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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Oct 27. 2021

그와 나의 언어장벽

행간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을 기막히게 알아채기를 타고나 피곤한 나에게


인터내셔널 커플이 갖는 어려움을 생각할 때 흔히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혹은 어느 한쪽은 반드시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난관을 생각한다.

어느정도는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동안 항상 이런 의견에 대해 크게 동의해오지 않았다. 왜냐면 같은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과도 드럽게 말이 안통하는 경우가, 말귀를 드럽게 못알아먹는 경우가 늘 있기 때문에, 커플의 관계에서의 언어는 반드시 그 언어의 종류가 달라서 커뮤니케이션이 어렵다고 할 수 없음을 오래 겪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다르게 생각한다. 실제로, 아직까지 Flo와 나의 대화의 언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어-그와 나 모두에게 외국어- 로 소통하는데 있어서 언어가 달라 말이 안통해 답답하다고 느낀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모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는 물론 대단한 장점이 있다; 상대가 말귀를 못알아먹고 있을 때 다양한 표현으로 다르게 여러번 재차 설명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거나,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 또한 상대가 이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틀릴 가능성이 거의 없게 잘 표현해내고 상대의 이해를 도와줄 수 있다던가; 뭐 이런것들 등등. 그렇기 때문에 정말 이나라말 별로이지만 독일어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우리 둘 중 하나는 모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가끔 실제로 겪는 "language barrier"를 더욱 최소화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Flo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 내가 독일어를 좀더 편하게 말하게 되는 게 보다 현실가능성이 높은 이 현실을 받아들여 오늘도 열심히 공부한다.;;


이런 우리에게 최근 보다 심각한 언어장벽을 확실하게 깨닫게해준 말다툼이 있었다.

김치를 담그기로 한 날, 며칠전 사두었던 배추를 꺼내 씻고 있는데 그땐 아무생각없었던 배추가 다시보니 너무 심하게 오스트리아 배추였다.

왼쪽= 오스트리아 산 배추/ 오른쪽= 소위 중국배추로 알려진 아시아 스타일 배추

겨울이 온다고 나름 포기김치를 담그겠다고 생각했으니(고작 배추 두개로 김치하면서;) 저렇게 길쭉한 배추로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아, 하나는 짧고통통한 배추가 그래도 필요할 것 같았다. 어쨌든 그날 장을 보러가기로 했기 때문에 배추하나 더 사와서 금방 절이면 될터였다. 그래서 배추를 씻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나: "아무래도 이렇게 생긴거 말고 통통한 배추 하나 사야될 것 같아."

그: "오늘 배추를 사겠다는 말이야?" "무슨 말인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줘."


이런 그에게 난 어이없는 표정으로 '오늘 김치를 담그기로 했는데 그럼 배추를 오늘사지 언제사겠다고 내가 말하는거겠니? 뭐가 이해가 안된다는건지 내가 더 이해가 안된다.' 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나와 그의 너무도 다른 말하는 습관과 이해능력을 여실히 보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게 비단 독일어와 한국어라는 다른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확연한 특성과 사용법,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간의 언어습관이, 평생 이 다른 두 언어를 사용해오고 그 문화속에서 살아온 그와 나의 '언어적 습관과 이해'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냥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이해와 어프로치의 차이인지, 아님 그냥 나와 Flo의 성격차인지;; 100%확신은 안선다.)


한국말 원어민인 나는, 대화하는 '성인' 상대와 나 사이에 이미 사전에 형성되거나 공유된 이해, 정보, 계획 등을 바탕으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중복된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는 편이다. 이미 오늘 아침에, 어제, 이번주에 몇차례에 걸쳐 무엇무엇인가를 하기로, 얘기가 되었다면 상대도 동일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 말을 알아먹는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위에서 내가 그에게 한 말 속에서는 [우리 오늘 김치하기로 해서 저번에 배추사놨잖아. 근데 지금 씻으면서 보니까 안되겠어, 다른배추 하나 더 사서 해야될 것 같아. 우리 어차피 장보기로 했으니까 언능 사오면 되겠지?] 정도는 상대가 당연히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한다. 난 지금 다섯살짜리 애랑 얘기하는게 아니지 않니.


독일어 원어민인 Flo의 주장은, 독일어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세분화되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언어다. 표현이나 단어나 말하는 방식...등등이 그 언어구사자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고 정확하고 자세하게 표현되도록 하게 돼있다. (독일어가 가진 (가끔 얘네들 정신나간거 아니야 라고 느끼게끔 하는) 미치도록 구조화되고 규칙적인 틀 뿐만 아니라 이들이 말을 하는 방식이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언어학자가 아닌 내가 그냥 느끼는 바로 표현하자면 언어의 특성도 물론 있지만, 이 집단 내에서 합의되고 그렇게 실제 쓰여진 언어적 습관, 크게는 문화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그에게 내 말은 필수적인 정보들이 매우 누락된 abstract한 문장으로서, 언제-어디서-왜(무엇을 위해) 배추를 사겠다는 건지 듣는 사람=본인 이 명확하게 알아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다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사람인 나는, 그리고 눈치가 드럽게 빠르고 말귀를 냅다 잘 알아듣는 피곤한 사람인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재차 설명하는 것을 불필요하다 여기고,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이 우리가 이미 얘기했던 '그거'에 대한 거야-라고 연결고리를 확실하게 짚어주는 그 친절함이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독일 사람은 그는, 상대가 하는 '말', 귓가에 들리는 말을 가지고만 대화한다. 행간에 담긴, 뱉어내지 않는 문장 같은 건 읽어낼 수 없고 그것 또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라고 굳이 여기지 않는다. 중요한 정보는 그 말 속에 모두 다 구체적으로 담겨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나 쓸데없는 추측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 낭비나 머리굴림을 방지하는데 좋다.


혹시 글을 읽다가 답답해서 이런 사람이랑 어떻게 사냐며 혀를 끌끌 차고, 가슴을 팍팍 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말다툼을 통해, 언어가 가지고 있고 그 사용자에게 알게모르게 끼치는 그 영향력과 파워에 대해 발견하게 된게 난 일단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이 답답한 남자의 말귀를 알아채는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내 삶의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쓰는것 보다, 그리고 나또한 평생 자연스럽게 익혀온 언어적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 위해 애쓰는 것 보다, 그냥 가끔 조금 못알아먹는 그의 질문을 귀찮게 여기지 말고 그저 다시 설명해주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을 또한 배우게 됐다.


가끔씩 난 못됐다. 그냥 반복해서 말하고, 다시 설명하면 되는 것을 왜 그게 싫은걸까.

눈치 빠르게 척척 알아듣는 내 기준으로, 나처럼 그러지 못하는 그 사람을 나보다 못하다 여기며 무시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작용하고 있는 거구나 생각됐다. 상대가 내 말을 못알아 듣는 건, 듣는 사람의 이해가 부족할 수도,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화법의 문제일수도 있는 공동의 책임이다.

그러니 나에게 필요한  보다 친절한 화법과 어떤 질문도 귀찮아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있는 튀틀리지 않은 착한태도이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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