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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Sep 24. 2023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나의 생일음식>


때는 12월, 찬바람에 코가 시린 크리스마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갑자기 집에 찾아오시겠다는 시어머니의 콜을 받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회사 일로 항상 바빴고, 휴일엔  애들 챙기느라 더욱 정신이 없었기에 친정엄마라도 갑자기 찾아오면 부담스러운 삶을 살았다. 하물며 시어머니의 급방문이라니?

평소 그러지 않는 분이었는데, 손자 손녀가 보고 싶으신가 보다 했다.


집안은 난장판, 회사일로 머리는 우지끈, 근처 카페라도 가서 일을 해야겠다,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좀 쉬었다가 카페로 가려했던 일정을 시어머니 오시는 타이밍에 맞추기로 했다.

어차피 쉬지도 못할 거 일이나 실컷 하지 뭐.

집에 잡혀버리는 순간, 아무 일도 못한 채 하루가 저물어버릴 것을 직감했기에.


크리스마스는 어린 아이나 연인들에게나 의미 있는 날이지, 나에겐 그저 쉴 수 있는 고마운 휴일이 된 지 오래.

그런 휴일에도. 쉬지 못하게 찾아오시는 시어머니에게 솔직히 불만이었다.  


앞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리는 시어머니에게 인사드린 후 일하러 가는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때 어머니의 양손에 들린 비닐봉지와 낡은 가방들을 보고 뭐냐고 여쭤봤더니 나에게 줄 음식들이란다.


"네에? 뭔 날이에요?"


멍하니 묻는 내가 어이없는 듯 곧 내 생일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 순간 마음이 찌르르 뭉클...  죄송스러움과 감사함이 함께 몰려왔다.


휴일 못 쉰다고 투덜댔던 좁은 내 속은 며느리에게 줄 음식을 만드느라 고생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송구함으로 가득 찼다. 내 생일은 바쁜 연말에 자리해 있어 나조차 잊고 지나가기 일쑤였는데.


열심히 일한 후 돌아와 남겨두시고 간 가방을 열어보니 불고기, 잡채, 나물 등이 여러 개의 반찬통에 넉넉히 담겨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무릎이 아파서 해주시지 않지만, 힘들었던 세월 어머니가 생일날 만들어주시는 불고기나 잡채를 먹고 버텼다. 맛깔나게 요리하시는 시어머니와 달리 음식솜씨가 젬병인 나는 그 핑계로 해드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참 염치없는 며느리지만 고향에 사시는 친정어머니도 돌아가신 지금, 누구도 내게 밥을 해주지 않는다.

남은 세월,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는 일만 남은 터.

어린아이처럼 시어머니에게 자꾸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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