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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Oct 25. 2023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김장 김치>


김장철이 다가옵니다.


결혼 후 시댁에서 처음 김장을 해봤어요. 결혼 전엔 엄마가 일을 시키질 않아서 누군가가 어디선가 만들어 던져주는 게 김치인가 싶을 정도로 뭘 몰랐었죠.


오래된 한옥들이 줄지어선 시댁 동네는 아무리 봐도 여기가 서울인지 지방의 시골동네인지 헷갈릴 정도로 이웃끼리의 정이 돈독했어요.


한 집이 김장을 하면 이웃들이 달려와 같이 김장을 돕고, 집주인은 맛있는 한 끼를 대접했죠.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두레', '품앗이'같은 단어를 현실로 구경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집안일엔 관심 없고, 잘하지도 못해 회사일 하면서 고된 김장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배추를 사서 절이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야무진 시어머니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사면 그나마 수월할 것을 비싸다는 이유로 직접 절이기까지 하셨어요.


역시나 손 큰 어머님답게 김칫소를 산처럼 쌓기 위해 아들 딸, 며느리가 동원되어 무, 갓 등을 손질하는 등 일손을 거들었어요.


붉은 김칫소가 가득한 거대하고 붉은 고무대야 주변으로 이웃어른과 식구들이 둘러앉습니다.

절여진 배추를 하나씩 붙잡고, 그 속에 김칫소를 치대듯이 문지르며 척척 집어넣죠.


끝날 것 같지 않은 지루한 노동, 평소보다 더욱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떠들어대며 버팁니다. 저 집 며느리는 일은  못하면서 잘도 떠든다고 생각들 하셨을 겁니다.


팔, 다리에 경련이 덜덜 올 것 같은 시점에야 김장이 끝나지만 그게 끝이 아닙니다.

자식들 집으로 분배해 줄 커다란 김치통 -10통 이상-에 꾹꾹 눌러 담은 후 무거워진 김치통을 들어 하나씩 옮기고... 아휴.


결혼한 후 식당하시는 분들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특히 손으로 만두 빚는 가게나 김치를 직접 담가 내놓는 식당들 말이죠.


무튼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도와준 분들과의 한 끼 식사 준비가 남았죠. 김장할 때 묻은 고춧가루를 닦을 새도 없이 시어머니를 도와 식사준비를 합니다.


일을 하고 난 후라 그런지 몹시 시장한 타이밍, 시어머니가 고기 가득 넣고 끓인 배춧국은 참 달고 매콤했습니다.

거기에 김이 폴폴 나는 수육에 갓 김장한 김치를 곁들여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굴을 좋아하는 절 위해 어머니가 가끔 생굴까지 곁들여주시면 김장하기 싫다고 툴툴거리던 주제에 잘도 꿀떡꿀떡 목으로 넘겼습니다. 진짜 핵꿀맛!


요즘 김치 사 먹을 데가 얼마나 많습니까?

김장 노동에 지친 자식들이 사 먹자고 불만을 토로하고, 시어머니 건강도 예전 같지 않아 이젠 김장을 하지 않습니다.

김장을 하지 않게 되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지만 사 먹는 김치는 확실히 맛이 없네요.


시간이 흘러 그 동네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김장철만 다가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갓 김장한 매운 김치와 쫄깃한 수육, 뜨거운 배춧국이 떠올라 침이 고입니다.


이젠 먹을 수 없게 된 추억의 김치, 아무 노동 없이 직접 담근 김치를 얻어먹는 행운을 누리고 계신다면 김치를 준 분에게 무한 감사를 표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노동을 절대  감수하지 않을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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