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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Jul 04. 2024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해외이직기)-7

인생 2막, 머나먼 유럽에서

해외이직기어야 글이 해외이직기인지 갸우뚱하실 분들이 많을 같다. 본디 글에는 재주와 재능이 없어, 하고 싶은 얘기를 둘러 수밖에 없는 같다. 조악한 글은 어쩌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써진 탓에, 마음이 하고 싶었던 얘기가 깊숙이 꾹꾹 담겨져 있어서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낼 수밖에 없는 같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얘기들이 자꾸 채워진다. 하지만 해외이직기-1부터 지금의 7까지는 아닌듯해도 '해외로 떠남'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마음과 시간의 연결임을 양해 부탁 드린다. 부족한 글을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께 이런 설명조차 없이는 안될 것만 같다..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무례함에 죄송함을 더하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심장이 터질 듯하게 힘을 줘 본 사람은 안다.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힘을 줘야 하는지. 물론 나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이 생각 없음에 몸도 가벼워지는 걸 보면 수영은 참 미묘하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시간이 바꾸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야 만 하는 것들도 있다. 치사하지만 시간만 바뀐다고 되는 게 아닌 것들도 있다. 그래도 힘은 빼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인생은 오래동안이어야 할 테니. 


7편 계속


1. 해외로 떠나고 싶을 때는 그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떠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의욕은 넘치는데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데, 모든 걸 다 가지고자 했다. 단 하나도 놓쳐선 안되고, 놓치면 마치 죽는 사람처럼. 떠난다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떠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단, 떠남으로 잃는 것에 마음이 더 컸다. 친구들과 떠나기로 한 여행에 혼자 함께 하지 못하게 되어, 그 추억을 재미를 나 혼자만 못 느끼면 어쩌나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그 느낌 말이다.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시간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미 왔는데, 오늘을 모르면 내일과 어제는 연결되지 않을 테니까. 편집증적인 이 타고난 기질은 지금도 나의 온 곳들을 채우고 있다. 책장, 서랍, 옷장, 휴대폰 속 앨범 등등등. 버려야 하는데도 이상하리만큼 놓질 못한다. 기억도 잃어야만 되는데 끝까지 붙잡고 있다. 그래서 앞을 잘 못 보나 보다. 타고난 나의 기질이 이러니, 내가 어떻게 해외로 떠날 수 있었을까. 기억을 잃을 자신도 없는데 말이다. 오지도 않은 추억과 기억을 어떻게 잃을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는다. 정리를 해야 되는 걸 아주 잘 알면서도.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는 이런 흔적을 남기며 정리를 좀처럼 하지 않는 나를 그래도 사랑해 주신다.


2. 온몸으로 표현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 나의 말 한마디에는, 그 내뱉음이 있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탓에 조금 느리다. 말이 느리다 보니 행동도 느리다. 그러다 보니 혼자 걷는 걸 좋아한다. 혼자서 창밖을 한참을 바라보는 것도 참 좋아한다. 종종 자석같이 꼭 붙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혼자 움직이다 보니 혼자만의 리듬은 어쩌면 내겐 당연하다. 그런데 이 세상은 내가 사는 삶인가? 같이 해야만 하는 삶인가?. 혼자 하는 리듬은 타인 속에서 언제부턴가 엇박자였던 것 같다, 나에겐 항상 정박자였는데 말이다. 나는 느리고, 남들은 빠르다. 나의 말은 더 느리고, 남들의 말은 더 빠르다. 한참을 생각하고 다듬고 내뱉는 그 한마디가 나오기까지의 수고로움을 남들이 알아줄 필요는 없었다. 그건 남 이전에 나를 위한 말이었으니. 그런 내게 들리는 빠르고 짧은 가벼운 말들이 어찌 달가울 수 있을까. 이 달갑지 않음에 대해서도 나는 온몸으로 표현하지 않았기에, 나의 리듬과 합쳐지지 않는 리듬들에도 내색 않았다. 안간힘으로 혼자만의 리듬을 지키려고 했던 그 수고로움 들은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느리다는 건 나다움이었다. 근데 그런 나를 버려야만 한다고 한다. 느림을 버리면 빠름인가? 나는 아직도 이 답을 알지 못한다.


느리게 창밖을 바라볼 때만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Biltstraat 83, 3572 AK Utrecht, Netherlands



3. 직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이직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문제라고도 생각했다. 나의 문제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직장의 문제라고 여전히 생각했다. 그리고 직장 속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이직은 필연적이었다.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니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런 와중에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은 있었나 보다. 그 돈이 뭐길래, 내겐 문제였던 직장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다녔었는지. 이직은 필연이라면서도 지금 있던 직장보다는 좋은 점이 있는지를 뭐 그리 급하게 따져보았을까. 안위와 안락함을 놓칠 진정한 자신은 어쩌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갔다. 20대는 그렇게 속절없이 30대가 되었다. 겹겹이 쌓인 모순을 보니, 직장도 직장의 그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다 문제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 내일 없는 이런 오늘이 다시 나의 내일이 될 것만 같아서. 나는 '그때'의 나도 아닌 것만 같다. 나는 나를 이대로 잃는 건가? 안간힘을 쓰던 나는 어디로 갔나. 나는 나를 위해 어디로 가야 하나, 아니 무얼 해야 하나. 느렸던 내가 언제 이리 급해졌나. 머리가 아찔하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은데, 모순을 모순해야 하는 것과 다른 건 무엇일까.


8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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