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 머나먼 유럽에서
'기대할 게 없음이 꼭 나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1. 내가 난 곳에서의 이직들을 돌이켜보았다. 보낸 시간에 비해선 꽤나 잦았던 이직이었다. 철도, 항만, 석유화학, 유통, 철강까지 '품질 좋은 맛있는 쌀'로 거듭나기 위해 한 자리에서 오래간 우직히 인내하기란 내겐 어려웠나 보다. 타고난 역마살의 핑계를 대는 편이 편할 테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야만 하는 인내보다는,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 다른 것들을 참아내는 인내를 나는 가졌으니. 이직은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이는 큰 기대였음이 지금에서야 선명하다. 적어도 내겐 기대 없는 하고 싶음은 '없었음'임이 분명하니.
2. 너무 큰 기대는 너무 큰 실망이 되기도, 실수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실수를 반복했다. 실패한 이직인지, 이직의 실패인지는 아직도 알 길이 없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란 순진무구한 기대가 내겐 있었다. 기대는 지역을 바꾸기도 했고, 업종을 바꾸기도 했다. 그런 바뀜 속에서, 변화 속에서도 직에 대한 나의 기대는 변치 않았다. '내가 여전히 기대한다'는 이 변치 않음과 다름 아니었나 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는 게 이리 버겁고 어려운 것이었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데는 용기까지 필요했다.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말하는 군중 속에서의 나는 그렇게나 달랐던가?. 이 틈 바구니에서 일에 대한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던 걸까?.
3. 너무 큰 기대는 그렇게 작아져만 갔지만, 또 이직을 했냐라는 주변의 말들은 커져만 갔다. 왜 이직을 했냐에서 '또' 이직을 했냐라는 말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음도 알게 되었다. 풍운과 청운의 꿈도 아니었다. 단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내게서, 꿈처럼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가을이 오기도 전에 나는 계절을 바꿨다. 다시 봄으로, 다시 봄으로. 나는 사원에서 사원으로 그리고 다시 사원으로 해를 바꿨고 자리를 옮겼다. 다 타들어가기 직전의 촛농처럼 나는 더욱 짧고 굵게 내 기대를 태우고 태웠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풍성해야만 했고, 30대를 풍성하게 맞이해야만 했었다. 그렇게 어느새 5년이 흘렀다. 풍성했던 나의 밭에는 열매는 없이, 추억과 사람만 남았다.
4. 젊음은 그렇게 낡아갔다. 힘 준 시간으로 그리고 날 것 그대로의 마음으로 부딪히고 또 부딪힌 덕에. 덧 난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기억력이 조금은 좋은 탓에, 십수 년 전의 일도 이십 년이 지난 일도 좀처럼 잊지 못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잊혀진 건 아닐 테다. 말하지 않았을 뿐, 이런 내게 지난 부딪힘은 분명한 상처였다. 보기 좋은 반창고로 상처를 덮어뒀을 뿐, 아문 적이 없는.
상처를 가리고도, 부딪혀 갔음에는 나의 타고난 고집이 있었다. 아니, 욕심이었을 테다. 내 것은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도 다 가지려고만 했던. 무모한 욕심 말이다. 이런 나는 시간도, 기대도 내려놓지 못했다. 십수 년 전의 기억도 놓지 못하면서, 다가올 기억을 놓을 순 있었을까. 지금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차디찬 겨울에 걷고 또 걸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몸은 가벼웠다. 아마도 난 곳을 떠나야만 함을 알았기 때문일까?
5. 마음을 다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지나간 사람들과의 인연이 그랬다. 사람과의 인연은 대게 시간이 만들어주었다. 첫 회사를 떠나며 흘렸던 눈물과 슬픔에는 '언제 이렇게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가 있었다. 이 또한 내 욕심이었을 테다. 기억과 함께 걷다 보니 시간은 흘렀고, 흐른 시간 탓에 몸은 무겁기만 했다. 아니, 버겁다고 느꼈다. 지나간 기억을 나 혼자만 붙들면 뭐 하나란 생각이 든 것도 이쯤이었다. 회사를 떠나며 흘린 눈물과 아쉬움은 작아져만 갔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은 홀가분해지기 시작한 것도 말이다. 아마도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잃기 시작했나 보다. 아주 조금씩 다가올 나의 시간을 위해서.
걷다가 지칠 때마다 찾아가 나지막이 빌었다.
"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달라고, 한번 걸어보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