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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Jun 23. 2024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해외이직기)-4

인생 2막, 머나먼 유럽에서

걷다가 지칠 때마다 찾아가 나지막이 빌었다.

"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한번 걸어보겠노라고"


4편


1.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으로 이 세상에 신은 있다고 믿는다. 무탈할 때는 잘 찾지 않다가, 항상 유탈 하거나 위기라고 느낄 때 더욱 간절히 찾는 걸 보면 나는 지극히 소인배 같고 비겁해 보이기도 해서 마음속 깊이 움찔한다. 마치 신이 나의 부모님인 것처럼, 모두의 부모님인 것처럼 무한한 사랑을 그리고 도움을 당연히 줄 거란 기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위기라고 느낄 때마다, 그 위기는 스스로가 자처하기도 했지만 세상살이의 복잡만큼이나마 타인으로부터의 뒤섞임도 있었다. 그런 위기 때마다 나는 신을 찾았고 빌었다. 그리고 2024년 1월 1일 일출을 보면서까지도 나는 똑같이 빌었다 이렇게.

"그 길이 어떻건 걷겠노라고, 버틸 용기와 힘만 달라고. 대신 주변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만은 지켜달라고"

난 먼 길을 떠날 사람처럼 빌고 있었다. 운명은 그렇게 우연같이 스며들었다. 나의 조금은 치사하고 이기적인 기도의 순간까지도 말이다. 나의 뻔뻔함을 신은 이미 알고 있었듯이 그리고 이번에도 마지못해 들어주겠다는 듯이. 신은 나의 구구절절 하지만 솔직한 기도를 끝내 들어주셨다.


 2024년의 첫 일출은 그래서 묘하다.


2. 이 지면을 빌어서도 다 풀어내지 못하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이 있었다. 커리어라는 결과로 쌓인 포장지와는 다르게 나의 이직기에도 지극히 사적인 감정들과 과정들이 왜 없었겠는가. 조금 재밌고, 조금 나다워 지길 바랐던 선택에 인생이 송두리째 짓밟히고 흔들렸던 것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엔 보잘것없는 인생의 여정이 너무 흔들리고 너무 변했다. 가볍게 얘기하기엔 나를 짓누르는 무게가 여전히 크다, 아직도 헐겁진 않을 만큼. 그래서 앞에선 내색 않고 뒤에서 신께 빌었다. 걸으면서 생각했고, 생각하면서 빌었다. 그래서 걷고 또 걸었다. 남들은 왜 그리 혼자 걷는 걸 좋아하냐?라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이라는 짧은 대답뿐, 걷고 또 걸었다. 난 곳을 걷다는 것이 내겐 그랬다. 고향을 걷는다는 것이 정말로 내겐 그랬다. 나의 꿈을 위해 난 곳을 이리저리 걸었을 뿐인데, 나에게는 정말 그랬다. 그래서 난 곳은 혼자서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됐다. 그럼 이젠 난 곳을 떠나야만 하는가.


걸으면서 돌아보았고, 걸으면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걸으면서 생각했다.


3.  지나간 것을 후회하고 가정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한 게 없지만 풍부한 상상력을 짧게나마 무의미하게 사용해 보면 끝없는 무의미한 질문들이 이어진다 아래와 같이.


1) 첫 직장을  A가 아닌 B로 했다면?  

2) 미국 주재원이라는 꿈은 내버려 두고 C라는 직장을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3) D라는 직장에서 이런 나를 내던지고 경멸하고 증오하는 인간군상들의 비위를 맞춰주었다면?

4) E라는 직장을 택하지 않고, F와 G 중 한 곳으로 이직을 했다면?

········

99) 2017년 교환학생이 아닌 독일 인턴을 마치고 현지 취업을 했다면?

100) 2016년에 독일을 가지 않았다면?

········

9789) 지나갈 시간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투자를 위한 투자를 계속해서 이어왔다면?

········

숱하게 쓰고 지운 무의미한 질문들이지만, 선택이 달랐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전생에 죽고 못살던 인연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 채로 현생에서 다시 만난다면 그것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아니면 그 사이일까. 적어도 내겐 비극이다.


4.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또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지나고 보니, 그런 것들이 다가올 시간을 바꾸고 인생도 바꾼다 그래서 결국 사람도 바꾼다. 지금에서야 느끼는 것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선택들을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무의미한 질문들을 끝없이 나열하면서도 선택들의 회한이 내겐 없다는데서 묘한 안도감을 가진다. 그러니 인생이 좀 버겁고 시리고 아파도 내 탓이지, 남 탓은 아니었다. 다시 선택해도 남이 아닌 나일테니. 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될 수 있었으니, 그렇게 끝나야 만 하기도 한다. 무뎌지는 몸뚱이와 버거움에도, 나의 이 여정은 시작과 끝이 같아야만 할 테니 그게 아주 먼 길이 될지라도. 난 곳을 안고는 갈 수 없었다. 난 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난 곳을 잃어야만 했다. 나는 신께도 그래서 더 빌었다. '난 곳을 잃겠다고 그러니 내 길을 걷게만 해달라고'. 나의 부끄러운 기도를 신은 그래서 들어주신 걸까. 마치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일인 것처럼, 아니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젠 걷기만 하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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