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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Jul 02. 2024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해외이직기)-6

인생 2막, 머나먼 유럽에서

1편 https://brunch.co.kr/@paolo/31

2편 https://brunch.co.kr/@paolo/32

3편 https://brunch.co.kr/@paolo/33

4편 https://brunch.co.kr/@paolo/34

5편 https://brunch.co.kr/@paolo/35


첫걸음은 그래서 무겁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반은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다. 익숙함에 절여 지낸 시간들이 나를 꽁꽁 싸맨다. 시작하기 조차 어렵다. 시작은 반인데, 시작할 엄두조차 쉬이 내지 못한다. 생각에만 그 칠 공산이 크다. 새해에 낯선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선언적이면서도 공허한 것도 결국 생각에만 그치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우리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하게 걷고 그렇게 비슷하게 생각한다. 새해의 선언은 다 어디 로들 갔나. 시간은 돌아보지도 않고 저만치 서둘러 가는데, 시작 없는 생각에 그치기만 하니 나는 몽상가인가 한량인가?. 나를 위한 걸음, 그 진정한 시작은 그렇게 나를 위한 잃음이어야만 했다.


6편


 1. 해외로 떠나보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론 내가 난, 대한민국도 잘 알지 못한다. 세상은 좁으면서도 넓다. 이렇게나 좁았나 하다가도, 이렇게도 넓었나 하기도 한다. 인생이 짧으면서 길고, 길면서도 무척이나 짧듯. 난 곳도 잘 모르면서, 해외는 무슨 해외냐란 반응은 아주 자연적이다. 대한민국에 무수히 많은 직장과 무수히 많은 직업으로서의 일들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아니, 다 알 수가 없다. 몸뚱이는 하나고, 시간은 이리 성실히 만 가는데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산업을 종횡하며 맛보았던 나의 일자리들에선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내일 없는 오늘이 나에겐 이리도 무기력한데, 오늘 없는 내일은 무척이나 요원하다 그리고 섭섭하다, 오래 전의 약속들이 말없이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서운하다. 그래서 해외로 떠나보기로 했다. 앞으로는 덜 서운하고, 덜 섭섭하고 싶은 어쩌면 단순할지 모르는 이 마음에. 


 2. 천근만근의 일을 생각에만 맡기다 보니, 생각도 지치고 피곤한지 느슨해진다. 게으름은 내 것인 줄 알았는데, 과로한 탓에 생각도 혼자 일하기를 멈춘다 마치 나 혼자 뭐 하는 거냐고 따지며 파업이라도 하는 듯이. 이 느슨함이 오기까지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떠남이 있었다. 단순하게는 직장일 것이다. 이 글이 해외이직기이기에. 하지만 수많은 시간의 떠남이 있었다. 직장의 시작과 끝을 돌이켜보면, 입사와 퇴사로 잘라질 것만 같지만 좀처럼 잘 잘라지지 않는다. 시작과 끝을 생각해 보면,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도 미묘하다. 아마, 감정이 담겼기 때문일 테다. 거기에 시간이 그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특정 해에 내가 가졌던 어떤 감정에, 그 시간 전체가 달리 해석되기도 하니까. 


3. 감정이 변하면 결국 지나가버린 시간 자체가 변해버리기도 한다. 상처만 한가득 남긴 채 떠나 버린 그 사람이 몸서리치게 보고 싶은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시간 때문 일 테니까. 다닐 때는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던 곳이, 떠나고 나면 너무나 그리운 곳으로 마치 고향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들과 가지 못할 공간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의 그리움처럼. 그리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나는 조금 느슨해지기로 했다. 직장을 떠나며 흘렸던 눈물과 아쉬움, 직장을 옮기며 가졌던 기대와 희망, 떠남에 얽힌 시간과 감정은 아직도 덧 난 상처처럼 가슴속 저 깊이 얽히고설키어 딱지처럼 굳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그냥 조금 느슨해지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새살이 나지 않을까란 단순할지 모르는 이 마음에.

2017, 2018, 2019년에 이 풍광을 똑같이 바라보며 느꼈던 설렘, 원망, 아쉬움, 슬픔, 자책, 즐거움은

2023년 에서야 그리움이 가득한 '추억'이 되었다.

Rathausufer 8, 40213 Düsseldorf, Germany


4. 수영을 시작한 지도 어느새 13년 정도 되었다. 나는 수영을 잘 하진 못하고, 오래 간은 해온 것 같다. 수영에서까지 재능 없는 박복함도, 녹슬어가는 이 몸뚱이도 생각해 보면 많이 '느슨해'졌다. 13년도 전에 그 첫 시작을 생각해 보니 내게 강사분들은 언제나 힘을 빼라고 말했다. 힘을 빼야지만 수영을 할 수 있다고. 그 힘을 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빼기도 전에 수영을 그만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심장이 터질 듯하게 힘을 줘 본 사람은 안다. 언제 힘을 빼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힘을 줘야 하는지. 물론 나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이 생각 없음에 몸도 가벼워지는 걸 보면 수영은 참 미묘하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시간이 바꾸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야 만 하는 것들도 있다. 치사하지만 시간만 바뀐다고 되는 게 아닌 것들도 있다. 그래도 힘은 빼야하지 않을까. 우리 인생은 오래동안이어야 할 테니. 


7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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