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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Sep 28. 2022

"어디서 귀뚜라미 소리 들리지 않아요?"

귀촌 생활의 로망

* 알리는 말씀: 이번 글에 다소 혐오스러운 묘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부득이 살생을 범하였지만 자연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헤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입니다. :)


창문 가를 스치는 스산한 가을바람에 얼굴을 맞히며 읽고 있던 책을 펼쳐 들었다.

고요한 가을밤

도심 한 복판이지만 밤공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사방이 고요한 틈을 타고 바깥의 풀벌레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이 맘 때쯤이면 등장하는 귀뚜라미의 귀뚜르르 소리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귀뚜르르-귀뚤 소리가 너무나도 가까이에서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로 위장한 기계음인가 싶어 방에 놓여있는 오디오와 천장의 에어컨에 귀를 가까이 대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설마, 귀뚜라미 소리겠어!' 하는 마음에 다시 집중하여 책을 집어 들었다.


"귀뚜르르-- 귀뚜르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귀뚜라미 소리와 매우 유사한 내가 눈치채지 못한 어떤 종류의 소음일 거라고 단정 짓고 급히 거실에 있던 남편을 불렀다.


그가 방에 들어오자, 또 한 번 멈추는 소리. "아무 소리도 안 나는데?"라고 하는 순간 다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


"악! 세상에, 여기 귀뚜라미가 있어. 어떻게 방 안으로 들어왔지??"


나는 방 한 구석에서 귀뚜라미를 발견해냈고 그는 들고 있던 수건으로 목표물을 조준하여 냅다 내리쳤다. 살생을 방조하는 입장에서 어정쩡하게 서성이며 방생해 줄까? 하는 생각을 언뜻 했지만, 깡충 위로 날아 올라 집안 다른 곳으로 도망갈 것 같은 끔찍한 생각이 들어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다음, 사체 처리의 문제가 남았다. 세상의 모든 벌레를 싫어하는 남편이 큰 용기를 낸 만큼 나도 일조를 해야 했다. 야심 차게 부엌에서 나무젓가락을 가져와서 "예전에 바퀴벌레도 내가 이렇게 처리했잖아~"라고 외치며 어떤 방법을 통해 귀뚜르르 귀뚜라미를 보내주었다. 두 눈을 질끈 감은채.




남편이 집사 선언을 하기 전부터, 아니 어쩌면 연애 시절부터 우리의 지향점은 같았다. 복잡한 도시 생활을 이만 끝내고, 한적한 소읍에서 살자는 것. 이를테면 귀촌생활 말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입성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부모님 두 분마저 서울 분들이라 달리 고향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없었다. 친구들이 명절에 시골 가는 게 그저 부러웠을 뿐이고 그네들이 들려준 극심한 명절 교통체증 후일담마저 샘이 났으니 말이다. 가끔,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먼 친척이 계시는 강원도 작은 마을에 들르는 날이면 마치 여기가 나의 고향인 듯 친척 분이 태워주시는 오토바이를 타고 읍내 곳곳을 돌아다니고, 계곡가에 내려가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시골집 마당 뒤편에 핀 봉선화 꽃으로 열 손가락 마디마디 물들이던 일까지, 하나하나 소중했다.


남편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버지의 고향인 시골 바닷가 마을에서 보냈는데, 수박 서리 철에 보초를 서면서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바라본 일이나 바닷가에서 여기저기 눈만 돌리면 널려있는 조개나 낙지를 수월하게 긁어 담았던 일 등, 나의 여름방학 체험형 학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진짜 시골살이에 대한 썰을 신나게 풀어내곤 한다. 고향 마을에서 하루 종일 밖에서 뛰놀다가 집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을 빨갛고 엄청나게 큰 동그란 해가 저 멀리 들판 너머로 뚝 떨어지는 때로 알아차렸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정해진 바 없다. 하지만, 언젠가 어느 시골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싶다.


뭘 먹고살지 생계를 이어갈 방법도 난제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앞에 닥친 난관은 사실 시골 살이에서 필수 불가결하게 등장하는 나방, 거미, 풀벌레, 귀뚜라미인 것을... 도시에서 갓 내려온 객이 시골 주인을 수건으로 내리친다든가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솔직히 가장 우려스럽다.




얼마 전 친정에서 하룻밤을 보낼 일이 있었다. 씻고 편안하게 TV를 보던 중에 거실 끝에서 뭔가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는데, 그 역시 귀뚜라미였다.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급하게 아버지를 호출했고, 방에서 맨 손으로 달려 나오신 친정아버지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그리고 우리가 말릴 겨를도 없이 사뿐히 오른발을 갖다 대셨고 간단하게 휴지를 활용하셨다.  


깜짝 놀란 우리는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를 쳐다봤고, 눈으로 얘기했다.


"우리 과연 귀촌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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