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할머니의 열 세살
소피의 나이 열 셋이던 시절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가만히 서 있는 사람, 친구의 팔짱을 껴고 꺄르르 웃는 사람까지도. 그냥 이유 없이 모든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내가 쳐다보고 있는지 모른 채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그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성별에 상관없이 각자에게 모두 다른 색으로- 다른 형태로 주어진 그 에너지를 말이다.
한번은 길에서 혼자 서 있던 아저씨를 본 적이 있었다. 나이는 서른 대여섯 살로 보였는데, 단순히 그 아저씨의 머리카락의 수가 서른 대여섯 가닥 정도였기에 친구랑 그렇게 재미로 불렀었던 것 같다. 참 뭐든 재미있고 깔깔대던 시절이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머리로도 숨을 쉰다는 것을.
집에 가자마자 친오빠 개리에게 이 소식을 알렸지만, 코웃음을 치며 믿지 않았다. 엄마는 신생아 때만 머리로 숨을 쉰다며 시력검사를 다시 받아야겠다고 한숨을 쉬셨지만, 분명 똑똑히 목격했다.
아저씨의 하얗게 드러난 머리 피부의 살결들이 오르락 내리락 움직였던 것을. 마치 밥을 많이 먹었을 때 내 배가 볼록 튀어나와 숨을 쉴때마다 움직이듯이 말이다.
그 외에도- 아저씨의 눈가의 주름, 한쪽만 올라간 입꼬리, 갈색 손톱, 깔끔하게 접은 셔츠의 카라.. 등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아저씨가 세상에 드러낸 그리고 드러내지 않은 아주 작은 비밀들까지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 땐 어려서, 그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곧 어른이 되어서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의 찰나를 넘어 인생을 엿본거라고 말이다.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참 좋은 사람이라는 에너지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에너지를 마주하며, 누군가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폭은 더 넓어졌다. 여전히
낯선 에너지를 만나면 경계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금은 쉽게 알아채게 되었다.
내가 들여다 본 누군가의 에너지. 그건 내가 표현하는 다른 말로는 '그 사람의 인생의 주름'이다. 나이테처럼 또는 피부의 주름처럼 에너지마저도 인생을 보여주는 그만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당연,
인생의 주름이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늘 누군가를 만나던 그 사람의 고유한, 본인도 모르게 새어나오고 있는 그 에너지들이 오래오래 빛바램 없이 간직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단 한번도 쓸모없는 에너지를 엿본 적은 없으니까.
우는 사람, 웃는 사람. 화가 난 사람, 평온이 가득한 사람. 그 모두에겐 고유한 에너지가 존재하며, 그건 바로 자신과 외부 세상이 공존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세상에 꼭 필요한 에너지이다.
그렇기에
당신의 존재가 없으면,
그 자리에 비어버린 당신의 에너지는
그 누구도 똑같이 채워낼 수 없다.
소피는 그렇게 믿고 일생간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사실 그 가운데 가장 어려웠던 건 소피 자신의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사고가 나던 그 마지막 일생의 날,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에너지를 똑똑히 바라보게 되었다.
형형색색의 정말 아름답던 그녀 자신의 에너지. 그 색들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뒤로 한 채 소피의 찰나는 또 그렇게 지나갔다.
소피는 속삭였다.
아, 내가 마주하고 엿본 그 수많은 에너지들이 내 안에 이렇게 살금히 녹아들었구나. 바로 그 색들이 모두 모여 나의 에너지가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