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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투룸매거진 43호(2024년 7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투룸매거진 앱에서 더 많은 사진과 예쁘게 디자인 된 기사로 볼 수 있습니다.
배낭을 챙겨 동남아로 떠날 때는 인도에 가고픈 마음이 없었고, 적당한 관심이 쌓였을 땐 이미 긴 여행에 지쳐 차마 그 방대한 곳을 속속들이 탐험할 기운이 없었다. 다음 언젠가로 무기한 연기하려다 어차피 독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으니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자자한 명성에 걸맞게 인도는 비자 신청부터 만만치 않았다. 종교는 물론이고 최근 10년간 방문한 나라를 전부 나열하라더니 엄마, 아빠의 이름, 현재와 과거의 국적, 태어난 곳을 묻는 등의 서류작성을 간신히 마쳤으나 억울하게 퇴짜를 맞았다. 이메일에 답장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 스팸 메일함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삼세번 문의했고 처절하게 씹혔다. 불쾌한 감각이 떠올랐다. 다행히 한국 여권은 도착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잔잔한 긴장감을 안고 델리공항에 내렸다. 세상 느긋한 표정의 할아버지 직원은 나무늘보만큼 천천히 서류를 확인하고는 나를 통과시켜 주었다. 공항 근처의 말도 안 되게 비싸고 오래된 호텔 방은 낡고 어두컴컴했고, 조식은 기대 이상으로 단정하고 맛있었다. 마침내 인도의 순한 맛,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리시케시 내 수백 개의 요가스쿨로 가득한 타포반에 도착했다.
요가스쿨에서 보낸 택시는 어떤 공사장 앞, 소가 앉아 있는 모래 산이 쌓인 막다른 좁은 길에 멈췄다. 기사와 말이 통하지 않아 일단 내려서 골목길을 따라 요가스쿨 근처의 숙소에 찾아갔다. 넓은 유리창으로 따스한 빛이 내리쬐는 라운지 겸 카페 바닥에 짐을 내려놓고 앉으니 후~ 하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인도에 도착한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몇 번이나 마음이 요동쳤다. 귀엽고 작은 컵에 담긴 코코넛 마살라 짜이에서는 그냥 밀크티 맛이 났다. 다른 가게의 짜이도 다 거기서 거기였다. 진짜 짜이는 길거리에 있다는데 외국인은 배탈이 날 수 있으니, 길거리음식을 절대 먹지 말라고 하고, 외국인들이 가는 카페의 짜이는 밀크티에 차이 향신료 가루를 조금 뿌리는 게 전부였다. 슈퍼에서 파는 마살라 짜이 티백을 우려 오트밀크 넣어 마시니 좀 나았다. 대여섯 군데에서 짜이를 맛본 이후로는 코코넛 골든밀크를 마셨다.
온라인 숙소앱의 거의 모든 숙소 후기는 이런저런 불만으로 가득했다. 고심해서 고르고 고른 숙소의 방을 실물로 접하면 항상 사진에서 본 것과는 많이 다르게 엉성하고, 여기저기 얼룩덜룩하게 때가 묻어있었다. 식당이나 숙소의 직원들은 대부분 마치 방금 이발소에 다녀온 듯 머리와 얼굴의 털이 깔끔하게 정리된 남자들이다. 그 정성으로 청소를 한다면 참 좋을 텐데... 델리보다 공기의 질은 조금 나은 형편이지만 각종 탈것이 매연을 뿜으며 서로 먼저 가겠다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대는 도로에 날리는 흙먼지와 플라스틱을 포함한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에 자꾸만 재채기가 났다. 소똥 지뢰가 널린 폭 1미터 남짓의 좁다란 골목길에는 인도인과 외국인, 귀가 먹을 정도로 빵빵대는 오토바이, 구걸하는 이와 언제나 아무렴 덤덤한 소들이 다닌다. 전에 베트남이 카오스라고 쓴 것을 정정하고 싶다. 인도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이다.
인터넷에 ‘리시케시 요가스쿨’을 검색하면 우르르 튀어나오는 저마다 자기네가 베스트스쿨이라는 수백 개의 광고 가운데 숙소 만족도가 가장 높은 정원이 딸린 곳을 골랐다. 그러면 안 됐는데. 조금 기대했고, 크게 실망했다. 요가스쿨 숙소에 체크인하자마자 청소도구를 사와 묵은때를 벗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케팅에 낚인 게 아닌가 싶었다. 첫날은 오프닝 세레모니와 사진 찍는 걸로 하루가 다 갔다. 히터가 없는 방의 문틈으로 찬바람이 드나들었다. 쌀쌀했던 처음 며칠은 따뜻한 물이 아예 안 나왔고, 여자 선생님도, 해부학 수업도 없었으며 소규모 그룹이라더니 사람이 너무 많아 요가 할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북미,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일요일만 빼고 아침 6시 반부터 저녁 7시까지 하타*, 쿤달리니*, 명상과 쁘라나야마(호흡조절수련), 자세 교정, 요가 철학, 아쉬탕가* 요가 수업을 들었다.
*하타; 요가 아사나의 원조 격으로 다양한 동작에서 몇분씩 머문다. 가장 보편적인 요가.
*쿤달리니; 쿤달리니 요가의 정의는 화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내가 있었던 요가스쿨에서는 이론을 주로 배우고, 역동적인 테라피 같은 크리야 세션을 일주일에 한번씩 했다.
*아쉬탕가; 정해진 시퀀스와 호흡으로 수련하는 요가 아사나로 힘과 기술이 많이 필요한 요가.
요가스쿨에 가면 하루 종일 아사나*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요가는 나와 우주의 통합Union이며 해탈에 이르기 위한 영적인 길이고, 아사나는 더 긴 명상을 위한 수행이란다. 쿤달리니*와 철학 시간엔 주로 여러 산스크리트 이름이 나오는 이론을 배우고 질문하고 토론했다. 여러 명상과 호흡법은 108구슬 목걸이가 필요하거나 만트라를 반복하고, 한쪽 콧구멍으로 들이쉬고 참고 내쉬는 등 여간 복잡해서 침묵하며 강가(갠지스강)로 걸어가 명상하고 돌아오는 날이 가장 좋았다. 교정 수업에서 아사나에 들어가고 나오는 법과 정확한 자세, 도구를 사용해 바로잡는 법을 배웠다. 이제껏 수많은 동작을 엉망으로 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짜뚜랑가*에 온몸이 후들거리는 아쉬탕가 요가수업은 깨발랄한 선생님이 귀여워서 빠질 수 없었다. 하루 4시간 아사나로도 녹초가 되는데 이론 수업마저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아사나: 요가의 모든 동작이나 체위를 이르는 말. 명상을 하기 위해 편안하고 안정되게 앉는 방법을 일컫기도 한다.
*짜뚜랑가: 차투랑가 단다아사나. 코어의 힘을 강화시키는 요가 동작으로 팔굽혀펴기와 비슷하다.
모든 수업은 흥미진진했고, 매니지먼트는 갑갑했다. 내일 일출보러 떠나는 시각을 오늘 점심때 확정하고, 저녁 식사 후 예정에 없던 사운드 힐링 세션을 저녁 식사 전 아쉬탕가 선생님이 전해주는 식이다. 급식도 약속에 비해 형편없어 학생들이 밖에서 견과류나 과일을 사 와 먹었다. 종종 수업이나 행사가 있을 때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더니 마케팅에만 쓰고 학생들이 달라면 가볍게 무시했다. 휴일 없이 일하는 요가스쿨 직원들은 원숭이들을 쫓아내느라 바빴다. 원숭이들은 화분을 쓰러뜨려 흙에서 뭘 집어먹고, 창틀에 앉아 교실 안을 구경하고, 학생들 방에 침입해 간식을 훔쳐 먹고, 테라스에 널린 빨랫감을 훔쳐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녔다. 정신없이 수업을 듣던 어느 날 갑자기 시험이 있단다. 결과는 대충 다들 잘했다는 평이었고, 95% 결석에 시험을 하나도 치지 않은 친구를 포함한 모두가 같은 자격증을 받았다.
그렇게 짜뚜랑가도 제대로 못 하는 내게 요가 강사 자격증이 생겼다. 적잖이 머쓱하다.
인도에 있을 땐 유난히 강렬한 불쾌함과 유쾌함의 감각이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고 쓸려갔다. 요가의 성지인 리시케시주는 육류와 주류의 판매가 금지라 채식하기 좋다. 다만, 유제품 사용에 한없이 너그러워 비건천국은 아니다. 도착지도 아닌데 멈춰선 툭툭은 다짜고짜 내리라고 내쫓고, 예약한 택시는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쓰담 받을 준비를 하고 다니는 천진한 눈망울의 소와 개들이 있다. 저렴하고 맛있는 길거리음식을 포기했건만 언제나 배가 살살 아팠다. 운이 좋으면 배탈과 설사에서 끝나지만 살모넬라균에 감염되어 환자와 함께 온 가족들로 북적이는 병원에 가야 하거나, 원숭이한테 긁혀 광견병 백신을 4차까지 맞을 수도 있다. 밖에 나가면 소와 소똥, 오토바이를 피해 다니기도 바쁜데 호객행위, 구걸, 그냥 궁금한 사람, 다짜고짜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말을 걸어와 혼이 쏙 빠진다.
처음엔 그곳의 청결도와 소음과 오염과 일 처리에 진절머리를 치며 여기에 다시는 얼씬도 안 하겠다던 요가스쿨 친구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비행기 표를 연장하거나 내년에 다시 돌아와 6개월 동안 머물 계획을 세웠다.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리시케시에는 각종 요가와 명상, 쁘라나야마, 사운드 힐링, 만달라 문양* 그리기 수업 등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과 연결되기 쉬운 곳이기 때문인 것 같다. 유. 연. 함. 그 자체인 인도에서 삶은 계획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현재에 머물 것, 누구도 함부로 믿지 말 것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가진 특권과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 참을 수 있는 더러움의 한계를 마주했다. 어쩐지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었고, 평정심인지 내려놓음인지 모르겠지만 정신력이 아주 약간 강해지는 느낌이 들었으며 종종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만달라 문양; 불교미술의 한 종류로 가운데를 중심으로 문양을 그린다.
어쩐지 그곳에서의 시간이 끝나가는 것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지만, 인도는 다채롭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향기롭고 재밌고 맛있는 곳으로 매력이 넘친다. 며칠을 더 머물며 함께 남은 요가 친구들과 일일 요가 수업도 듣고, 강가에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녔다. 리시케시를 떠나는 날, 델리행 비행기에서 쨍한 주황빛을 보았다. 거짓말처럼 눈앞에 파르마스 니케탄 아쉬람*의 스와미지*가 있었다. 공항버스에 혼자 앉아 있는 스와미지에게 다가가 리시케시에 간 이유 중 하나인 영국에서 만난 지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안부를 전했다. 그는 나보고 어디서 묵었냐고 묻더니 왜 우리 아쉬람에서 묵지 않았냐며 갑자기 1이 아주 많이 들어가는 본인의 번호를 찍어 주었다. 다음에는 꼭 우리 아쉬람에 오라며 이제 네 집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아직 돌아올 계획도 없고, 나중에 다시 와도 남인도에 가려고 했는데 참. 인도는 떠나는 날까지 웃긴다.
*아쉬람; 영적스승이 머무는 사원으로 숙식과 요가, 명상을 할 수 있다
*스와미지=구루지=구루; 영적스승
다시 돌아온 독일은 그렇게 깨끗하고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맑은 공기, 조용한 도로,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들. 한동안 커리와 짜이를 멀리했고, 가야뜨리 만트라를 듣고 또 들었으며 모든 것에 그저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