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and the slump
11월은 왜 있는지 모르겠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해. 휴일이 하나도 없어서 더 그런가? 그나마 30일밖에 없어서 그렇지 31일까지 있었으면 정말 속상했을거야. 10월은 도토리나 줍고 단풍놀이하기 좋은 계절같은데, 11월은 잘 모르겠어. 그냥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기다려. 11월부터 캐롤을 듣는 게 맞나 싶기도 해. 꽃집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빨간 크리스마스 화분을 줄지어 늘여놨어. 올해는 트렌치 코트를 몇 번 입지 못했는데 다시 세탁소에 맡겨야할 것 같아. 찬바람이 불면서 붕어빵과 호떡의 등장은 반가워. 기다리고 있었거든. 호떡은 너무 달아서 별로 안 좋아하지만, 붕어빵을 좋아해. 붕어빵은 꼭 현금으로 사야하는 거 알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잖아. 그럼 읽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거야. 그래서 글을 많이 써보고 싶었는데, 유독 11월은 우울하고 글도 잘 안 써져. 일 년동안 내가 뭘 했나 싶기도 해. 12월은 한 해의 마무리라는 느낌이 강해서 후회도 없는데, 11월은 아직 해가 다 끝나지 않아서 더 마음이 소란스러운가봐. 마지막으로 스퍼트 내야할 것 같기도 하고, 문구점에 알록달록 진열된 내년 다이어리를 보면 벌써부터 설레기도 해. 다이어리를 결국 안 쓸것도 알면서 오래도록 들었다 다시 내려놨다 하거든. 애매하다? 보통 달력은 12월부터 시작하거나 1월부터 있으니까, 11월에 달력을 사면 한 달을 기다려서 12월부터 달력을 쓰거나 아니면 두 달 뒤에 용의 해가 시작되면 그때가서 시작해야 하는데, 다이어리 산 걸 까먹고 또 다이어리를 구해다가 쓸 것 같거든. 만년 다이어리를 사다가 11월부터 시작하기에는 벌써 11월 중순을 지나 12월을 향하고 있잖아. 그래서 참고 있어.
뭔가를 해야할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한달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아. 사실 쓰려고 했던 글들만 서랍 안에 가득하거든. 좋은 소재를 가져다가 이렇게 밖에 글을 못쓰는 게 우습기도 해. 소재를 팔 수 있다면 좋은 가격에 쳐주는 전당포에 죄다 맡겨버릴텐데. 언젠가는 살을 붙여다가 글로 풀어낼 수 있겠지.
아무튼 11월은 되게 애매한 것 같아. 굳이 따지자면 그래.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고 할까. 가을바람에 괜히 감상에 빠지고 감성에 빠져서 이도 저도 아니게 사는 것 같고. 내년에도 그냥 이렇게 살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올해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행복했어. 내 손으로 성과를 내보기도 했고. 내년에도 이렇게 소소하게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