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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olo May 10. 2024

난 곳을 잃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하여 (해외이직기)-1

직전에 쓰던 '이직이 가져다 주는 생각들'을 완성하기도 전에, 인생의 향방을 바꾸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직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이직을 했습니다만, 이번에는 난 곳을 떠나야만 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기도 하네요. 난 곳을 떠나는 것이 아닌 '잃어야'한다는 의미와 무게를 스스로 곱씹어보고자 합니다. 저의 이런 개인적인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감히 바라며.



인생 2막, 머나먼 체코에서


1. 난 곳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의 종착점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한참을 그다음을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날 것 그대로의 즐거움을 추억했다. 그런 즐거움을 언젠가 또 마주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다.


2. 살아감에 있어 행복 없는 즐거움도 과분할지 모르지만, 사람은 본디 난대로 가는가 보다. 10년 전의 나처럼, 삶의 날 것 그대로의 선택을 해보기로 했다. 숱하게 그리고 지우며 생각해도 결국 답은 나였으니. 10년 전의 나라면 어땠을까?. 지금과 다른 결정을 했을까?.


3. 케케묵은 지난날의 흔적들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잉크가 바란 영수증조차도 쉬이 버리지 못한다. 훗날 기억을 잃어, 그 시간을 잃을까 하는 걱정에. 나에겐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살아가다 보니 구겨집어 넣어 살다 보니 다 드러내진 못하고, 창 너머로 흘러가는 시간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가. 아니 그렇게 해야만 했던가.

'

"처음 맡는 주말의 설렘보다는 익숙한 듯 바라보는 창밖이 내겐 포근하다"


4. 잃은 게 있다면 얻은 것도 있을 테다. 얻은 시간들로 잃은 시간들도 분명 있었을 테니. 젊음, 그 하나를 믿고 분주하게 움직인 시간 때문에, 젊음이 낡아졌다. '남들처럼'에 내 인생을 맡기기엔 인생을 제 멋대로 채웠나 보다. 아니, 난대로 가는 걸 지도 모른다. 젊은 기억을 그래도 아직은 채우고 싶은 걸 어쩌나. 


5.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다음'이 왔다. 난 곳을 떠났던 10년 전 이방인으로서의 젊은 기억, 그 시작이 이어질 수만 있다면을 홀로 되뇐다.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게 없고,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다는 순수의 무지가 그래서인지 조금은 설레고 슬프다. 


6. 그다음이 오기 전까지, 난 곳을 잃을 테지만 잊지는 않을 테다. 그다음이 오기 전까지만. 잃을 게 있다면 얻는 것이 있을 테니. 얻기 위한 잃음이 아니라, 잃기 위한 얻음은 나에겐 또 다른 시작이다. 이렇게 낯선 이방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고향에 온 것만큼 편하다. 이는 슬픈 행복일까?.


'기대가 없다면 다가오는 것들이 반갑다. 마치 이 풍광이 무척이나 반가운 것 처럼'


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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