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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Apr 19. 2018

대공의 궁전 박물관에서 역사 읽기

2018년 1월 19일

장기 체류를 했음에도 리투아니아라는 나라는 미지의 세계 느낌이 난다. 역사의 개략적인 내용을 조금 알게 되었다 하여 감히 한 나라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객원교수로 한국학 수업을 하면서 내가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도 새삼 깨닫는데, 다른 나라 한두 해 살아보고서 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자국이든 타국이든,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오랜 기간 다양한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공동체를 이해하는 일은 끝이 없다. 집 근처 산책 중에 보이는 풍경도 매일매일 색깔과 표정이 다르다. 그래도 많이 다녀보고 들여다보면 더 보고 듣고 알게 되겠지 싶어, 여유 있는 날을 골라 박물관을 한 군데씩 꼼꼼하게 도전하기로 했다. 빌뉴스에도, 카우나스에도 크고 작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다. 카우나스의 현대미술관이나 악마 박물관도 꽤 명물인데, 일단 빌뉴스의 대표적인 박물관부터 검색을 했다.

해가 밝은 날이면 흰 건물이 눈부신 대공의 궁전 박물관. 앞의 동상은 빌뉴스 창건자 게디미나스 장군

어느 나라나 중심이 되는 박물관이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흥했던 나라들은 자국보다 타국의 문화재나 예술품으로 채운 박물관이 더 유명하다. 리투아니아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당연하게도 자국 역사와 대표적인 유물을 내세운 박물관이 필수 코스다. 몇 년 전 새로 단장해서 개관했다는 '대공의 궁전(Palace of the Great Duchys)' 박물관이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역사박물관이다. 대공의 궁전은 빌뉴스 대성당 광장에 있으니 피해 갈 수 없는 위치다. 대성당과 거의 붙은 거대한 흰 건물로, 복원이라고 쓰고 신축이라고 읽어야 할 새 건물이다. 흔적도 남지 않았던 자리에 새 궁전을 올리고 박물관으로 깔끔하게 꾸며놓았다. 게디미나스 성채를 바라보며 대공의 궁전과 대성당 사이를 지나 강변 쪽으로 나가다 보면 국립박물관이 하나 더 나오는데, 소박한 직사각형의 2층 건물 앞에 리투아니아 역사상 유일한 왕이었던 민다우가스(Mindaugas) 왕의 석상이 있다. 민다우가스 왕이 지키는 국립박물관은 민속박물관 성격이고, 공식적인 역사는 크고 잘 꾸며진 대공의 궁전에 자세히 나열되어 있다.

대성당과 대공의 궁전 사이로 통과하면 나오는 민속박물관과 민다우가스 왕 석상. 국립박물관으로 엮인 박물관이 몇 군데 더 있다.

대공의 궁전 자리는 냉전 시기에 발굴을 시작했다고 한다. 들어가면 0층(지하)은 땅에 묻혀있던 벽의 기단부와 하수로 등을 유적지처럼 그대로 펼쳐두고 밟지 않게 데크를 따라 걸어가며 보게 해 놓았다. 이 박물관에서 가장 자부심이 있을 법한 부분이 바로 이 땅 밑의 유적이다. 그 위로는 4층 전망대에 이르기까지 각 방마다 소수의 가구와 초상화, 무기류, 각종 파편, 해당 시기의 소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비교적 화려했던 몇몇 방들을 복원한 곳도 있지만 사실상 유물이 별로 남은 게 없어 볼거리는 빈약하다. 대신 참으로 자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정치경제적 변화와 대외관계는 물론, 각 대공과 대공비의 개인사와 뒷이야기까지 패널에 빼곡하게 써서 붙여놓았다. 사진과 지도, 계보 등 학습자료로서는 대단히 잘 정리되어 있다. 리투아니아어와 영어 병기가 완벽해서, 작정하고 읽기 시작하니 중세 이래 리투아니아 역사를 훑는 데 거의 세 시간이 걸렸다. 오디오 가이드 들으며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신청하지 않고 눈으로만 보고 읽었는데, 오디오를 했다면 더 자세했을지도 모르겠다. 

중세 유적을 보존하고 데크로 돌아볼 수 있게 해 놓은 지하공간

자부심은 넘치지만 흥미로운 볼거리는 별로 없는 이 넓은 박물관에 적혀있는 모든 영어 설명을 다 읽은 한국인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너무 자세해서 오히려 굵직한 내용마저 뒤죽박죽이 되었다. 유럽 중세 변방의 대공국 이야기는 그야말로 합종연횡, 막장드라마, 성 밖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조차 몰랐을 귀족 집안들의 권력투쟁 이야기다. 13세기 민다우가스 왕 이후로 대관식 치른 왕 없이 전략적인 선택을 거듭하면서 가문이 여러 차례 바뀐 대공들의 리투아니아는 15세기 초, 모두가 다 아는 비타우타스(Vytautas) 대공 시기에 영토와 정치력 면에서 황금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쇠락도 빨라서 러시아(모스크바 공국), 스웨덴, 독일계 기사단에 계속 시달리다가 1569년에 폴란드와 연합(commonwealth)을 이루면서 사실상 합병되어 독립적인 국가 성격은 없어졌다. 후반으로 갈수록 대공들 대부분은 폴란드에서 자라고 교육받아 폴란드어를 쓰는 경우가 많았고, 거주지도 대부분 폴란드였으며 리투아니아는 필요할 때만 오고 가는 식이었다.

리투아니아 대공과 대공비들의 관 복제품

동아시아 중세, 근세 왕국들과 너무 달라서 지배-피지배 관계를 유기적으로 인식하는 공동체 의식은 도무지 찾기가 어려웠다. 중세 유럽에서도 변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리도 아니다. 리투아니아 대공의 역사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 시기 더 잦은 대공 교체와 주민들과의 괴리감을 보이면서 사라져 갔다. 다른 유럽 국가들이 16세기 말부터 근대 민족국가의 성격을 띠고 독립국가로서 자리를 잡아갈 때 독립성을 잃고 일종의 공터로 남아있었던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국제무대에서 국가로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18세기에 수 차례 진행된 열강의 '폴란드 분할' 때 오롯이 러시아 차르에게 넘어간다. 그 분할조차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 분할'이라고 불러주는 이 없고 그냥 폴란드 분할이라 부른다. 이 박물관만 길게 연합왕국 분할이라고 써놓았다.

대공국 시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방들은 분위기를 살려 복원해 놓았다.

박물관이 초점을 두는 시기는 지금 리투아니아를 구성하는 사람들과는 좀 달랐을 사람들의 중세 시기다. 그나마 대공국이 나름대로 리투아니아라는 별도의 정체성을 가졌던 시기는 16세기 이전이다. 20세기 초 1차 대전 이후에 다시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의 근대 민족국가로 재탄생하기까지 삼백 년이 넘는 기간은 이름조차 없었다. 전성기 시절에도 일반 리투아니아 주민들은 지도층과 괴리된 채 사용 언어도 완전히 다른 농노일 뿐이었다. 리투아니아어는 피지배 농노의 언어라고 농담하듯 말하는 이유다. 강대국에 끼인 근대사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는 해도 그 전의 역사적 배경이 너무나 다르니 두 나라가 공통점이 많다고 쉽게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2017년 여름 모교의 학부 후배들이 단체로 발트 지역 탐방 중에 대공의 궁전을 다녀갔다. 한꺼번에 40여 명의 한국인이 관람한 것도 처음일 듯.

흥미로운 유물보다는 교과서를 독파하듯 역사를 읽게 만들어 놓은 박물관이다. 읽다 보니 오기가 생겨 끝까지 다 읽었는데 나중에는 배고프고 목말라서 4층 전망대에 올라갈 기운조차 없었다. 거의 기어올라가다시피 한 전망대는 그래도 눈 덮인 빌뉴스 대성당과 게디미나스 성채, 광장을 색다른 각도에서 구경시켜 주었다. 전망대에서 잠깐 쉬면서 그래도 이 정도면 리투아니아 역사를 한 번 훑어봤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물론 학습량이 너무 많아서 기억에 많이 남지는 않았지만 성취감이 남는다.

대공의 궁전 박물관 꼭대기 전망대에서 본 빌뉴스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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