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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라 Apr 17. 2024

카메론과 카멜리아

Cameron and Camelia

여느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이들이 그러하듯, 그도 동양에 대한 환상을 갖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한국과 중국과 일본을 구분할 수 없었다. 솔직히 모든 아시안은 나에게 다 중국인 같아라는 말을 하길래, 나 역시 일곱 살까지는 모든 백인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했다. 그는 미국인이므로 와하하하하고 웃었다.


그는 고작 할 줄 아는 말이, '안녕하세요', '나는 카메론이에요.' '감사합니다.'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많은 말을 알려주었다. 고작 취미로 내 언어를 배우려 한다는 그가 부러웠다. 나도 취미로 영어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너희 조상이 그렇듯 우리도 누군가를 내쫓고 어딘가를 정복하고 불태웠다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 텐데. 나는 shift와 change와 switch의 어감 차이를 아는 그가 부러웠다. 태어날 때부터 써왔으므로 세월로 체득한 그 능력이 부러웠다. 무언가를 바꿀 때 어떨 때는 shift를 쓰고 어떨 때는 change를 쓰며 어떨 때는 switch를 쓰는데, 바꾸다는 뜻에 어휘를 세 개씩이나 외워야 하는 내 처지가 안쓰러웠다. 


그에게서는 레몬 나무 냄새가 났다. 담배를 태운 뒤 뿌리는 탈취제가 레몬향이었기 때문에 그런 냄새가 났던 것 같다. 그는 나를 카멜리아, 카멜리아-하고 불렀다. 그때 내가 학원에서 쓰던 이름이 카밀라였는데, 그는 내가 동백꽃 같다며 꿋꿋하게 카멜리아라고 불러주었다. 나는 성격이 급해 원장이 카ㅁ- 소리만 내도 네, 했고, 그는 카메론 소리를 세 번은 들어야 예스~ 했다. 언젠가 그는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싫은 티를 감추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별 거 없다고 했다. 일주일에 세 번 점심시간이 겹치는 30분에 자기와 같이 밥을 먹으며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자 그랬다. 한국에서 버는 푼돈에 관심이 없는지, 그는 밥도 사고 과외비도 넉넉히 쳐주겠다고 했다. 나는 매주 십만 원씩 그에게 받으면서 그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제 말을 할 수 있으니 글을 읽고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특히 ‘카메론’을 좋아했다. 그는 ㅋ과 ㅁ 그리고 ㄹ을 좋아했다. C와 m, 그리고 r보다 귀여운 데다가 자기 이름을 훨씬 짧게 쓴 것 같아 좋다고 했다. 그는 10칸 노트에 카메론을 몇 번이고 썼다. 어느 순간 그의 10칸 노트 속 카메론은 카밀라가 되어 있었고 카밀라는 카멜리아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 우리는 카메론과 카밀라와 카멜리아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친해졌다.


언젠가는 내가 바빠서 그를 방치했다. 어떻게 드라마를 볼 수 있는지 알려줬다. 그는 <대장금>, <여인천하>, <용의 눈물>, <장희빈> 같은 사극 드라마에 빠져서 한동안 '통촉하여 주시옵소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나이다', '뭬이야?' 같은 말을 달고 살곤 했다. 국밥집에서는 자기 몫의 해장국을 싹 비운 뒤, 내가 남긴 식은 뚝배기를 들고 벌벌 떨며 마치 사약을 마시는 장희빈 것처럼 굴기도 했다. 나는 '죄인은 사약을 받들라-!'하고 장단을 맞춰줘야 했다. 

언젠가는 그와 남대문을 구경했다. 그는 공장에서 찍어낸 자개장식들을 보고 월급을 모두 털었다. 보스턴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줘야 한다며 자개장과 자개소반과 자개보석함과.. 아무튼 온갖 자개 장식들을 사다가 미국으로 부쳤다. 나는 그에게 자개 도장을 선물해 주었다. 그는 돌아오는 월급날까지 내내 김밥만 먹으면서도 행복해했다. 카메론인이라고 적힌 도장을 아이들 숙제마다 찍어주면서.


그는 반복되는 말을 좋아했다. 반짝반짝, 찰랑찰랑, 깡총깡총, 폴짝폴짝, 펄럭펄럭, 살랑살랑, 흔들흔들, 웅성웅성, 말랑말랑, 하늘하늘, 부비적부비적. 삐뽀삐뽀, 으쓱으쓱. 언젠가는 편지에 그렇게 반복되는 말들만 잔뜩 채워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지갑 속에 그 편지를 두고두고 꺼내 보았다. 그가 그 편지를 꺼내 볼 때면, 나는 발음특강을 했다. 그는 된소리발음을 어려워했으므로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그는 ㄲ 발음은 잘했으나 (그마저도 오랜 연습에 거쳐서 가능했지만) ㄸ 발음은 어려워했다. ㄸ와 ㄲ이 섞여있는 따끈따끈 떡꼬치 따끔따끔 딱따구리 같은 말을 연속으로 하며 그를 놀리곤 했다. 혀의 위치와 조성 기관의 위치 등을 설명했으나 끝끝내 그의 진득한 키스로 발음 특강은 끝났다. 언젠가는 그가 이제 ㄸ 발음을 할 수 있다며 지하철에서 딸딸이를 연속으로 다섯 번 말했을 때,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다. 그는 짤짤이를 딸딸이라고 오해해서 말했으므로, 내가 그에게 뜻을 알려준 후, 지하철은 어색함만 가득했다. 신촌으로 가는 길이 멀기만 했다.


그는 -냐체도 사랑했다. 그런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지만, 냐라고 끝나는 말을 좋아했다. 한국인들은 모두 전생에 고양이일 거라며 나는 그중에서도 새까만 고양이라고 말을 하곤 했다. 내가 '맞냐?'라고 하거나 '그러냐?'라고 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으으으으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쳤고, 나는 곧잘 말을 바꿔 '맞아?', '그래?'라고 바꿔 말하곤 했다. 그의 실망으로 가득 찬 얼굴을 보며 놀리는 게 좋았다. 

큰맘 먹고 현지인 맛집 식당에 갔다가, 좌식이라서 포기하고 나온 적도 더러 있었다.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어서 편하게 앉아도 된다는 말에 그는 극구 레이디에게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가 자취방을 얻고는 곧잘 배달을 시키곤 했다. 그는 '한진 빌라 204호인데요, 간장반, 청양마늘반 무 많이요. 카드결제할게요.'하고 막히지도 않고 능숙하게 주문하기도 했다. 배달원은 그를 보고 어버버 하다 땡큐- 하며 카드를 받곤 했다. 빨간 음식들도 잘 구분하게 되었다. 육개장과 해장국과 순두부찌개와 김치찌개와 고추장찌개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언젠가 내가 담근 김치를 먹고 싶다 그랬다. 나는 김치를 담글 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치를 사 먹는 한국인은 내가 유일할 것이라며 악담을 퍼부었다. 그는 서울 어딘가에서 외국인 관광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김장체험을 하고 와서 기세등등하게 김치를 만들겠다고 부엌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김치로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가르쳤다. There is a kimchi, It is the 배추김치, This is 우리집김치 하고. 마쉿지? 마싯지? 하면서 하기도 학생들에게 김치를 먹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가 제일 잘하는 말은 '미안해'였다. 어느 숱한 애인들처럼, 뭐가 미안한데, 뭘 잘못했는데, 사과해서 끝날 일이라면 형사는 왜 있고 경찰은 왜 있는데 같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가 미안해라고 하면 나는 괜찮아.라고 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돌아온다고 했고,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그랬다. 

그뿐이었다. 나는 한동안 사극을 보지 못했고, 반복되는 의성어와 의태어도 못 썼고, -냐로 끝나는 말을 뱉지도 못했고, 전화로 배달주문을 하지도 못했다. 나는 괜찮지 못해도 괜찮았다. 언젠가 우린 동백꽃이 잔뜩 핀 제주도로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지금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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