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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쌤 Feb 14. 2020

나도 블랙독이었다.

잊지 않기 위해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1. 최근 케이블 방송에서 '블랙독'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검은 개가 무슨 뜻인가 하여 솔깃했는데, 드라마의 시놉이 학교를 배경으로, 그것도 하필이면 교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교사란 무엇인가. 세금을 축내는 것? 교육다운 교육도 하지 않으면서 힘들다고 찡찡대는 부류? 방학동안 여행은 줄기차게 다니면서 4시 퇴근을 하는 부러운 직장인? 인터넷 상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교육 기사를 읽을 때마다 댓글을 보며 서러운 생각이 들었던 나는 교사였다. 이렇게 사회에서 뭇매를 맞는 교사를 초점으로 드라마를 한다고? 놀라웠다.


2. 그런데 주인공이 "기간제 교사"라고 했다. 2000년대 들어서 방영된 학교 배경의 드라마를 보면 기간제 교사를 등장시키긴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교육계의 현실과 영 거리감이 있거나 학생이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교육에 정열이 넘치는, 그래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던 그들이 등장하곤 했다. 이 드라마도 그러겠지 싶었다. 학교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서 교사는 희생과 정의로움의 대명사, 그 원형적 상징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장의 교사들이 이러하지 않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방송에서 그려진 일반화된 모습을 말하고자 함이다.)


3. 그래서 보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보고 싶었지만, 보지 않음을 선택했다. 똑같은 레파토리를 보일까봐. 그들도 결국은 우리의 현실을 모를테니까.


4. 아, 그런데 재방송을 보는데...어쩜 그리 교사들의 현실을 잘 그려냈는지..깜짝 놀랐다. 1화를 보는데, 임용시험을 떨어진 주인공이 기간제 교사를 지원하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고, 행정실 문가에 길게 서있는 교사 지망생들의 행렬, 그리고 100번이 넘어가는 수험번호. 이것은 나의 과거이면서 누군가의 현재였고, 미래인 장면이었다. 오, 맙소사! 어떻게 이런 현실을 알지? 속속 치고 나오는 대사들 속에서도 학교 현장에 발담고 있지 않으면 모를 만한 내용들이 등장했다. 오, 이런! 이건 봐야겠다.


5. 인간의 창작물이 현실적이면 리얼리즘이라며 소름돋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현실을 담아버린다면,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순간, 창작물은 창작이 아니게 된다. 그건 내가 잠시 피했던 현실의 또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도 결국은 현실적일뿐, 현실이지는 않았다. 결말에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지만 그 결말까지 도달하는 여정은 현실적이었기에 나는 이 드라마의 가치를 인정했다. 


6. 이제는 나의 현실이었던 과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도 블랙독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뽑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pick me!를 외쳤던 시절이 있었고, 힘을 가진 자들의 규칙에 맞춰지기 위해 애쓴 소시민의 흔적도 갖고 있다.  그렇게 벼텨온 한 해, 한 해를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시간동안 흘린 내 눈물, 상처는 지금에 와서도 그 어떤 것으로 치유받기 어렵다는 것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절대로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내가 걸었던 그 길에 서 있을 나의 친구, 나의 선후배, 나의 제자를 위해 조심스럽게 기억을 끄집어 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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