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병가휴직 111일째, 새로 장만한 기모이불 덕분에 따뜻하게 숙면을 취했다. 눈을 뜨니 열시반이었다. 조금 더 뒤척이다가 열두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점심은 쇠고기뭇국과 닭갈비로 든든하게 먹었고, 저녁에는 추어탕을 얻어먹었다. 집에서 푹 쉬다가 부모님께 용돈도 조금 받았다. 좋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했다. 결혼을 했으니 더 잘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걱정과 근심이 많아지는지, 그리고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가 어떤 아이일지 궁금하다. 편안한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복귀했다.
병가휴직 112일째, 어제 새벽까지 게임을 하느라 늦게 자고 열한시에 일어났다. 음악을 들으며 자존감 관련 책을 읽었다. 비난받을 때의 대처 방법에 대해 배웠는데, 나는 보통 비난받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나 자신을 비난하는 습관이 있다. 점심 이후 병원을 방문했다. 짧은 거리를 운전하며 비매너 운전 때문에 짜증이 났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우려할 만한 문제가 없었다. 팀장에게 전화를 해서 두달 더 휴직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본인에게 피해 없게 잘 처신하라는 발언을 듣고 기분이 안 좋았다. 이후 공을 치러 갔다. 생각보다 공이 잘 맞아 조금만 더 치면 감을 잡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고 다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병가휴직 113일째, 아침에 병원에서 채혈 및 동맥경화 검사를 받고 외근을 나온 동생과 점심을 먹었다. 동생과 부동산 이야기, 육아 이야기를 나눴다. 동생은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점심 후 빵집에서 아내에게 줄 빵을 샀다. 집에 돌아와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천공의 섬 라퓨타를 보고, 게임을 하다가 새벽에 잠들었다. 게임을 좀 자제하고 싶다.
병가휴직 114일째,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동맥경화 검사 결과도 정상이라는 확인을 받았다. 건강에 대한 걱정으로 돈을 많이 썼지만 앞으로 관리를 잘하면 괜찮을 것 같다. 점심은 안동국밥으로 해결했고, 이후 공을 친 뒤 피부과에 가서 원형탈모 주사를 맞았다. 주사가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웠다. 저녁에는 게임을 정리하고 독서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병가휴직 115일째, 마음산책 상담소에서 하루의 시작과 그 중요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상담사와의 1:1 면담에서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한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녁에는 햄버거를 먹고 싶었지만 원래 가려던 가게는 문을 닫았다. 대신 다른 가게에서 버거를 사 먹었다. 이후 서점에 가서 신작 책을 한 권 읽었다. 옆자리 아저씨가 계속 책 사진을 찍어댄다 싶더니 결국 옆옆아저씨에게 잔소리를 된통 들었다. 책살 돈 없냐며 매너 지키자며. 도서관에는 가기 싫고 신작을 읽고 싶었나 보다. 그 모습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웠다.
병가휴직 116일째, 병원에 가서 휴직 연장을 위한 진단서를 받는 날이었다. 의사와 진단서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죽음에 대한 환상과 삶에 대한 미련에 대해 잠깐 언급했다. 약의 조절이 필요하다고 해서 다음 주에 다시 병원에 가기로 했다. 병원에서 나온 후 회사에 가서 서류를 전달했다. 동료가 나를 걱정해 주는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집에 돌아와서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큰 기업과의 싸움에서 서민이 겪는 고난을 다룬 영화였다. 영화를 보며 아내가 내 걱정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아내에게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그 말에 눈물을 보였다. 내 자신이 참 못나게 느껴졌다.
병가휴직 117일째, 어젯밤 아내가 나를 거실에서 깨워 침실로 데려갔다. 기절하듯이 거실에서 잠든 나는 깊은 나락 속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점심 후 공을 치며 마음을 달랬다. 장모님의 생신이라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킹크랩을 먹었다. 오랜만에 술도 한잔했다.
따뜻한 기모이불 덕분에 안락한 잠을 잤지만, 깊은 마음속엔 여전히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좋기도 했지만, 결혼한 몸으로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떨칠 수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떤 아이일까 궁금해지는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짐을 지우는 듯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원을 오가는 날들이 반복되었고, 진료 결과는 다행히 큰 문제가 없었지만, 마음속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을 치면서 순간의 안정을 느꼈지만, 일상의 스트레스와 두려움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녔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가끔 나를 엄습했다. 삶에 대한 미련과 책임감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그 속에서 나는 버티고 있었다.
아내는 늘 나를 걱정해 주었다. 내가 없더라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눈물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책임과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