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노예근성!!
우리는 과연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가?
오늘날까지도 노동자들은 “그는 나를 노예 취급해”라든지 “나는 그녀의 노예가 아니야” 혹은 “그 사람은 정말이지 노예 감독관이야”라는 말을 종종 한다. 불쾌하지만, 노예제도는 매혹적인 관리법의 전형이다. (p117)
오늘날 노예근성으로, 열정페이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안타깝다.
우리는 결국 자발적 노예인 것인가.
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일해야만 했다. 결국 ‘고용’이란 자유와 기회로 이어지게 될 일시적인 노예 상태를 의미하였다. (p121)
우리는 저자의 말대로 자유를 팔아 희망을 사고 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고 자유를 살란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말했다. “그들은 미국의 흑인들보다도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철저히 감시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처럼 살아가도록,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p125)
19세기 미국 남부의 농장노예들도 불쌍하지만,
북부의 임금노예들이 더 불쌍하다.
소도시에 살고 있고 부양할 자녀가 넷이나 되는 미혼모 역시 어디에서 일할 지를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여지는 거의 없다. (p127)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자발적인 노예화가 될 수밖에 없다.
농부들은 원숭이가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원숭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기 때문에 원숭이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 (p130)
강제로 고용되어 노예처럼 부려지는 불쌍한 원숭이들은 선택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더라.
일반적으로 우리는 취직을 할 때,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고용주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동의한다. 즉, 우리는 시간과 자유를 판다. (p131)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아쉽게도 시간과 자유를 팔며 먹고 산다.
시간과 자유를 넉넉히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산업혁명이 고조되는 동안 미국 산업의 물리적 산출량은 열네 배나 증가했다. 기계화는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실행시켰을 뿐 아니라 몇몇 업무를 단순 작업화함으로써 사람들을 기계의 일부처럼 쉽게 대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p135)
장인들의 노하우는 점점 무시되고,
단순업무를 잘 해내는 사람이 인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