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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Jul 20. 2024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해외이직기)-10

인생 2막, 머나먼 유럽에서

떠난다라는 말에 영원함이 깃들었던가. 떠난다는 말에는 꽁꽁 숨겨진 원초적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고향을 떠난다란 말은 고향이 그리울 거다로 들리기도 한다. 떠난 고향이 그리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다시 떠났다. 떠남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니 나는 내가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 시간을 한평생의 벗으로 삼고 싶기에, 나는 난 곳인 대한민국을 잃어야만 한다. 한 끌의 따스함과 즐거움이 시간에 깃들 수 있길 바라는 아주 단순한 마음으로 말이다.


10편


1. 모든 문제의 해결은 어쩌면 단순함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으로서의 여정을 위한 내 선택들이 결국, 한 발 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입사와 퇴사인 것을 보면 말이다. 생각의 극치는 그래서 단순함인 것만 같다. 끝없는 그 생각의 끝에서, 우리는 단순함으로 결정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의 끝은 퇴사, 그 간결하고도 단순한 한 마디로 남겨질 테니까. 직장생활의 극치도 결국 단순함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우리는 복잡하게만 지내는 게 아닐까. 아프면 놓아야 하는데, 붙잡으려 하니 더 아프다. 직장생활이라고 다를 것은 없다. 인생 속에 직장생활이 쏙 담겨야 하는데, 직장생활이 위에서 인생을 짓누르니 아프지 않은 게 이상하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면 태어남과 죽음이다. 우리 인생 앞에선 모든 것이 자그마해진다. 한끌의 따스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삶이라면 다른 것들을 '잃어야만 하더라도' 내겐 족하다. 단순한 삶은 그래서 어렵디 어렵다. 


2.  더 이상 덜어낼 것 없는 단순한 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쓰고 지움이 있었을지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글에 타고난 재능이 없는 탓에 나는 단순한 문장을 감히 쓸 생각도 못했다. 근데 글이란 건 써나가기 위해 지워야만 한다. 쓰고 지움이 긴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손이란 놈은 부단히 움직인다. 반복되고 반복되다 보니 손은 단순해진다. 단순함은 그래서 극치일 수밖에 없나 보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는 중에도, 종이는 채워져 나간다. 치고 나갈 필요는 없다 그냥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채워질 테니까. 글쓰기도 삶과 다르지 않다. 직장생활도 글쓰기와 다르지 않을 테다. 모든 것은 삶 속에 있다. 시작과 끝은 삶 속에서만 존재할 테니. 그래서 나는 이 글쓰기를 멈출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건 내 삶을 위함이니까.


3.  전문 작가가 아닌 탓에 나의 글은 중구난방이다. 글은 단순해야 하는데, 능력이 없는 탓에 극치는 고사하고 주절주절 길어만 진다. 하지만 이런 중구난방에도 진심은 담길 수 있을 거라 감히 기대한다. 그렇게 혼자서 소망하며 이 글은 양심 없이 그리고 몰염치하게 써져 왔다. 해외이직기를 보고 궁금해서 클릭한 많은 분들의 시간을 뺏은 죄에 대해선 한 없이 죄송하다는 말씀을 이렇게 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이라도 이직기라 쓰인 누군가의 주절거림을 진심으로 읽으셨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 깊이 감사드린다. 제 인생을 바꾼 계기는 단순함에 있었으니까. 해외로의 이직을 결심한 것도, 해외에서 느낀 나의 본능적 즐거움과 재회하고자 함이었으니. 물론 그 단순함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시간들이 존재했었어야만 하는 것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지워가면서 알게 됐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우연들이, 필연이었음을 이렇게 그 시간이란 놈들이 오고 가야만 알 수 있듯이. 결국 시간이란 놈은 한평생의 벗으로 대해야만 하나보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 부담은 갖지 마시라. 


4. 끝장에 이르러서야 고백하지만, 해외로 떠나는 것이 두려웠었다.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고향을 잃은 내게 기댈 곳이라곤 가족 하나뿐인데, 그 가족을 혹여나 못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슬펐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지만, 평생을 밖에서 보낼 사람처럼 미리 슬퍼했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게 아니라, 잃어야만 했다. 잃어야만 새로운 시간을 오롯이 맞이할 수 있을 테니. 그래서 잃어야만 한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될 테니. 나는 그렇게 한국에서의 지난 시간들을 이만큼 멀리서 두고두고 볼 수 있게 됐다. 함께할 순 없어도, 함께했던 시간이 달아나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 조악한 끄적임의 제목을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라고 지었다. 잃어야만 했고, 잃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누구에게나 이런 것들이 있을 테다. 누구에게나.


5. 떠난다라는 말에는 영원함이 깃들었던가. 잃는다는 말에는 영원함이 깃든 것만 같다.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나와 당신의 삶이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없는데, 다른 게 있는들 그게 중요한가. 직장에서의 시간도 한 발짝 두 발짝 물러서서 보면 전부 다 같다. 오늘의 내가 없이는, 내일도 없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나를 포기하지 말자. 그러니 우리 모두, 각각의 나를 잃지 말자. 잃는다는 건, 영원할 테니까. 진부하디 진부하다. 첫사랑이 떠났다란 말보다, 첫사랑을 잃었다라는 말에 나는 눈물이 왈칵 난다. 마치 삶이 멈춘 것처럼 그리고 다시는 그 시간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오고 가는 시간 속에서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가는 것 아닐까 싶다. 부담은 갖지 마시라,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 말이다.


잃고서야 얻게 되는 것들이 있다. 기대 못했던 시간들이 나의 눈을 채운다. 

그래서인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즐겁다. 내게 필요한 건 즐거움, 그 끌만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Alšovo nábř. 110 00, 110 00 Staré Město, Czech



직장 때문에 나의 시간을 포기하진 마시라. 나의 시간을 위해선 직장을 바꿀지라도.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지금도 결국 순간일 테다. 해외로의 이직을 통한 설렘과 장단점 등의 일반적인 내용이 불행히도 글에는 담기지 못했다. 난 곳을 '잃어야만 하기에'. 나는 단지 난 곳이 아닌 곳에서, 이 순간을 그리고 지금을 마주할 뿐이니까. 단순함, 그 극치를 위해서 한 끌의 즐거움을 위해서. 


나의 쓰고 지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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