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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조각글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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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Sep 19. 2023

길고양이 환상곡

Fantasia for street cat


아가부터 나비, 꼬마, 대장, 얼빵이, 예삐, 야옹이까지.

불리는 이름이 엄청 많은 거 아냐?


뚱땡이라고 하는 인간도 있는데, 이건 살찐 게 아닌 거 아냐?

인간들은 왜 그렇게 짠 걸 좋아하냐?

인간이 버린 것 중에 짠 것만 주워 먹어서 사실은 몸이 땡땡 부은 거 아냐?

인간도 그 부은 몸으로 높은 곳에 잘 뛰어오르고, 재빠르게 쥐새끼를 잡을 수 있냐?


기계가 만든 그림자 아래서  시간을 죽이는 기분을 아냐?

수염을 스치는 산들바람과 은은한 햇볕을 쬐는 그 감상을 아냐?

시멘트 집 안에서 하늘이나 동경하니, 인간들이 낭만을 알겠냐.

높은 톤의 유성음 계열 주파수도, 한 철 피었다 지는 풀꽃도,

밤하늘에 빛나는 것들도, 잔뜩 젖은 새벽의 냄새도

즐길 줄 모르는 게  인간들 아니냐.


인간은 왜 미개한 존재를 거두냐?

코 박고 냄새 맡고, 귀가 찢어지게 짖어대는 것들, 줄로 인간을 끌고 다니는 것들 있잖냐.

왜, 손이 아니라 주둥아리가 먼저 나서는 것들, 항상 화내며 꼬리를 붕붕 흔드는 것들 있잖냐

나약해서 길바닥에 나온다면 하루도 살지 못할 것들이 진정 사랑스럽냐?


걔네가 뭘 알겠냐?

비가 오는 날엔 지하 주차장 구석에 숨어야 한다는 것도

어느 인간들이 숨겨둔 사료와 깨끗한 물을 찾아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하지 않겠냐.

그러나 사료통이 엎어지고 사라지면, 당분간 작은 새와 쥐를 사냥해야 한다는 것도,

사냥할 줄도 모르는 털뭉치들 아니냐?

종종 마주치는 인간이 가방에서 불쏘시개를 꺼낼지, 닭가슴살을 꺼낼지

파악도 못하고 그저 인간이라며 뛰어가지 않겠냐?

그러다 언젠가는 인간에게 잡혀서 다시는 길에서 볼 수 없을 것들 아니냐?

왜 그렇게 멍청한 것을 사랑하냐?


나도 언젠간 인간에게 잡힌 적이 있는 걸 아냐?

긴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한쪽 귀는 왜 가벼워졌냐?

들을 수 있는 주파수의 범위가 조금 좁아졌고, 정확하지 않게 됐지만,

밤을 덜 힘겹게 보내게 된 거 아냐?


종종 인간과 공생하는 친구들도 있는 거 아냐?

애써 정리한 털을 반대로 빗거나, 종종 물고문을 하거나,

모르는 곳에 맡겨두고 이상한 걸 먹이는 곳에 갇히고 돌아온 데도 같이 산다나.

기껏 힘들게 사냥한 걸 주면 소리 지르고 경악하는 인간이랑 사는 이유가 뭐냐?

춥지 않고 덥지 않게 오래오래 머물 수 있어서 참냐?


언젠가 인간이 부탁을 한 적도 있는 거 아냐?

생전 들어본 적 없는 기괴한 울음이었지만, 새끼를 잃었을 때와 비슷한 울부짖음이라 알아챈 거 아냐?

주차장 한 켠에서 쥐를 갖고 노는 녀석을 찾아서 옴팡 혼낸 거 아냐?

인간을 만나는 것까지 보고 내뺐더니 그다음부터는 인간 녀석이 마주칠 때마다 먹이를 챙겨주지 않겠냐.

기특하지 않냐?


어둠이 제법 쌀쌀해진 거 아냐?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을 찾아, 몸 두고 쉴 곳을 찾아 떠나야 할 계절이 돌아온 거 아니겠냐?

털을 다듬고 잘 버텨야 하지 않겠냐.


가지 못할 곳도 없고

하지 못할 것도 없는 삶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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