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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20화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설날 손만두 대작전>
by
선홍
Oct 7. 2024
라떼'나 지금이나 명절에 모인 어른들의 잔소리 폭격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20대들도 '명절포비아'에 걸린다고 하니 말이지요.
어른이 되어 알게 된 거지만, 오랜만에 명절날 모인 자리는 어른들도 뻘쭘하고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잔소리하면서 불편함을 메꿔보려는, 혹은 젊은 친구들과 급 친해보고 싶긴 한데 대화소재를 몰라 생기는 부작용 같은 겁니다.
그러니 별 뜻 없이 하는 헛소리(?)로 여기고 흘려듣는 재주들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어른들이야말로 명절이 편할 수가 없잖아요. 여기저기 용돈 줘야 할 곳은 많고, 친구 만난다는 핑계로
나가지도 못합니다.
남자들은 산소 가야지, 명절 스트레스받는 와이프 눈치 봐야지, 여자들은 갑자기 펼쳐진 막노동의 현장에서 정신이 완전
가출하기 직전인데요.
저야말로 손 큰 시어머니를 만난 덕에 '명절포비아'에 걸려버렸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써붙인 플래카드만 봐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라면 말 다하지 않았나요.
명태 전, 고구마 전, 김치전
,
녹두전, 동그랑땡, 두부 전... 등등 인정 많은 시어머님은 온 동네 사람 다 먹일 듯이 많은 음식 준비를 하셨습니다. 설날은 더더욱 싫었어요. 그 많은 음식들에 손만두까지 추가되었으므로!
참고로 결혼 전까진 손에 물이라곤 닿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었기에 결혼 후 명절마다 무슨 족쇄를 차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애들이 어릴 때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라는 동화책을 사준 적이
있었습니다.
손 큰 할머니가 온 동네의 숲 속 친구들까지 먹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만두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호랑이, 여우, 온갖 새들까지 다 몰려와 힘을 합해 만두소를 삽으로 종일 떠 넣어도 안 끝날만큼 거대한 만두를 말이죠!
동화에 나오는 땀 흘리는
동물들
이 저로
보일만큼 명절 만두 만들기는 고역이었는데요.
만두피를 만들기 위해 반죽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습니다. 팔이 빠질 것 같을 때쯤
반죽이 완성되고,
그걸 다시 잘게 나누어 동그랗게 밀대로 하나하나 밀어야 완성되는 만두피.
동화 속 할머니처럼 손 큰 시어머니는 혼자서 산처럼 쌓인 만두소를 완성하셨고, 온 가족이 들러붙어 만두피를 만든 후, 그 안에 만두소를 부지런히 채웠습니다.
부산에서는 떡국에 고기고명만 얹는데 괜히 서울로 시집와서 만두까지 만든다고 투덜대면서 말이죠.
다들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은지 뒤로 갈수록 점점 왕만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만두는 익히면 여지없이 속 터진 만두가 되어 버렸고요.
이상한 점은 우리가 만든 만두가 파는 것보다 못생기고, 만두피도 두꺼웠지만 맛있었다는 점입니다.
김장 김치맛에 따라 해마다 다른 맛을 선사하는 만두소가 든
손만두를 시어머니가 계속 쪄오시면 연기가 모락모락, 뜨거운 돼지고기와 김치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낡은 한옥에서 가족이 모여 앉아 수다 떨면서 만든
만두 덕분인지
다들 별 탈 없이 한해를 보내왔네요.
낯가리는 인간이라 결혼해서 서먹하기만 했던 시댁식구들과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심어준 것도 손 큰 시어머니의 만두덕이 아닌가 합니다.
이제는 다들 나이가 들어 만들지 않게 된 만두지만
아주버니, 동서 등과 함께 손 큰 시어머니
뒷담화을 하며 만두 만들던 때를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네요.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고, 생각만 해도 삭신이 쑤십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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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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