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Feb 01. 2019

독일 횡단 중, 하노버가 거기 있었다

26일: 독일 하노버, 랑엔펠트

독일은 유럽 대륙 중앙의 큰 나라다. 영토는 프랑스나 스페인이 더 크지만 인구는 독일이 제일 많다. 19세기 후반에 연방 형태로 국가를 이루었고 계속된 전쟁으로 국경이 수없이 바뀌었다. 폴란드 서쪽과 북쪽 해안은 과거 프러시아 영토였고 그때부터 수도가 베를린이었다. 그래서 수도 베를린 위치는 폴란드에 가까운 동쪽 끝이다. 오늘 일정은 저녁식사 전까지 동쪽 끝 베를린에서 서쪽 끝 쾰른 근교 랑엔펠트라는 소도시까지 열심히 달리는 거였다. 랑엔펠트에 우리 가족과 오랜 세월 친한 분이 살고 계셔서 이틀 동안 머물기로 되어 있었다. 뒤셀도르프와 쾰른 중간의 작은 도시다. 독일 아우토반이면 너끈히 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폭넓은 독일 북부를 비스듬히 횡단하는 장거리지만, 시설 좋고 매너 좋은 고속도로는 축지법 효과를 낸다. 베를린에서 랑엔펠트까지 6시간 운전으로 여유롭게 도착했으니 고마운 아우토반이다. 


베를린에서 쾰른까지 가는 길에 지나치는 도시가 한둘이 아니다. 점심 먹을 겸 딱 한 곳만 들를 여유가 있었다. 관광으로 각광받는 핫플레이스는 없었는데, 그래서 한 군데 찍기가 더 힘들었다.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잠시 쉬면 좋겠다 싶은 위치에 하노버가 있었다. 하노버라는 이름은 굉장히 낯익다. 관광지로 유명하진 않지만 어릴 때부터 유럽 배경의 소설이나 이야기에 많이 등장했다. 지리적으로 중앙이라 교통의 요지로 많이 언급되었다. 누구 이름인가 했더니 지금 영국 왕실의 직전 계보가 '하노버 왕조'다. 


영국의 하노버 왕조는 18세기 초 조지 1세부터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한 1901년까지다. 그 후에도 '외가'로 이름이 남았다. 같은 독일계 가문인 앨버트 공 가문 이름으로 잠깐 개칭되었다가,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식 이름에 거부감이 든다는 이유로 '윈저'로 개칭했다. 어쨌든 독일계 왕조인 셈이다. 조지 1세가 1714년에 즉위한 후 1837년에 빅토리아 여왕 즉위 전까지는 한 왕이 영국과 하노버 공국(1814년부터는 왕국)을 동시에 다스리는 '동군연합'이었다. 독일이 여왕을 인정하지 않아서 빅토리아 여왕 때 분리되었다고 한다. 하노버 군주가 영국 왕이었던 기간이 100년이 넘는다. 그 흔적이라 할 만한 장소가 '헤렌하우젠 정원'이었다. 하노버에서 유일하게 관광지로 표시된 곳이다. 거기서 점심을 먹자며 하노버로 향했다. 

하노버 신 시청사와 그 앞 호수공원

하노버 시는 검색하면 관광보다 산업 박람회가 먼저 뜨는 비즈니스 중심 도시다. 일하기 좋고 살기 좋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다. 관광자원이 거의 없다. 우리처럼 잠깐 들른 입장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외곽의 헤렌하우젠 정원 외에는 구시가와 신 시청사 정도가 볼거리다. 구시가는 다른 관광도시에도 있으니 신 시청사만 보고 정원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신 시청사, 생각보다 훨씬 인상적이었다. 매우 고풍스러운 건물이라 당연히 근대 이전 어떤 영주나 귀족의 성일 것 같다. 무려 1913년에 완공한, 순전히 시청사로 쓰려고 지은 현대 건물이라는 게 더 인상적이다. 당시 구시가 밖을 개발하면서 12년 동안 천만 마르크라는 거액을 들여 하노버의 경제력을 과시한 건물이다. 2차 대전 때 망가지기는 했지만 곧 복구했고, 시청사 겸 각종 전시와 이벤트가 열리는 랜드마크로 쓰고 있다. 내부 전시까지 볼 시간은 없었다. 1층 중앙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달랑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들고 호수 한 바퀴 돌며 건물만 감상했다. 날씨가 화창해서 호수에 비친 그림자까지 일품이었는데, 궁전이 아니었다니 볼수록 좀 황당했다.  

헤렌하우젠 정원은 잘 정리한 화단으로 유명한 큰 정원이다.

헤렌하우젠 정원 홍보 문구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바로크식 정원'이다. 영국 왕실(스튜어트 왕조) 제임스 1세의 외손녀로 하노버 선제후와 결혼한 소피아 선제후비가 여름용으로 꾸민 정원이라고 한다. 그녀의 아들이 조지 1세로 영국 왕을 겸하면서 하노버 왕조를 연다. 정원은 엄청나게 큰데 왕궁은 존재감이 없는 단순한 건물이다. 일반 귀족 저택이라 쳐도 매우 소박한 편이다. 2차 대전 때 완전히 부서졌는데 복구를 할지 말지 논쟁하면서 오래 방치되었다고 한다. 건물이 복원된 게 2013년인데, 겉모양만 19세기 양식이고 내부는 세미나실이나 연회장으로 대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1층에 안내소와 작은 전시관이 같이 있다. 여름 궁전이었다는데 궁전은 별로 의미가 없어서 입장료는 정원만 받는다. 바로크식 대정원(Grosser Garten) 말고도 영국식이라며 자연스러운 숲처럼 개방된 정원(Georgengarten)이 옆에 있고, 난초를 많이 모았다는 식물원(Berggarten)도 있다. 대정원만 들어가도 무조건 모든 정원용 표를 사야 해서 표값이 인당 8유로나 된다. 주중이라 사람이 없어서 분수도 작동하지 않았는데 그 입장료를 다 받다니 너무 비쌌다.

헤렌하우젠 정원의 월요일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Niki de Saint Phalle의 동굴(Grotto) 작품

하노버가 왕국이 된 건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9세기 초지만, 선제후국이었던 18세기가 더 전성기였다. 19세기에는 프러시아와 경쟁하다가 1866년에 프러시아에 병합된다. 헤렌하우젠 정원은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소피아 선제후비가 무려 30년간 야심 차게 꾸민 작품이다. 당시 하노버 선제후국은 유럽의 중심을 자처할 만큼 위세 당당했다. 짧은 공원 안내 중에 그 시절에 러시아 표트르 대제가 소피 선제후비의 파티에 왔고, 헨델이 작곡가 겸 연주자로 일했다는 등의 설명이 있었다. 지금 그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곳은 이 공원뿐이다. 넓은 '바로크 스타일'에 지루할 수 있는 정원 한쪽에는 특이한 공간도 있다. 정원에서 궁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 정교한 조각의 폭포 벽이 있다. 그런데 왼쪽은 웬 단층 건물에 '동굴(Grotto)'이 있다. 원래 귀족들이 땡볕 정원에서 놀다가 쉬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예술가 니키 드 상팔(Niki de Saint Phalle)이 거울 조각을 붙여 보석함 같은 동굴 작품을 설치했다. 2003년에 만들어 정원의 명물이 되었다. 지키는 사람도 없어서 무심히 들어갔다 나왔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작품이었다. 이게 뭐하는 곳이냐, 정원이랑 안 어울리지 않느냐고 생각했는데, 역시 안목이 없으면 작품을 알아볼 수 없다.   


주말이나 축제가 있을 때는 붐비는지 모르겠다. 월요일 낮에 방문한 정원은 너무 고요했다. 큰 분수가 작동하지 않아서 물소리도 거의 없다. 고요하고 텅 빈 정원을 마치 전세 낸 듯 산책했다. 전세 냈다고 생각하면 8유로 입장료도 비싼 건 아니었다. 진짜 깔끔해서 개미새끼 한 마리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관목과 나무를 반듯하게 깎아서 그늘도 없다. 무늬를 넣은 화단은 공중에서 보면 장관일 것이다. 2층 높이 궁전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걸로는 정원 전체를 조망할 수 없었다. 한적해서 좋긴 한데 강렬한 햇살 때문에 오래 즐기기는 어렵다. 정원 내에 카페나 매점 같은 편의시설도 없다. 결국 점심은 정원을 빠져나와 주차장 가는 길의 푸드트럭에서 소시지와 빵으로 해결했다. 18세기 초 정원에 온 정성을 쏟은 소피아 선제후비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을까. 그때는 항상 북적여서 허전할 날이 없었다면 다행이다. 정원 덕분에 이름이 남았으니 보람 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지나간 나날을 홀로 기억하는 정원은 왠지 공허하게 느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인에게 포츠담의 동의어는 그때 그 '회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