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의 나는 인생을 마치 접시에 담는 요리처럼 계획했다. 메뉴는 구체적이고 까다로웠다.
첫째, 서울이라는 도시에 내 명의의 주소가 있을 것. 둘째, 거품 목욕이 가능한 욕조와 볕이 드는 베란다가 딸린 집일 것. 셋째, 세계를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놀랍게도 이 중 두 가지 주문은 주방장에게 정확히 전달되었고, 지금 내 눈앞에 서빙되어 있다.
나는 더 이상 거품목욕은 하지 않지만 어쨌든 욕조가 있고, 손바닥만 한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에 가족과 살고 있으니까 꽤 괜찮은 성취율이다. 문제는 가장 마지막 메뉴인데.
인생은 ‘등가교환’의 법칙이 지배하는 냉정한 시장이다. 무언가를 더 손에 쥐려면 손에 든 다른 걸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내려놓은, 아니 강제로 반납당한 꿈의 목록은 이렇다.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전 세계를 유랑하며 글을 쓰는 고독한 작가, 그리고 각 항구마다 애인을 숨겨둔 전설적인 ‘여자 카사노바’. 솔직히 말해, 나는 후자가 되지 못한 것이 꽤나 아쉽다.
쿨하고 시크하게 “아, 그 남자? 파리에 두고 왔어”라고 말하는 삶이라니,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대신 내가 얻은 것은 저녁 5시만 되면 “오늘 저녁 반찬은 또 뭘 해 먹나”를 고민하는, 내가 그토록 경멸해 마지않았던 ‘아줌마’의 삶이다. 20대의 나는 남편과 지지고 볶고 사느니 차라리 평생 혼자 우아하게 늙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현실은 우아한 독거노인 대신, 남편과 투닥거리며 콩나물 값을 따지는 생활인이 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톡 쏘는 차가운 샴페인을 기대했는데, 식탁 위에 뜨끈하고 걸쭉한 팥죽 한 그릇이 놓인 것과 같은 당혹감이다. 쿨하지도 않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며, 심지어 질척거리기까지 한다. 색깔마저 칙칙한 팥죽색이라니.
그런데 참 묘한 일이다. 숟가락을 들고 그 팥죽 같은 일상을 한 입 떠먹어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비참하거나 실망스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질리지 않는 깊은 맛이 난다. 실제로 점점 나이 들수록 팥이 들어간 죽이라면 다 맛있어지는데.
생각해 보면 팥죽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조상들은 팥의 붉은 기운이 잡귀를 쫓아낸다고 믿었다. 샴페인은 기분을 들뜨게 할 뿐이지만, 팥죽은 귀신을 물리친다.
지금 내 삶이 그렇다. 섹시한 카사노바의 삶은 아니지만, 매일 저녁 밥상을 고민하고 가족과 부대끼며 살아내는 이 삶에는 웬만한 잡귀쯤은 발로 뻥 차버릴 수 있는 단단한 ‘생활의 근육’이 붙어 있다.
나는 섹시하진 않지만, 힘이 세다. 귀신도 도망갈 만큼 억척스럽고 강한 생명력이 내 안에 펄떡거리고 있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러 온다면, 아마 기절초풍할 것이다.
“아니, 이 억척스러운 아주머니가 미래의 나라고요? 저 아저씨가 내 남편이고? 내 파리지앵 애인은 어디로 갔죠?”라며 뒷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외모도, 생각도 너무나 달라져서 나조차도 그녀가 낯설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샴페인 잔을 든 그녀에게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내밀며 말해주고 싶다.
“이거 먹고 기운이나 차려. 생각보다 든든해서 꽤 살만하거든.”
앞으로 30년 후,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그때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잃고 또 무언가를 얻은 채 살아가고 있겠지. 카사노바는 영영 되지 못하겠지만, 팥죽 같은 삶을 열심히 끓이다 보면 만나게 될,
30년 뒤의 그 낯선 할머니가 나는 벌써부터 조금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