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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Sep 27. 2022

우리 집 맥가이버

'모헤어' 가 뭐예요?

맥가이버.


어떤 상황에서도 맨손으로 주변의 소도구를 활용해서 사건을 해결해 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미국 드라마로 국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TV에서 보던 맥가이버가 우리 집에도 있다.


손재주가 좋은 남편은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능숙하게 잘한다. (요리는 별론으로) 집안일 중에 전통적으로 남자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전기 작업이나 공구를 사용하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집안 구석구석 고칠 곳을 눈에 담아두었다가 한가한 주말 오후 마음먹고 작업을 하곤 했는데,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터라 어떤 때는 해가 떨어질 무렵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구축 아파트인 우리 집은 겉으로는 꽤나 멀쩡해 보인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부엌을 포함한 실내는 웬만큼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서 필요한 부분은 남편이 직접 손을 보겠노라 하고 도배만 하고 들어왔고, 다만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외부 창호가 집주인이 이 아파트 분양받을 당시 그대로 알루미늄 새시라는 점이었다. 기타 다른 인테리어 비용은 일절 쓰지 않기로 했지만 외장재인 새시만큼은 최신 것으로 교체하자고 합의를 보고 견적을 받던 날, 구조상 기존 새시를 드러내려면 베란다 바닥 타일까지 깨야해서 공사가 꽤 커진다는 기사님의 솔직한 말씀에 감사한 마음으로 깔끔하게 단념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얘기하자면 우려했던 바와 달리 우리 집 알루미늄 새시는 다행히 아직 건재한데, 여기에는 비결이 있다.


전업 집사 생활을 앞둔 어느 날, 스무 해 넘게 든든하게 이 집에서 비바람을 버텨낸 새시에 남편은 우주의 기운을 불어넣겠다며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다. 일명 모헤어 작업. 모헤어? 모에어?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잘 속는 나를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세상에, 그런 단어가 있냐며 바로 검색을 해 봤다.  


있었다.


'각종 창틀의 틈새를 차단하여 공기, 먼지, 벌레 등의 침투를 방지하여 단열, 기밀, 방풍, 방음 기능을 높이고 쾌적한 실내공간을 연출합니다.'라는 어느 블로그의 친절한 설명과 예시로 든 사진을 보자마자, "아~ 이거~ 뭔지 알겠어!"라고 했지만 어쩐지 한 발 늦은 느낌이었다.


그는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무려 200m짜리 모헤어를 주문했고, 그렇게 온 집안 새시 틈새를 철두철미하게 막기 시작했다. 기존에 오래된 (한 번도 갈아 낀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모헤어를 떼어내고 새 모헤어로 교체하는 이 작업을 할 때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먼지 날린다며) 문을 닫고 하는 바람에 작업 과정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둘둘 말려있던 모헤어가 거의 없어질 때쯤 깨달았다. 이걸 해 내다니, 이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200m 모헤어가 반정도 남았을 때 찍은 사진

꼼꼼한 성향인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자기 손으로 뭔가 만들어가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해결이 될 때까지 온 힘을 쏟아붓는다. 어쩐지, 모헤어 작업을 했다는 날에는 유난히 피곤해하더라니...


우리의 보금자리를 가꾸는 일 또한 집사의 당연한 책무로 생각하는 사람. 매사 쾌활하고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한편, 어떤 일을 시작할 때면 진지하고 계획적이고 완벽하게 해 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


"맥가이버, 당신을 우리 집 집사로 공식 임명합니다."         

우리집 맥가이버는 ㄱr끔 별도 봅니ㄷ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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