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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May 20. 2024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해외이직기)-3

인생 2막, 머나먼 체코에서

1편 https://brunch.co.kr/@paolo/31

2편 https://brunch.co.kr/@paolo/32



'기대할 게 없음이 꼭 나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1. 내가 난 곳에서의 이직들을 돌이켜보았다. 보낸 시간에 비해선 꽤나 잦았던 이직이었다. 철도, 항만, 석유화학, 유통, 철강까지 '품질 좋은 맛있는 쌀'로 거듭나기 위해 한 자리에서 오래간 우직히 인내하기란 내겐 어려웠나 보다. 타고난 역마살의 핑계를 대는 편이 편할 테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만 하는 인내보다는,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 다른 것들을 참아내는 인내를 나는 가졌으니. 이직은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큰 기대였음이 지금에서야 선명하다. 적어도 내겐 기대 없는 하고 싶음은 '없었음'임이 분명하니.


2. 너무 큰 기대는 너무 큰 실망이 되기도, 실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실수를 반복했다. 실패한 이직인지, 이직의 실패인지는 아직도 알 길이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란 순진무구한 기대가 내겐 있었다. 기대는 지역을 바꾸기도 했고, 업종을 바꾸기도 했다. 그런 바뀜 속에서, 변화 속에서도 직에 대한 나의 기대는 변치 않았다. '내가 여전히 기대한다'는 이 변치 않음과 다름 아니었나 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게 이리 버겁고 어려운 것이었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데는 용기까지 필요했다.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는 군중 속에서의 나는 그렇게나 달랐던가?. 이 틈 바구니에서 일에 대한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던 걸까?.


3. 너무 큰 기대는 그렇게 작아져만 갔지만, 또 이직을 했냐라는 주변의 말들은 커져만 갔다. 왜 이직을 했냐에서 '또' 이직을 했냐라는 말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음도 알게 되었다. 풍운과 청운의 꿈도 아니었다. 단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내게서, 꿈처럼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가을이 오기도 전에 나는 계절을 바꿨다. 다시 봄으로, 다시 봄으로. 나는 사원에서 사원으로 그리고 다시 사원으로 해를 바꿨고 자리를 옮겼다. 타들어가기 직전의 촛농처럼 나는 더욱 짧고 굵게 기대를 태우고 태웠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풍성해야만 했고, 30대를 풍성하게 맞이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어느새 5년이 흘렀다. 풍성했던 나의 밭에는 열매는 없이, 추억과 사람만 남았다.


4. 젊음은 그렇게 낡아갔다. 힘 준 시간으로 그리고 날 것 그대로의 마음으로 부딪히고 또 부딪힌 덕에. 덧 난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기억력이 조금은 좋은 탓에, 십수 년 전의 일도 이십 년이 지난 일도 좀처럼 잊지 못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잊혀진 건 아닐 테다. 말하지 않았을 뿐, 이런 내게 지난 부딪힘은 분명한 상처였다. 보기 좋은 반창고로 상처를 덮어뒀을 뿐, 아문 적이 없는. 

 상처를 가리고도, 부딪혀 갔음에는 나의 타고난 고집이 있었다. 아니, 욕심이었을 테다. 내 것은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도 다 가지려고만 했던. 무모한 욕심 말이다. 이런 나는 시간도, 기대도 내려놓지 못했다. 십수 년 전의 기억도 놓지 못하면서, 다가올 기억을 놓을 순 있었을까. 지금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차디찬 겨울에 걷고 또 걸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몸은 가벼웠다. 아마도 난 곳을 떠나야만 함을 알았기 때문일까?


5. 마음을 다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지나간 사람들과의 인연이 그랬다. 사람과의 인연은 대게 시간이 만들어주었다. 첫 회사를 떠나며 흘렸던 눈물과 슬픔에는 '언제 이렇게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가 있었다. 이 또한 내 욕심이었을 테다. 기억과 함께 걷다 보니 시간은 흘렀고, 흐른 시간 탓에 몸은 무겁기만 했다. 아니, 버겁다고 느꼈다. 지나간 기억을 혼자만 붙들면 뭐 하나란 생각이 것도 이쯤이었다. 회사를 떠나며 흘린 눈물과 아쉬움은 작아져만 갔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홀가분해지기 시작한 것도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잃기 시작했나 보다. 아주 조금씩 다가올 나의 시간을 위해서.


걷다가 지칠 때마다 찾아가 나지막이 빌었다. 

"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한번 걸어보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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