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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09. 2018

카우나스 산책: 성당, 광장, 성채

2017년 8월 28일

2016년 8월 말 리투아니아의 여름 하늘은 화창했다. 객원교수로 파견되어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도착한 뒤 처음 맞는 일요일이었다. 인구 300만 명이 채 안 되는 리투아니아는 대부분이 가톨릭이다. 러시아계 인구도 꽤 있어서 러시아 정교회도 있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가톨릭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심지어 카우나스는 수도인 빌뉴스보다 중앙, 즉 서쪽에 위치해 있고 폴란드에 더 가깝기도 하다. 유럽에서 가장 늦게 개종한 나라라고 하지만 지금은 제일 독실한 나라 중 하나일 듯하다. 주일 아침 거리는 조용하고 성당들의 종소리가 들린다. 성당마다 미사에 사람들이 가득해서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문 앞까지 꽉 차 있다. 유명하고 오래된 성당들도 텅 비어있게 마련인 서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들이다. 평일에도 저녁 5시나 6시마다 모든 성당에서 기도회가 있고, 심지어 주중 낮 시간에도 성당에 들어가 보면 누군가 기도하거나 특정한 행사를 치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학교에서도 ‘종교’ 과목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교육과정으로 배운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출석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은 여기도 있지만, 아직은 가톨릭 교회가 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리투아니아의 가톨릭교회는 민족주의적 구심점이자 일상생활이다. 주중에도 항상 누군가 의식을 치르고, 주일마다 가득 찬다.

첫 일요일 아침 일찍, 처음으로 구시가지 끝까지 구경 겸 산책을 갔다. 관광객으로 카우나스에 온다면 바로 눈에 띄는 건물은 커다란 러시아 정교회풍 성당이다. 숙소로 머물던 국제기숙사에서도 가까운 이 성 미카엘 성당은 18세기에 러시아 지배 하에서 러시아 황제의 명령으로 지은 것이고, 고층 건물이 거의 없는 카우나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중 하나다. 정교회라는 뜻에서 소보라스(Soboras)라고 더 많이 불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역시 가톨릭 성당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의자를 놓지 않고 서서 예배하고, 악기도 쓰지 않기 때문에 내부 공간이 크지가 않다. 그래서 이 성당도 외관은 거대하지만 정사각형 구조이고, 내부 예배 공간은 가톨릭 성당에 흔히 보이는 십자형이나 장방형보다 좁게 느껴진다. 가톨릭 성당으로 바뀐 지금은 이곳도 주일 미사에 사람이 꽉꽉 차는데, 아무래도 많이 수용하기는 버거워서 그런지 카우나스의 주요 성당이 되지는 못하였다. 주요 성당들은 구시가에 밀집되어 있다. 동쪽의 자유로 시작 지점에 위치한 소보라스를 기점으로 동서로 쭉 뻗은 거리가 나온다. 자유의 거리(‘자유로’로 약칭한다)를 산책하듯 2킬로미터쯤 걸으면 돌길이 깔린 구시가지로 접어들게 된다. 구 시청사를 중심으로 한 광장을 지나 강변의 카우나스 성채까지 구경하는 것이 코스다. 

소보라스(Soboras)라 불리는 예전 러시아정교회 성당 건물(지금은 가톨릭 성당)은 직선으로 뻗은 자유로의 시작이다.

구시가지로 향하는 길은 점점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자유로는 1차 대전 이후에 조성한 거리이므로 근대적인 느낌이고, 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카페나 식당도 좀 더 캐주얼하고 현대적이다. 구시가지가 가까워지면 바닥이 보도블록에서 네모진 돌들을 박아 넣은 중세 풍의 돌길로 바뀐다. 살짝 구부러진 구시가 길로 접어들면 기념품 매장의 비중이 늘어나고, 카페나 바, 식당도 전통식을 강조하거나 좀 더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집들로 바뀐다. 옛 한자동맹의 상업건물 흔적들도 남아있는 소박하고 예쁘장한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유럽 옛 도시 어디에나 그렇듯 광장이 나타난다. 지금 그 광장 중심에는 하얗고 뾰족한 구 시청사 건물이 있지만, 광장 주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역시 성당이다. 베드로와 바울의 이름을 딴 카우나스 대성당은 그 광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주기적인 미사는 물론이고 중요한 행사나 음악회도 종종 열린다. 파견 객원교수로 가르치게 된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교(VMU)의 9월 개강 때마다 1학년 신입생들의 입학 행사도 이곳에서 미사로 시작하게 되어 있었다. 

중세풍의 구시가 거리 끝으로 구시청사와 성당으로 둘러싸인 광장이 나온다. 주교좌 성당은 광장 입구의 '베드로와 바울' 성당.

광장 건너편에는 예수회에 속하는 프란치스코 성당이, 그 뒤로 강변 나지막한 위치에는 비타우타스 대공의 이름을 함께 붙인 마리아 승천 성당이 자리를 잡았다. 마리아 승천 성당 벽에는 수표교 같은 표시가 있는데, 위치가 낮다 보니 홍수 때마다 강이 범람할 때 측정하는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이 외에도 자유로와 구시가 길을 따라 작은 성당이나 가톨릭 관련 부속건물이 즐비하다. 수 차례 전쟁으로 부서지고, 러시아나 소련 치하에서는 정교회로 바뀌거나 아예 창고나 병원 같은 세속 건물로 용도변경을 당한 경험들이 다양하다. 리투아니아가 해방되고 독립국가가 된 이후 곧 가톨릭 성당으로 복원되었다. 수백 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되살려 복원과 개축을 계속하고 있으며, 교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활발한 성당들이다. 종교적 성격과 동시에 리투아니아의 민족적 자긍심을 대변하는 상징물들이 되었다. 빌뉴스는 러시아와 가깝고 러시아 인구도 많아서 가톨릭 성당과 러시아 정교회가 혼재되어 있다. 그와 달리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 어를 쓰는 가톨릭 성당 일색이고, 그래서 리투아니아 가톨릭 신앙의 핵심 지역은 카우나스라는 자부심이 있다. 

광장 뒤편에 자리한 주교좌와 신학교. 경내를 통과하면 카우나스 성채로 통하는 지름길이 된다.

광장을 지나 뒤편으로 주교좌와 신학교를 지나면 카우나스 성채와 함께 공원이 펼쳐진다. 이곳은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두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신학교 건물을 통과하는 지름길을 통과하면 바로 카우나스 성채가 보이는데, 원래 사각형의 요새였겠으나 그 한 귀퉁이만 폐허로 남은 것을 깔끔하게 새 벽돌로 쌓아 올렸다. 성곽 일부와 탑 하나다. 이름이 ‘성(castle)’이라서 그럴듯한 성채를 상상하면 실망을 금치 못할 조형물이다. 그래도 푸른 풀밭과 두물머리 강변의 풍경 속에서 꽤나 예쁜 사진 배경이 된다. 워낙 문화재가 희귀한지라 이 성곽 한 귀퉁이도 너무나 소중해서 발굴과 복원이 끊임이 없고 입장료도 2.5유로나 된다. 들어가 보면 지하에는 옛 전사들의 유령 전설까지 소개해 가며 성의껏 전시를 해 놓았지만, 정작 이 성채에 관련한 자료는 많지가 않다. 십자군 후기 시절부터 독일, 러시아 등 침입하는 세력마다 부수고 다시 짓고 빼앗아 사용하던 곳이니 유물이 나온다 해도 정체성을 규정하기가 쉽지 않을 판이다. 그래도 1920년대 짧은 독립공화국 시기부터 재정을 써 가며 발굴 복원을 했고, 냉전 기간에도 발굴과 복원이 지속된 리투아니아의 중요한 유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십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마음에 든다. 

카우나스 성채(Pilis). 작은 탑만 남았고 너무나 새것이지만 소중하게 관리하는 문화재다. 두물머리 전망이 탁 트인다.

성채가 위치한 곳은 공원의 극히 일부일 뿐, 이 두물머리 공원은 꽤나 넓어서 카우나스 시민들에게 꽤 좋은 휴식, 운동, 피크닉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강 합류 지점에는 리투아니아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이전부터 있던 이교도적 제단 흔적이 남아있다. 가톨릭 개종 이전 이교도의 기억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또 다른 민족 정체성의 뿌리가 된다. 중세 시기 독일 기사단에 의해 식민화되면서 개종이 시작되었으니 그 당시에는 가톨릭 선교도 외세의 압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전통예술이나 축제 등에 이교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는데, 자주 보거나 느끼기는 쉽지 않다. 첫 산책에 꽤 멀게 느껴졌지만, 이 구시가까지의 산책은 사실 천천히 걸어도 끝에서 끝까지 30분 정도다. 그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기억과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살면서 자주 걸으며 조금씩 느껴보는 재미가 있다. 

리투아니아의 긴 강 두 개가 합쳐지는 카우나스의 두물머리 공원에는 옛 이교 제단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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