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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Mar 12.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일요일엔 김밥>


매주 시댁에 갑니다.


회사 다니는 저 대신 시어머니가 애들을 키워주시다 보니 매주 가던 것이 습관이 되어  20년이 넘었죠.


가정을 꾸리면 이제 친정에 가도 불편하고, 잠도 잘 안 와요. 내 몸에 맞춰진 내 집이 최고인데, 하물며 시댁이야 말해 뭐 해. 일요일엔 내 집에 드러누워 짜파게티나 끓여 먹는 게 편하지, 아무리  가까워도 시댁 가기 귀찮은 며느리 마음 아시죠?


가족이 우선인 시어머니는 팔순이 넘으셔서도 저녁 준비를 하시네요. 하지 말라고 말려도 깍두기도 담가주시고, 지난 정월대보름엔 찰밥과 대보름 나물도 한가득해 주셨어요.


좋겠다, 부럽다 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어요? 거기에다 처음엔 해주시는 음식이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지 않아서 냉장고에서 상해가곤 했었죠.

(죄송합니다 흑...)

바빠 죽겠는데 음가져가라 마라 하시면 오가는 것도 피곤했고, 남아서 상한 음식처리하는 것도 스트레스였어요.


참 신기한 것은 이 들면서 입맛이 바뀌는 건지, 솜씨 좋은 어머니 음식에 길들여진 건지 점점 맛있어진다는 겁니다.


손만두, 딸랑 무김치, 동지팥죽, 찰밥 같은 음식은 할 줄도 모르고, 할 의지도 없으니 귀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찮아도 가져오자마자 소분해서 얼릴 건 얼리고, 나물은 오래 먹을 수 있게 볶아 놓습니다.


시어머님이 안 계시면 이제 사 먹을 수밖에 없을 텐데, 비싸기도 하거니와 어머니손맛과는 다르죠.  

만드는 법을 배워볼라치면 '이것저것 대충 그냥~' 이런 식이셔서 배우지도 못해요.


지난주 일요일에는 김밥을 만들어  쌓아 놓으셨더라고요. 손 큰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었으니 생략하고요.


요즘 김밥집에서 파는 김밥들은 속재료가 많아 너무 커서 입을 쫙 벌려야 들어가는 수준이죠.

시어머님이 만든 김밥은 돌아가신 친정 엄마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손쉬운 재료로 작고 야무지게 만든 김밥, 참기름 냄새 진동하고 깨가 가득 뿌려진 김밥 말이죠. 어릴 때 소풍 갈 때 말고 본 적이 없는.


재료마다 볶고 양념해야 하는 김밥은 손이 많이 가서 잘 안 만드는데요, 제가 만든 김밥은 왜 엄마의 맛이 나지 않을까요?

집에서 만든 김밥만 봐도 엄마를, 시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니 어머니들한텐 남는 장사(?)입니다. 자식들이 추억해 줄 테니 말이죠.


반조리식품을 좋아하는 저로선 아이들에게 남길 추억이 없겠네요. 이마트 즉석식품을 볼 때마다 내 생각을 해줄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족과 먹다 보니 김밥 열 줄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 김밥 마느라 다리가 꽤 저렸을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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