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다정한 시간들

by 수수

올해 초 이 곳에서의 유일한 친구와 허망하게 작별했다.

그 곳에서 평안하길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느라 여유가 없던 내 형편과

아이를 낳고 육아에 바빴던 친구의 사정상

서로 만날 날을 살피다가 잡은 약속은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당일 날 미뤄야만 했다.

친구와의 마지막 메세지

하지만 다시 연락하겠다던 친구 대신

예전에 딱 한 번 뵈었던 친구의 남편 분에게서 온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친구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루시는 꽃을 짊어지고

친구와는 미국에서 어학연수 시절에 처음 만났다.

당시 갑자기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집에 있는 재료로 대충 떡볶이를 만들어 줬었다.


내가 잠시 일본에 살았을 때는

친구가 순두부찌개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같이 살던 언니들이 재료를 기꺼이 꺼내 주고

거의 다 만들어 줬기 때문에

무사히 식탁을 차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친구와 가족들을 정식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내 새로운 가족과 친구의 가족이 식탁에서 마주하는

그날을 상상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날은 이제 영원히 상상 속에만 남아 버렸다.


남편분은 먼 길을 떠난 친구를 대신해

다른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갑자기 친구를 잃은 참담함에 주저앉을 겨를 없이

다른 친구들에게 이 먹먹한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에 짓눌렸다. 너무 어렵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 떠나보낸 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 위에

후회를 더 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부고를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어학원 선생님의 애도

친구들은 저마다 비극적인 소식에 슬퍼했던 것 같다.

나는 괴로운 소식을 전하게 된 것을

반복해서 미안해했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나를 위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비탄에 잠긴 이 여성은 소파 위에 누운 채 친구가 저녁을 준비하면서 내는 활기찬 소리를 들으며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숟가락이 그릇에 탁탁 부딪치고 냄비가 달각거리는 소리가 난 뒤에는 음식 냄새가 났다.
그것은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아늑한 휴식이었다. 자, 이런 게 바로 좋은 선물이다.
-론 마라스코, 브라이언 셔프 <슬픔의 위안>


할 수만 있다면 모두를 초대하고 싶었다.

많은 말 없이 다만

소파를 내어주고, 식탁을 내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친구를 잃은 친구 곁에서

우리들의 친구를 진심으로 애도하면서

함께 보내주고 함께 슬퍼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식탁 앞에 앉아 생각한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해서.

어쩌면 앞으로는 설레는 만남보다는

고통스러운 작별만 남아있는 건 아닐까.

꽃냥 무지

가만히 식탁을 쓰다듬어 본다.

내 마음을 식탁에 담아 선물하고 싶어 졌다.

나의 다정한 사람들에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