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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Oct 01.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꽃게찌개>


빚쟁이처럼 끈질기게 더웠던 여름이 지나갑니다.

다가올 반가운 가을, 가을 하면 저는 국물요리부터 떠오릅니다.


칼국수, 수제비, 매운탕, 전골 등등 따뜻한 국물요리에선 깊어가는 낙엽 같은 맛이 나거든요.

그중에서살이 통통하게 오른 꽃게를 퉁퉁 잘라 넣은 '꽃게찌개'가 그리워집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꽃게살과 내장이 섞인 비리고 고소한 버터  향, 된장, 마늘이 콜라보된  독보적인 냄새가 코끝에 맴돌죠.


만들기도 어렵지 않은데 깊은 바다맛이 우러나는 신기한 찌개입니다.

신선한 꽃게만 있으면 '된장 툭, 마늘 툭, 고춧가루 살짝' 만으로도 시원한 국물맛이 나는데, 남는 양파와 애호박, 땡고추 조금만 있으면 더욱 금상첨화겠죠.

부산이 고향인 터라 친정엄마가 어릴 때 자주 끓여주셔서 그런지 꽃게찌개하면 그리움의 맛 같아요.


시어머니는 서울근교 출신이라 그런지 생선구이 말곤 해산물을 잘 밥상에 올리지 않으세요.

재첩국, 고등어구이, 파래무침 등이 항상 올라오던 친정의 밥상에 비해 아쉬운 좀이 딱 하나 그것이죠.


그러저러해서 잊고 살았던 꽃게찌개를 어느 가을날 시어머니가 밥상에 올리셨을 때 눈이  크게 떠졌습니다. 집집마다 레시피가 다른 게 한식 아닙니까.

그런데도 시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꽃게찌개에서 친정엄마의 맛이 났습니다!


꽃게살 국물에 흠뻑  절여진 신선한 애호박을 씹으니 신선한 된장과 마늘맛이 터져요. 갓 지운 밥을 그 국물에 비벼 먹으면 공허한 위장이 따뜻하게 채워집니다.

친정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시어머니의 꽃게찌개에서는 비릿한 바다와 고향의 맛이 났습니다.


음식으로 정신적 허기가 채워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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