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같은 회사
지금,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직장을 “하나의 대가족”으로 만들려는 기업의 시도는 실패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처럼 “집이란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고 언제든 당신을 받아주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직장은 가고 싶다고 해서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p222)
아무리 잘해도 가족 같은 회사가 될 수는 없다.
그냥 족 같은 회사라고 생각하자.
1974년 CEO들은 평균적인 근로자보다 40배나 많은 돈을 벌었다. 1997년과 1998년 사이, 중역들의 임금은 평균 12.3% 오른 반면, 평균적인 미국 근로자의 임금은 3.5% 증가했다. (p226)
결국 경영진이 돈을 다 가져간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근거한 미묘한 두려움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우리들 대다수는 어떤 막연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더 오랫동안 일한다. (p234)
슬픈 현실이다.
냉소주의자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단결하여 조합을 형성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기 때문에, 혁명론자들보다도 함께 일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대신에 그들은 봉급을 받을 때 수동적인 저항과 비웃음으로 침묵의 파업을 행한다. (p236)
대부분 그 냉소주의자가 되고 있다.
근로자들이 정당하게, 존엄과 존중을 가지고 대접받도록 고용주들이 보장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p241)
고용주가 보기에 근로자는 그저 개돼지.
“만약 당신이 사람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불하고,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복지 혜택을 준다면, 그들은 당신을 위해 생산할 것이다.” (p241)
이러한 온정주의적인 회사는 아쉽게도 많지 않다.
해리는 미혼이고, 일 외에는 별다른 관심사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열 시간 내지 열네 시간씩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메리는 기혼이었고 세 아이가 있었으며 교회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여덟 시간씩 근무한다. (p243)
아쉬운 상황이지만 고용주의 관점에서는 메리가 정리해고 대상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