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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시타 파크의 좀비들

- 도쿄여행 2307 (11)

by 선홍


쇼핑도 물론 좋아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고민을 하고, 유행에도 민감한 편이니까.

다만 이번 여행의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시부야는 내게 별 감흥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다른 곳과 달리 그냥 딸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래서 그런지 MZ들의 성지라는 '미야시타파크'에 도착했을 땐 기대감보다 피곤함이 앞섰다.

앞서 다이칸야마 T-사이트에 가느라 더위에 힘을 많이 소진했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낮의 열기를 고스란히 품은 열대야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고.


딸은 열사병인지 몸살인지 모를 것의 초기증상임에도 덕후답게 열심히 다니더니 또다시 힘듦을 호소했다.

일본 약국에서 사서 먹은 순한 알약은 억센 한국인에겐 잘 듣질 않았다.


'미야시타 파크'안으로 들어간 이유도 순전히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눈에 띄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메종키츠네'카페여서 신선하고 반가웠다. 기대보다 인테리어나 메뉴가 뻔했던 것이 반전이었지만.


우리에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거운 몸을 쉬어갈 의자와 시원한 에어컨만 나오면 될 상황이었으니까.

딸은 레모네이드를 시킨 후 바로 기절하듯 엎드렸고, 나도 시원한 음료를 쭉쭉 들이키며 한숨 돌렸다.


세련된 건물이었지만 '미야시타 파크'를 구경할 체력은 없어 바로 귀가할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체력을 좀 회복했는지 딸이 근처에 있는 '캣 스트리트'를 구경하고 가잔다. 대단한 열정일세, 탄복하며 다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미야시타 파크'는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했을 뿐이었지만 낯선 더위속 쉼과 여유를 제공해 준 고마운 공간으로 기억되었다.


그냥 들어가서 쉴 것이지, 꿍시렁대며 딸의 꽁무니를 쫓아 '캣 스트리트'로 들어서자 내 취향이라는 직감이 팍 들었다. 어둑어둑해져 보랏빛을 띠는 빌딩에서 쏟아지는 노란 불빛들이 아름다워 보여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높지 않고 세련된 빌딩들이 개성을 뽐내며 가지런히 서있는 거리. 성수동과 서촌을 섞어놓은 듯한 기분 좋은 느낌에 스트레스 적은 쇼핑을 할 수 있는 곳 같았다.


미야시타 파크
캣 스트리트

건물 구경만 하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데, 괜찮아 보이는 식당은 젊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체력을 쥐어짜다시피 걸었던 우리는 아무도 없는 주먹밥집으로 그냥 들어갔다. 눈이 돌아가기 전에 뭔가를 먹어야 했으므로. 평범한 맛의 식당이라 아쉬웠지만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우린 마치 충전량이 한 칸밖에 남지 않은 배터리 같았다.

더위속에 허덕이며 걷다가 휴식을 취하면 다시 걸을 힘이 나고, 좀 걷다가 다시 방전되고, 의 반복.

뭔가를 찾아 하염없이 비틀대며 걷는 좀비들 같기도 했다.

그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아무튼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는 여행이니까.


숙소로 갈 힘만 겨우 남았은데, 몸살 초기증상인 딸이 물었다.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들렀다 갈까?"

아이고, 대단하십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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