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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고전을 찾아서 5

by 부소유

강의를 들으며 가장 와닿은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루 안 읽으면 책이 삐져서 다음 날 읽기 어렵다는 농담 섞인 조언처럼, 매일 활자와 연애하듯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쁠 때는 가벼운 책을, 시간이 날 때는 도전적인 책을 읽으면 된다.


북로그에 다섯 줄 정도만 정리하거나, 좋은 문장 하나만 기록해도 좋다. 처음에는 그것도 어렵다면 문장만 옮겨 적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그 기록들이 쌓여 나만의 독서 여정이 된다.


강사는 자신도 아무리 바빴던 시기에도 최소한 활자를 읽는 습관만은 유지했다고 했다. 오랜만에 책을 펴면 처음 십 분은 집중이 안 되고, 소리 내서 읽어도 귀로는 들리는데 머리로는 잘 안 들어올 때가 있다는 것이다. 독서도 근력이라 꾸준히 해야 유지된다. 그래서 시집이나 에세이 같은 가벼운 책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며, 짬이 날 때마다 읽으라고 했다. 밥 먹고 똥 싸듯이 자연스럽게 활자를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강의의 핵심 메시지는 자유로운 독서였다. 고전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나만의 고전 목록을 만들라는 것이다. 남들이 만든 리스트에 압도될 필요 없다. 끌리는 대로, 꼴리는 대로 읽어도 된다. 그렇게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들이 말하는 고전에 닿게 되어 있다. 책을 안 읽었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독서는 선택이다. 책을 읽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독서는 타인과의 징검다리가 되고, 이정표가 된다.


강사는 랩걸이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인용했는데, 우리의 목표가 누군가 던진 돌을 건널 수 있도록 한 번 더 멀리 던져주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와 인연 있는 누군가가 그 돌을 디딤돌 삼아 물을 건널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라는 것이다.


서산대사의 선시도 인용되었다.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는 말씀이었다.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며 책을 읽고,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국 뒤에 오는 이들에게 징검다리가 되고 이정표가 된다는 것이다.


강의를 마치며 강사가 남긴 말이 오래 남았다. 책 한 권이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루 이틀 생각이 바뀌면 그것도 변화다. 그런 변화들이 점점이 쌓여 결국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때가 온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책과 만나는 한 번의 기회가 온다. 그 한 번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 기회는 단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온다. 그러니 도전하고 실패하고 읽고, 또 도전하고 실패하고 읽는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경험으로 쌓인다.


창밖의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강의를 듣는 내내 눈이 내렸고, 그 눈은 시의 풍경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고전이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나만의 독서 여정을 시작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 한 권, 얇은 소설 한 권, 그렇게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며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 의무가 아닌 즐거움으로, 완벽함이 아닌 자유로움으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해석을 만들어가며 읽으면 된다.


니체를 읽다가 바그너로 넘어가고, 바그너 시대의 음악으로 확장되고,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현재의 문제와 연결되는 독서의 여정. 그 여정이 결국 나를 만들고, 나의 발자국이 누군가의 디딤돌이 되는 것. 강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은 그치고 있었다.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각자의 방향으로, 각자의 속도로 걸어가고 있었다. 독서도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향으로, 나만의 고전을 만들어가면 된다.


도서관에서 좋은 가르침을 주신 박명애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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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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