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홍 Apr 09.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기정식 <한국식 카레>


저는 카레를 참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카레가 세 종류 있는데요, 바로 영국식과 일본식, 한국식입니다.


치킨마크니처럼 달큼한 영국식 인도카레에 잘 구운 난을 찍어먹으면 질리지가 않아요.

야채 등의 다양한 토핑을 큼지막하게 구워 수프 같은 질감의 카레에 적셔먹는 삿포로식 일본카레는 또 얼마나 맛있습니까.

그중에 최고는 역시 엄마가 해주는 한국식 카레죠.


감자, 당근, 돼지고기 등 재료를 잘게 잘라 오뚜기카레(협찬 아니고요)에 푹푹 끓여놓으면 며칠은 밥찬 걱정 없어요. 우리에겐 김치가 있기 때문이죠. 카레엔 김치가 국룰입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는 사는 지역이 판이하게 달랐지만  만들어놓은 카레는 비슷했어요. 그러니 이게 한국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일요일에 시어머니가 카레를 한솥 가득해놓으셨네요. 세상에, 온 동네사람 다 먹일 작정이신가요?

시어머니는 일반 카레봉지 사이즈는 감질난다며 업소용으로 끓이셨습니다.


맞아요, 시어머니는 손이 크세요.

왜 음식을 항상  사람수보다 많이 만드시는지 손이 작은 저로선 의문이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힘들 땐 저만의 '관심법'이 있습니다. 

바로 성장배경을 유추해 보는 건데요.


시어머니는 어릴 때 부모님을 잃은 큰딸로 6.25 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자그마치 6.26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 삶이었을까요. 그래서 할머니들은 모이면 먹을 것을 나누는 배려를 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먹는 게 귀했던 삶을 살았기에.


시어머니는 결혼도 가난한 집의 맏며느리로 갔습니다. 시동생, 시누이까지 다 같이 살다가 그들이 결혼을 해야 분가해서 나가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시어머니의 손은 점점 커졌겠죠.

자식도 여럿, 요즘처럼 결혼이 선택인 시대에선 상상도 못 할 무게를 지고 사셨을 겁니다.


세상의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죠. 시어머니의 삶이 바로 윗세대가 아니라 할머니 시대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대차이가 느껴집니다.


카레 속 고기를 곱게 갈아 넣어서 그런지 꿀떡꿀떡 잘도 넘어 니다.  신선한 나물과 김치를 반찬삼아 한 그릇 뚝딱 해치웠어요.

시장에서 산 커다란 강냉이 한 봉지를 주시는데, 요즘 같은 고물가에 3000원! 입구를 열자 고-소한 강냉이냄새가 가득 퍼집니다.


시어머니의 신산했던 삶을 위로해 줬을 한국식 카레와 과자는 여전히 맛있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가자미 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