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수 Mar 10. 2023

캄보디아에서 김치볶음밥을

캄보디아에 갔더니 태국과 베트남은 비건 천국이었다. 캄보디아는 리엘과 미국 달러를 같이 쓰며 (관광객들이 가는 곳은) 메뉴판에 달러로만 적힌 곳도 많다. 보통 캄보디아인이 받는 최저임금 월급은 200불이 안되고 시내 어디든 툭툭비가 1~2불이지만 관광객이 가는(영어가 통하고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의 음식 가격은 평균 3~5불(현지인이 가는 식당은 한 끼 75센트)로 태국과 베트남의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보다 비싸다.


캄보디아는 역사적으로 주변국의 침략을 자주 받았고, 1970년대에 크메르루주라는 공산주의 살인집단이 장악해 인구 사분의 일이 살해당하고 아사한 나라라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굶어 죽던 곳에서 비건은 반찬투정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는 태국, 베트남과 다르게 두부도 많이 먹지 않는지 두부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국민의 대부분(95%)가 불교라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캄보디아 불교는 동물을 먹어도 되는(?) 불교라고 한다... 부처님은 다른 이를 시켜서 동물을 죽이는 것도 살생이라고 하셨는데 안타깝다.


캄폿

캄폿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인신매매금지, 마약밀수와 사용금지, 폭탄과 총기사용금지, 도박금지]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시내의 식당과 술집의 손님 대부분은 백인이었다. 주변에 비영리단체가 많아 그렇다고는 하던데 불법행위를 저지르러 오는 선진국 사람도 많은 걸로 이미 유명했다.

숙소에 있던 경고문

해피카우 앱으로 검색했을 때 휴업 중인 비건 식당 하나, 채식식당이 두 개, 몇몇 비건 옵션 식당이 있었다. 채식 식당 한 곳에 가서 샐러드랑 밥,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샐러드가 이렇게 짜고 맛없을 수 있다니 놀라웠다. 뒷자리에는 히피 차림을 한 백인 두 명이 의자에서 편히 쉬고 있는 고양이를 깨워 괴롭히는 장면이 심히 거슬렸다. 감자튀김은 주문이 누락되어 영영 나오지 않았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닌 듯하나 계산을 잘못해 따져야 했다.


숙소 바로 앞에는 수익금으로 캄보디아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카페가 있었는데 비건/채식 표시가 된 메뉴가 있었다. 과일샐러드를 비건으로 주문했는데 소젖 요거트가 같이 나왔다. 채식 옵션이 있는 크메르(캄보디아) 식당에선 베지 춘권을 한입 베어 물었는데 속이 갈색이라 황급히 휴지에 뱉고는 잘못 나온 것 같다고 말했더니 타로란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끝까지 찝찝했다.


캄폿 자전거투어가이드 캐나다인 엑스팻(현지에 사는 외국인)에게 물었더니 캄보디아 사람들은 물에서 나는 것들을 아주 많이 먹는다고 했다. 투어에 포함된 캄보디아 현지가족의 식사는 물살이와 조개류를 거의 모든 음식 특히 양념에 첨가하며, 태국이나 베트남어로 쓰인 소스를 쓰기 때문에 비건으로 요청해도 확실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먹지 않기로 했다.

자전거 투어 중 풍경

재밌는 건 캄보디아인들도 쌀밥 먹는 것에 매우 진심이어서 안부로 “밥 먹었니?”를 물으며 밥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잔다고 한다. 창문이 작게 나있는 건물에 녹음된 새소리가 막 나오고 있었는데 제비들을 유인해 새들이 집을 짓게 하고 집을 지으면 뺏어서 중국에 비싼 값에 판다고 한다. 언제나 가장 착취당하는 건 동물들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메뉴에 비건 표시가 있는 인도식당은 비건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유제품이 들어있다고 적힌 메뉴에 떡하니 비건 표시가 되어있어서 물었더니 버터와 요거트가 소젖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모르는 듯 대답해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설마 들어갔을까, 섞여있을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야시장에서는 볶음밥을 비건으로 만들어줄 수 있냐니까 흔쾌히 알았다고 했지만 닭알이 들어간 음식이 나와서 다시 만든 일도 있었다. 중국식 만두와 수타면 국수를 파는 집에 비건 메뉴가 있어서 갔는데 비건 불모지라 감사했지만 맛은 그냥 그랬다.


CV Café,

street 726Krong, Krong Kampot, Cambodia

마지막 날 캄보디아 자매가 운영하는 채식식당 CV cafe에 갔을 땐 카페주인인 소피가 쓴 책을 발견해 이야기를 읽고 가게가 조용해 대화도 할 수 있어 좋았다. 두부버거와 감자튀김은 맛있었는데 양이 적었다. 사실 밥과 크메르 음식이 먹고 싶었지만 서양식뿐인 건 아쉬웠다. 만족스러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고 안심할 수 있는 비건 음식을 찾기 어려울수록 스트레스를 받았다.

CV cafe, 두부버거와 감자튀김

시아누크빌

코롱섬으로 가기 위해 캄폿에서 시아누크빌로 가는 기차를 탔다. 기차는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데 허름한 기차역과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시아누크빌 역에 내렸을 때 수많은 툭툭 기사들이 호객행위를 하며 다가왔다.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물었더니 채식주의자라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육지와 바다동물, 젖과 알을 먹지 않는다는 뜻의 캄보디아어 배경화면을 보여줬더니 기사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연신 “와우... 와우...”를 내뱉었다.

육지와 바다동물, 알과 젖을 먹지 않아요 - 크메르어 폰 배경화면
시아누크빌, 숙소로 가는 길

일단 숙소로 향했다. 시아누크빌은 크고 훨씬 많이 개발된 도시였다. 조용한 바닷가 도시였던 이곳에 중국의 자본이 도로를 깔고 호텔과 카지노를 순식간에 엄청나게 지으며 휴양지로 만들고 있을 때 코로나가 터져버려 짓다 멈춘 유령건물이 무려 1000개가 넘는다. 일자리와 도시의 발전에 잔뜩 기대했던 캄보디아 사람들은 흉측한 유령건물과 망가져버린 도시에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숙소는 좋았지만 외진 곳에 있었다. 음식 배달이 가능해 숙소직원이 전화로 주문하려 했지만 한 시간이나 걸린다고 해서 근처에 나갔다. 식당도 별로 없고 같은 메뉴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파는 걸 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주문했다. 동물성 재료를 뺀 공심채볶음과 브로콜리볶음, 밥을 시켜 캄폿에서 산 팟캐마오맛 브로드빈이랑 같이 먹었다. 여기도 비건으로 먹기는 녹록지 않다.

배달음식. 플라스틱 용기는 숙소주인이 식당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코롱

아침으로 어제랑 같은 식당에서 공심채볶음 큰 거랑 밥 세 개를 주문했는데 작은 게 왔다. 밥 두 개를 공심채랑 브로드빈이랑 먹고 남은 하나를 챙겼다. 항구로 가는 툭툭 기사한테 아보카도를 사고 싶다니까 어떤 과일가게에서 멈췄다. 가까이 갔는데 아보카도가 보이지 않아 물었더니 주인 바로 앞에 두 개 있던 아보카도를 보여줬다. 하나를 고르고 사과 두 개를 샀다. 섬으로 가는 보급선에서 밥이랑 완벽하게 익은 아보카도, 브로드빈을 먹었다.

보급선을 타고 코롱섬으로 가는 길

Lonely Beach,

18000 Sihanoukville, Koh Rong Island, Kaoh Rung Island, Koh Rong, Cambodia

코롱섬의 숙소는 주변에 거의 아무것도 없는 외딴곳이었다. 음식을 판다고는 하는데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괜찮은 비건 음식은 별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 밥만 주문해서 바리바리 싸간 김과 브로드빈이랑 먹으려고 했다. 놀랍게도 숙소 식당엔 비건 메뉴가 꽤 많았는데 맛도 있고 양도 많았다. 삼 박을 머물며 그곳의 비건 메뉴는 다 먹어봤는데 첫날 먹은 코사무이(밥과 샐러드, 채소볶음)가 가장 맛있었다.

예쁘고 맛있고 배부른 론리비치의 비건 메뉴; 코사무이

론리비치는 친환경을 지향하는 숙소다. 나무로만 만들어진 방갈로에는 침대와 나무로 된 사물함 하나만 있는데 아침에는 나무로 된 벽과 창문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고, 밤에는 지붕과 벽 사이로 박쥐가 드나든다. 화장실은 우물물과 모은 빗물을 담아놓은 커다란 물통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고, 변기 물을 내린다. 플라스틱 어메니티는 제공하지 않고, 태양광 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쓰는데 전자기기 충전은 식당에서만 할 수 있다.

모든 물을 퍼서 쓰는 화장실

숙소 근처는 빛공해가 적어 보름달이 뜨는 삼일을 제외하면 바다에서 발광플랑크톤을 볼 수 있다. 너무 외진 곳이고 개발이 되지 않아 오토바이택시로만 오고 갈 수 있다. 코롱섬에는 공항을 짓기 위한 부지 정리를 했고 공항 건설이 시작될 것이다(2023.01) 아마 곧 도로도 놓고 사람들이 가기 쉬워져 더 이상 론리비치가 아니게 될 것 같다.

론리비치의 맑은 바닷물

프놈펜

대도시답게 비건 식당도 있고, 비건 식당과 숙소를 함께 운영하는 곳도 두 곳 있었다. 론리비치에서 지내며 문명이 그리워 따뜻한 수돗물이 콸콸 나오는 호화로운 호텔에 묵었다. 조식이 너무 아시아 스타일이라며 불만을 토하는 백인이 적은 후기를 보고 선택했는데 죽이 있어서 섬에 싸갔던 김가루를 넣어 먹었다. 첫날엔 베이크드빈, 찐 고구마랑 타로, 샐러드, 빵, 주스, 과일까지 먹을 게 많았는데 다음날부터 점점 비건 음식이 줄어들어서 요청했더니 따로 만들어줬다.

조식. 죽과 샐러드

Bong Bonlai at YK Art House

13A St 830 Phnom Penh, 120101, Cambodia

쉬고 운동하고 글도 쓰다가 비건 식당에 찾아갔다. 숙소도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메뉴가 크메르부터 동서양을 망라했다. 밥 위에 구운 템페와 아보카도, 채소가 올라간 포케볼은 비빔밥 느낌도 나고 맛있었다. 메뉴에서 쉐이크에 들어간다는 코코넛아이스크림 따로 시켰는데 솔직히 맛과 식감이 별로였지만 아이스크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그마저 감사했다.

포케볼과 월남쌈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밥을 먹고 근처 쇼핑몰에서 영화를 보고 들른 거대한 슈퍼마켓엔 별의별 물건이 다 있어서 구경하며 이것저것 담았다. 특히 태국 비건 제품이 많았는데 태국에서 가장 좋아한 비건 타로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프놈펜은 그래도 비건 음식이 있지만 가격에 비해 별로 만족스럽지 않아 장을 봐서 요리하고 싶은 마음에 종종 울컥울컥 했다.


Masala Dosa Street Kitchen,

Samdach Sothearos Boulevard (3), Phnom Penh, Cambodia

캄보디아에서 굳이 인도음식을 먹고 싶진 않았지만 비건 식당도 적고 해피카우와 구글 평점이 거의 만점이라 인도길거리음식식당에 갔다.  처음으로 먹어본 도사는 괜찮지만 다시 찾을 것 같진 않은 맛. 으깬 감자를 양념하고 튀겨서 빵 사이에 끼워 만든 샌드위치는 크기는 작았지만 맛있었다. 인도는 감자를 참 좋아한다. 같이 나온 작은 초록 고추는 처음엔 안 매웠는데 두 번째로 베어 물었을 땐 컥 소리가 나도록 매웠다.

도사
안에는 이렇게
샌드위치Vada Pav와 매운 고추

Dudu Tea,

Sisowat Quay Phnom Penh, 12204, Phnom Penh, Cambodia

매운 걸 먹고 나니 단 것이 당겼다. 마침 강가 광장 근처에 식물성 버블티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비건이 되고 처음 먹는 버블티였다. 메뉴의 코코넛밀크로 만든 망고맛 버블티 작은 이미지에 버블이 안 보여서 펄추가를 했다가 음료 반 버블(두 가지) 반의 달디단 망고 코코넛 음료를 씹고 마셨다. 다음이 있다면 펄추가를 하지 않으리.

코코넛 밀크티 메뉴
버블이 너무 많이 들어간 망고코코넛밀크티

Sacred Lotus - Vegan - Café x Hostel

#127C E0, St. 440, Toul Tompong II, Chamkarmon Phnom penh, 12311, Cambodia

비건 식당이 딸린 호스텔에 묵고 싶어서 프놈펜에서 조금 오래 머물렀다. 삼일이면 충분할 곳을 세 밤 더 예약했다. 가격이 저렴해서 비건 식당인지 모르고 묵는 논비건 백패커들이 많았다.. 도미토리는 좀 낫나 모르겠는데 더블룸은 너무 열악했다. 창문이 없고, 화장실 문손잡이는 고장 났으며 화장실과 방은 위가 뚫린 벽 하나로 나뉘어 있는데 환풍기를 틀면 주방냄새가 들어왔다. 당장 도망가고 싶을 정도였는데 비건 식당이고 루프탑 라운지가 있어 일단 묵었는데 삼일동안 그렇게 지내고 싶지는 않아 마지막 밤은 취소했다.

카페
루프탑 라운지

식당은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괜찮으면서 양도 많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차이라테와 망고라씨도 있었다. 숙소 건물에서 나가지 않고도 루프탑에서 비건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좋았다.


씨엠립

앙코르와트 때문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가 채식 식당도 비건 옵션도 은근히 많았다. 옷이나 기념품을 구경하면 자꾸 뭐 좀 제발 사라고 애원해서 물건 구경도 제대로 못하게 부담스러웠다. 시내에는 닥터피쉬 체험이라며 굶주린 물살이들이 수조에 갇혀 사람들의 각질을 뜯고 있었는데 그 물살이들은 닥터피쉬로 알려진 종이 아니었다. 재래시장에 가면 죽어있고 죽어가는 동물들이 채소 과일상과 두서없이 섞여 있어 장을 보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HeyBong The Healthy Secrets 100% Vegan,

Smiling Circuit, Krong Siem Reap 17252, Cambodia 

비건 식당에 갔는데 메뉴에 김치볶음밥이 있어서 또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주문했는데 세상에... 맛있었다. 김치볶음밥 맛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진짜 김치볶음밥을 만나게 될 줄이야. 너무 맛있다니까 김치도 식당에서 직접 담근다고 했다. 김치볶음밥을 먹으러 한 번 더, 버거를 먹으러 또 한 번 갔는데 여기는 이상하게 감자튀김이 없다. 고구마튀김과 버거는 김치볶음밥만큼 맛있지 않았다.

감동의 김치볶음밥

앙코르와트는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최대한 털기 위한 곳으로 느껴졌는데 특히 밥값이 캄보디아에서 가장 비싼 곳이다. 그렇게 외딴 코롱섬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채식한다고 설명해서 툭툭 기사님이 선택지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줬는데 어쩔 수 없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다음날 숙소 근처에서 공심채볶음, 버섯볶음, 밥을 포장하고, 주스 두 잔까지 합친 가격이 앙코르와트 한 접시 가격이었다.


Baby Elephant Boutique Hotel,

Vihearchin Svay Dangkum 418 Street 53, Krong Siem Reap, Cambodia

숙소 바로 옆 호텔 식당에 비건 메뉴가 많다는 걸 알게 되어 찾아갔는데 심지어 샌드위치는 전부 비건이었다. 메뉴에 적힌 조식을 보고 다음날 아침에 또 갔다. 메뉴하나에 세 가지로 차/커피, 샐러드/빵, 과일/주스 하나씩을 고르는데 5불이었다. 다음에는 여기에서 묵어도 좋을 것 같다.

메뉴
직접만든 귀리유를 넣은 홍차
토푸스크램블
과일 샐러드

한 번은 텃밭에서 키운 작물을 요리에 사용하고 마당이 예쁜 채식식당에서 캄보디아 음식이라는 아목을 먹어봤다. 내 입맛에는 조금 짠 커리 같았다. 캄보디아에 자주 왔다던 한 독일 남자는 특별히 캄보디아 음식이랄 게 없고 그냥 다 태국 커리랑 비슷하다고 말했다. 종종 레드 커리, 그린 커리가 있고 팟타이 비슷한 것도 있었는데 많이 비슷하고 조금 달랐다.

아목

마지막 날엔 규모가 어마어마한 중국채식식당에 갔는데 말이 채식이지 여기는 대부분의 메뉴에 닭알이 들어갔다. 그래서 몇 없는 것 중에 김치국수를 골랐다. 해외에 간 한국인은 김치를 보면 약해진다. 씨엠립에 한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 그렇게 김치메뉴가 많은 걸까.

김치 국수

앙코르와트와 주변 사원은 고대도시였기 때문에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패키지나 자전거투어가 아니라면 대부분 툭툭을 고용하는데 캄폿에서 추천받은 여성 툭툭기사를 고용해서 삼일을 다녔다. 기사님과 말은 안 통했지만 항상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들어 여기 있다고 반겨주시고 더위에 지쳐 툭툭으로 돌아오면 찬 물수건을 건네주셨다. 단체를 만들고 예약을 담당하는 분은 새 탐조 관광가이드를 하셨던 분인데 조카가 한국어를 전공한 관광가이드라 툭툭을 예약할 때 한국어를 하는 여성 툭툭기사도 있다고 하셨다. 인스타그램@driver_srey

바탐방

바탐방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데 영어를 잘하는 툭툭기사가 다가와 숙소까지 정직한 가격을 불렀다. 보통은 바가지 가격을 부르기 때문에 캄보디아 툭툭앱 PassApp으로 확인하고 흥정한다. 툭툭을 타고 가는데 지도를 보여주며 바탐방 투어가 있다고 했다. 바탐방에서 뭘 할지 사실 잘 몰라 감이 안 잡히던 차에 툭툭운전과 가이드까지 해준다고 해서 투어를 예약했다.


Monorom Garden (សួន មនោរម្យ),

454W+9MQ, Krong Battambang, Cambodia

숙소에 들어가 짐을 두고 버스 타는 곳과 가까운 채식식당까지 걸었다. 바탐방이 캄보디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는데 비포장도로가 너무 많아 먼지바람이 엄청 불었다. 메뉴는 많은데 비건 표시가 안 되어 있어서 일일이 물어야 했다. 두부, 채소볶음을 비건으로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채식 제품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 너무 궁금했던 대만라면이 있었다!

두부튀김과 케일볶음, 콜리플라워 볶음
대만 비건라면!!!

바탐방에선 계속 이 식당만 갔다. 대만 비건 라면은 다섯 개 포장된 것만 있었는데 세 가지 맛이 다 궁금하지만 다섯 개씩 세 가지 맛을 살 순 없었다. 혹시 낱개로 사도 되냐니까 흔쾌히 된다고 하셔서 연달아 “어꾼(감사합니다)”를 말했다. 둘둘 하나 이렇게 세 가지 맛을 사고 만족스럽게 가게를 나섰다. 약속장소에 가니 툭툭기사가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낸다고 했다. 그 사람이 하는 줄 알고 예약한 거라 조금 당황하는데 관광용 툭툭을 타고 이피라는 기사/가이드가 왔다.


이피 역시 영어를 잘하고 투어도 좋았다. 버섯농사짓는 가정 집에가 버섯 농사를 구경했다. 이피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버섯을 아주 많이 먹는다고 했다. 지나가다가 파파야나무, 용과나무, 미모사, 팜나무 앞에 멈춰서 설명하고 열매가 달린 모습을 보여줬는데 때가 아니라 용과는 아직 없었다. 한 번은 물을 뿌리고 있는 고추농장을 보여주는데 파트너가 “캄보디아는 음식에 고추를 안 쓰는 것 같던데요?”하니 맞다고 고추를 안 먹는다고 했다. 그럼 이건 수출용이냐고 물었더니 이피는 태국으로 수출한다고 대답했고 셋 다 빵 터졌다. 태국은 거의 모든 음식에 고추를 넣는데 베트남과 캄보디아 음식은 하나도 맵지 않아 매운맛이 그리운 시절이었다.

코코넛밀크 찹쌀이 들어있는 대나무 통

가다가 또 멈춰서 대나무 통에 찹쌀밥이랑 콩이랑 코코넛밀크를 섞은 걸 넣고 두 시간인가 불에 구운 다음 겉껍질 한 겹을 벗겨서 손으로 바나나처럼 껍질을 벗겨 먹을 수 있게 만든 간식을 만드는 곳을 보고 맛봤다. 코코넛 맛 약밥 같은 맛이다. 동남아는 찹쌀로 디저트나 간식을 많이 만드는데 덕분에 내가 찹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 알게 되었다. 툭툭을 타고 지나가면서 길거리에 커다란 쥐를 구워서 파는 걸 보았는데 긴 꼬리가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이피는 크메르루주 시대에 어린이였는데 엄마아빠와 떨어져 동물의 변을 모아 거름을 만드는 일을 했다고 했다. 엄마는 그때 아사하셨고, 삼촌은 교육받은 사람이라 죽었고, 크메르루주 시대가 끝나고 아빠와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투어에는 살인동굴이 있었는데 크메르루주가 교육받은 사람들과 어린이들의 손을 뒤로 묶고 밀어 던져 죽인 곳이다. 캄보디아에는 킬링필드, 킬링케이브처럼 대학살 장소가 많다. 캄보디아를 떠나 태국에 가서 넷플릭스로 <First They Killed My Father>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를 보았다. 어릴 때 크메르루주를 직접 겪은 여성이 쓴 책을 원작으로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영화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박쥐동굴 뒤편에서 석양을 보고 십 분 정도 지나니 사냥하러 다 함께 나가는 박쥐 떼를 볼 수 있었다. 무려 천만 마리가 넘는다는데 정말 끊임없이 나왔다. 우리가 있던 곳은 동굴 뒤쪽이고 동굴 앞으로도 많이 나간다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건지. 사실 바탐방은 안 가려다 간 곳인데 안 갔으면 서운했을 정도로 좋았다.


능숙하게 해바라기씨를 받아먹는 원숭이

* 캄보디아 영상

https://youtu.be/cUX2Hut_vZI

*추천할 곳만 이름을 적었고 나머지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아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 중에서 매운맛입니다. 특권을 계속해서 일깨워주는 동시에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자연과 야생동물들이 신비하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 일어났고 일어나는 일들은 무섭고 끔찍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트남] 푸꾸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