 손 가득 들렸던 과거의 내 약들이 떠오르는 이 밤도 잊지 못할 것이다.



하루가 걸린 자리: 나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나는 다시 '나’를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