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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Mar 22.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봄에 달래장>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옵니다.


개나리도 피지 않은 꽃샘추위 시기에 봄을 알아차리는 저만의 신호가 있습니다.

산책할 때 주의 깊게 살피게 되는데요,

바로 거친 땅을 밀고 올라오는 여린 쑥들이  여기저기서 보일 때입니다.


쑥만 보면 어린 시절 자랐었던 부산의 금정산이 떠올라요.

"쑥 캐러 가자!"

엄마 말에 검은 비닐봉지, 과일칼 하나 챙겨 들고 쫄랑쫄랑 뒤를 따라갔죠.


금정산 기슭의 탁 트인 들판에 주저앉아 쑥을 칼로 자르는 순간, 약향기 같은 냄새가 공기 중에 살짝 퍼집니다.

따뜻한 햇살과 쑥향기는 세포에 새겨진 것처럼 봄이 올 때마다 그리움을 느끼게 해요. 쑥 캐는 게 재밌었던 나머지 남의 집 화단에 자란 국화잎도 쑥인 줄 알고 자르다가 혼난 적도 있네요.


그 시절에 돈 주고 쑥을 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직접 캐다가 쑥국을 끓이고, 쑥떡도 만들어 먹었죠. 땅이 좋은 곳에서 자란 쑥은 참 향기로웠는데 말이죠.

어릴 때는 쑥국의 쑥이 쓰고 거칠게만 느껴졌었죠. 지금은 좋은 땅에서 자란 자연산 쑥이 귀하기만 합니다.


세월이 흘러 결혼한 후에는  봄을 알게 되는 시점이 바뀌었습니다. 바로 시어머니가 '달래'을 만들어 주실 때입니다.



별거 없어요. 조미하지 않은 김을 찍어먹는 양념장에 달래만 총총 썰어 넣으면 됩니다.

고춧가루, 깨, 설탕 등 개성대로 넣은 간장에 신의 한수인 달래만 넣으면 끝.  참쉽죠잉.


그게 뭐라고 밥 위에 계란프라이 올리고, 달래장만 넣으면 별 반찬 없어도 맛있는 한 끼가 됩니다. 두부를 구워 그 위에 올리면 근사한 반찬이 되고, 고기와 곁들여 먹을 나물에도 끼얹어 주기만 하면 완성이지요.

인스턴트 음식 많이 먹는 20대 딸도 달래장을 잘 먹으니 치트키나 다름없어요.

돌아가신 엄마의 쑥향대신 시어머니의 달래향이 봄을 담당하게 된 셈입니다.


시어머니의 음식들은 겉보기에  촌스러워 SNS용 사진으로는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어놓은 것이 적은데, 참 후회되네요.  

그런 음식이야말로 조미료 적게 들어간 정성스럽고 맛있는 음식인데 말입니다. 

반짝거리고 화려한 것에만 정신이 팔려 사는 건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나를 위한 소박한 한 끼, 꼭 챙겨 드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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