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 강창래의 신간. 부제는 ‘재능과 창의성을 발명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은 계기는 다음과 같다. 작년에 우연한 계기로 도서관에서 그의 강연을 들었고 그의 신간이 궁금해져서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그렇게 받은 책을 읽으려고 하다가 계속 다른 책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반년이 지나 읽게 되었다. 이전에 문창과 선배의 추천으로 읽은 그의 책 <위반하는 글쓰기>를 흥미롭게 읽어서 그의 다음 책을 궁금해하며 잊고 지냈다가 다시 만난 운명 같은 책이다. 게다가 인문학자가 말하는 인공지능 이야기라니 사실 궁금증을 참기 힘들었다.
컴퓨터 전문가에서 인문학자가 되었다는 그의 남다른 이력도 심상치 않았고, 작년에 도서관에서 만났던 그의 모습은 꾸준한 공부로 단련했기 때문인지 70을 바라보는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잘 하면 60대 초반 조금 과장하면 5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외모와 말투였다. 실로 놀라운 동안의 외모다. 사실 그를 알고 있는 선배의 말을 빌리면 실제로 상당한 공부를 하는 분으로 탁월한 통찰력을 갖고 있는 분으로 알려져 있다. 동안의 외모 + 이공계 + 인문계라니 닮고 싶은 어른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이렇게 썰을 푸는 이유는 사실 이 책에 대해서는 논할 이야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결론을 후려쳐서 이야기하면 AI 시대, 인강의 경쟁력은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말이다. 이 책은 그 결론을 내놓고 인간의 재능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것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한 권에 걸쳐서 차근차근 다루고 있다.
우선 책의 서문 첫 문장부터가 인상적이다.
-. 인공지능은 재능이 없다. 패턴 분석의 귀재이지만 창의적이지 않다. 그러니 특별한 ‘생각’이 있을 리 없다. 인공지능은 기억력이 어마어마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이 단어 하나를 바꾸면 어떨까.
-. 인간은 재능이 없다. 패턴 분석의 귀재이지만 창의적이지 않다. 그러니 특별한 ‘생각’이 있을 리 없다. 인간은 기억력이 어마어마하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특히 공부 잘하는 인간에게 맞는 말이다. 공부 잘하는 인간은 제도권 교육 내 시험 패턴을 어마어마하게 분석해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 지도층에 가까운 인간이 된다. 하지만 그런 인간은 저자가 말하는 인간적인 ‘생각’은 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런 인물은 오히려 인류에게 위험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서문 첫 단락을 중요한 의견으로 제시하며 이 책 주된 방향으로 인간의 재능과 창의성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다. 인간에게 재능은 있는 것일까. 창의성은 있는 것일까. 둘 다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강창래 작가는 사실 이 책의 초반부에서 관련된 질문을 계속 던지고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조수미, 강수진의 고통을 동반한 노력, 이스터섬의 비밀, 고흐, 찰스 다윈, 국민학교의 기원까지. 저자는 독자 혹은 화자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사례 중심 문답을 이어간다. 마치 불교의 선문답 같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의 후반부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문, 사, 철만 하지 말고 생물, 물리, 화학을 포함한 자연과학까지를 아우르는 인문학을 공부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결론은 그런 고민을 해보고 인공지능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각을 하고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마치 생각하는 인공지능처럼 활용하면 쓸만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인공지능의 환각에 쉽게 속지 않을 수 있고, 나의 생각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보조 도구로 활용하면 그래도 조금 쓸만하다는 뉘앙스를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것이 소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다.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생각이라는 관념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닐까. 결국 착각 사고에 갇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고해야 한다. 만약 인간이 실수로 착각 사고에 갇혀있는 휴머노이드를 만든다면 그것은 실제 터미네이터다. 그런 착각은 국가 전쟁 혹은 내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조차 학습할지 모르는 인공지능 그것의 오남용은 우리에게 위험하다. 우리는 그런 위험한 과도기 인류세를 살고 있다.
강창래 작가의 인공지능 책은 식상한 인공지능 책과 다르게 다양한 질문을 남겨주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결국 공부, 또 공부로구나. 작가의 다른 작품 <책의 정신>, <우리 사이에 갈이 있었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도 꼭 찾아 읽어봐야겠다.
좋았던 부분.
-. 예술가의 창의성은 재능과 전통에 대한 학습, 행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그 행운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처럼 시공간 감각, 감정적 공감, 사회적 상호작용을 흉내 낼 수 있다면, 단순한 데이터 기반 예측을 넘어 ‘현장감’에서 비롯된 창의적 행동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심지어 의도나 동기도 학습한다면 로봇도 창의적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남습니다. 그게 진짜 ‘창의성’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인간의 창작물을 모방한 고급 시뮬레이션일까요? 철학적으로 보면 의식과 주관적 경험이 없는 한, 로봇은 현장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계산하는’ 데 그칠 겁니다. 그 차이가 로봇의 창의성의 근본적 한계를 결정짓는 열쇠일 거예요. 인공지능이 인간이 가진 의식을 가져야 한다면 그건 요원한 일일지 모릅니다. 인간도 의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기는지 잘 모르니까요. 그러나 그 점도 그리 단순한 건 아닙니다. ‘모르기 때문’인데요, 인공지능을 개발한 사람들도 현대의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말하게 된 메커니즘을 모르거든요.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