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소유 Jul 31. 2024

퍼즐조각 처럼 맞춰간 나의 일상

Refresh week 2

병가휴직 8일째 되는 날이었다. 12시 16분, 지난주부터 가고 싶었던 퍼즐 카페인 용암동 마스터피스를 찾았다. 150피스 하급 퍼즐을 두 번 했고, 한 번에 40분 정도 걸렸다. 상상했던 대로 재미있었다. 카페의 음악도 좋았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느낌이었다. 오늘도 괜찮은 경험을 했다.


병가휴직 9일째 되는 날, 8시 22분,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국전 한우리에 들러 열혈시리즈를 매각하고 레전드 격투게임 킹오브 14를 샀다. 이후 한강진 블루스퀘어에 갔는데 북파크 서점이 너무 좋아 다시 가고 싶었다. 이태원에서 저녁을 먹으러 가려다 실수로 버티고개역에 내려 높고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느라 고생했다. 이태원의 멕시칸 요리는 먹을 만했고, 올댓재즈는 역시 진리였다. 트럼펫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숨쉬기 힘들고 심박수가 빨라 죽을 것 같았다. 괜찮다, 내일 병원에 가서 얘기하면 나아지겠지.


병가휴직 10일째, 11시 31분, 청주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의사 선생님께 어제 버스에서 죽을 것 같았던 경험을 얘기했다.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해결을 위한 추가 약을 받았다. 이후 상담소를 찾아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얘기를 상담사에게 했고, 많은 도움과 선물을 받아 기분이 나아졌다. 상담 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사는 얘기를 나누고, 백화점에 들러 아내에게 줄 애플워치를 사고 꽃다발을 받아 집에 왔다. 아내는 요리 중독 게임에 빠져 선물을 늦게 봤지만, 나중에 보고 좋아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병가휴직 11일째, 3시 57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다. 사자비 조립을 시작했다. 디테일에 놀라며 잘 조립될지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었다. 괜찮다, 잘 조립할 것이다.


병가휴직 12일째, 나데시코 달리기를 했다.


병가휴직 13일째, 오래간만에 일요일 낮의 독서 타임을 가졌다. 열한 계단 철학 부분은 어려웠다. 그리고 안타깝고 슬픈 예감이 적중했다. 지대넓얕이 종료되었다.


병가휴직 14일째, 아내가 금천동에 다녀온 후 혼자 밥을 먹었다. 이외수의 살림남을 보고 나데시코 완결 후 플스를 실컷 했다. 아내가 가져온 장모님의 육개장은 너무 맛있었다. 아내가 얘기할 때 잘 들어주지 않고 고집부린다는 아쉬운 얘기를 했다. 괜찮다, 내가 잘할 테니까.


퍼즐 카페에서의 소소한 즐거움, 서울 나들이에서 느꼈던 혼란과 설렘,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의 불안함, 그리고 상담소에서의 따뜻한 위로와 선물까지. 모든 순간이 내게는 소중한 기억이다. 아내와 그 작은 다툼조차도 이제는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그녀가 요리 중독 게임에 빠져 있을 때의 서운함도, 나데시코 완결 후 느꼈던 허탈함도 모두 한편의 드라마 같았다. 나를 둘러싼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때로는 나를 괴롭혔지만, 결국 나는 그것들을 견디며 살아갔다.


이전 01화 소소한 행복과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