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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y 05. 2018

빌뉴스 구시가의 봄, 민속박물관 & 회화미술관

2018년 3월 18일

드디어 봄 빛깔 하늘이 선명해진 3월의 한 주말, 빌뉴스 구시가를 찾았다. 아직 영하의 기온에 공기는 엄청나게 차가웠지만 화창한 하늘과 햇살이 봄소식을 외치는 것 같았다. 춘분이 가까워져 낮이 밤보다 길어지려 하는 감동적인 봄맞이였다. 스마트폰 사진을 찍다 보면 손이 시리지만 햇빛만 있으면 몸과 마음이 충전되어 돌아다니게 된다. 주말 일요일에 빌뉴스의 강 선교사님 댁에서 예배를 볼 겸 방문하면 보통 오후 2~3시 기차로 돌아오는데, 화창한 봄 햇살을 지나칠 수 없어 구시가에서 버스를 내렸다. 구시가 언덕의 게디미나스 성채가 보이는 강가에 내리면 빌뉴스를 관통하는 네리스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북쪽 신시가지, 이편 남쪽 구시가지가 대비되어 보인다. 밝은 햇살 아래 얼음이 떠내려가는 네리스 강변에는 봄을 맞으러 산책 나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드디어 봄이 겨울을 이긴 듯, 얼음이 떠내려가는 네리스 강변

강변에서 대성당 광장으로 가는 방향에 민다우가스 왕의 석상이 지키는 소박한 국립박물관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Lithuania)은 산하에 여러 작은 박물관을 포함하고 있는데, '신 무기고(New Arsenal)'라 불리는 이 건물이 리스트 첫 번째다. '구 무기고(Old Arsenal)'도 같은 계열 박물관이고 게디미나스 성채도 이 국립박물관 산하에 속한다. 성채 옆에 자리 잡아 중세부터 다양한 용도로 쓰던 건물을 18세기 후반에 새 무기고로 개조하였고, 20세기 들어 역사 및 민속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명칭은 국립박물관이지만 대성당과 이어진 대공의 궁전 박물관이 더 자세한 역사박물관이고 이곳은 민속박물관에 가깝다. 

유일하게 왕이 되었던 민가우가스 석상이 있는 '신무기고'의 민속박물관

민속박물관도 박물관 리스트 중에는 기본적인 방문 대상이었다. 대공의 궁전을 본 후에 상대적으로 낡고 작은 이 박물관에 딱히 볼 게 있겠나 싶었지만, 안 보기도 뭣해서 2유로를 내심 아까워하며 들어갔었다. 보고 나니 2유로는 절대 아깝지 않다. 밖에서는 소박한 건물인데 장방형으로 긴 2층 구조에 내용은 상당히 많았다. 유물은 대공의 궁전 박물관보다 훨씬 많고 다채로웠다. 중세 리투아니아 대공국 형성과 번영을 보여주는 전시로 시작한다. 당연히 초상화, 제단화, 귀족의 장식품, 생활용품이 대다수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을 거쳐 러시아 제국 치하까지 귀족층이 가졌던 소장품들이다. 대외교류를 보여주는 선물과 기념품 중에는 일본 천황이 러시아 인사에게 선물했다는 부채도 있고 심지어 이집트 미라도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역시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최전성기인 비타우타스 시절 전후가 자세히 나온다. 유명한 잘기리스(그륀발트) 전투도 축소모형과 시청각 자료로 정성껏 설명해 놓았다. 

국립박물관 신 무기고의 민속박물관 이모저모

1918년에 공화국으로 독립(국가회복) 하기 전까지 러시아 제국의 지배 하에서 힘들었던 생활을 보여주는 것을 끝으로 역사와 맞물린 전시는 대략 끝난다. 그 후로는 민속 문화를 보여주는 방들이 이어진다. 민속의상, 전통 주거양식, 가구, 소품이 실생활을 재연하듯 꾸며져 있다. 마지막은 유명한 나무십자가들이 장식한다. 색실로 짠 문양과 더불어 나무십자가도 뿌리 깊은 이교 신앙의 흔적을 보여주고, 리투아니아 특유의 민속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꽃이나 새, 기하학적 문양을 조합해서 만든 작은 예술품도 많다. 러시아 치하에서 유형지로 보내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시베리아에서도 민속 문양의 공예품들을 계속 만들어냈고 많이 남아있다. 작은 파우치나 성냥갑, 하다못해 작은 가죽 조각이나 메모지에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유형지 물건들은 문화적인 정체성을 지키는 게 얼마나 강한 힘이 있는지 대변해주는 유산이다. 

민속박물관을 지나 대성당 정면 방향으로 돌아 나오면 광장을 마주하게 된다. 탁 트인 공간에 파란 하늘과 흰 건물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구름이 끼는 날이면 바닥도 건물도 하늘도 모두 희뿌연데, 봄을 맞이하는 파란 하늘과의 대조는 더없이 청량하고 고맙다. 흐린 날이면 흐릿하게 보이는 게디미나스 장군(대공) 동상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너무나 선명한 나머지 더 커 보였다. 찬 공기로 손가락이 시렸지만 다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다. 

광장에서 구시가 골목으로 접어들면 다닥다닥 붙은 예쁜 카페들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기차를 한 시간 더 미루고 한 카페에 앉아버렸다. 카우나스에도 맘에 드는 카페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빌뉴스가 훨씬 다양하고 세련되어서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한국 교환학생들이 여기서 지내다 보면 대도시 서울은 어느새 잊히고, 서유럽의 중견급 도시만 가도 갓 상경한 시골 소녀처럼 도시 구경에 들뜬다고들 한다. 카우나스에 살다 보니 빌뉴스에만 와도 그런 느낌이다. 도시에 산다거나 그 도시가 크다는 것에 개인이 자부심 느낄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물질적, 문화적 혜택을 빨리, 많이 누리는 곳은 큰 도시다. 큰 도시에 익숙한 메트로폴리탄들에게 현저히 작은 도시에서의 삶은 즐거운 경험이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이 일시적인 체류나 여행일 경우이다. 기간이 매우 길어지거나 끝이 없게 되면 즐기기보다는 상실감이나 박탈감이 들 가능성이 높다. 

아직 추워서 패딩을 입지만 봄 햇살로 사람이 부쩍 늘어난 빌뉴스 구시가 골목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빵을 뜯다 보니 바깥의 맑고 밝은 날씨가 곧 끝날 것 같은 조바심이 생긴다. 미뤄둔 기차 시간에 맞추어 다시 걷다가, 평소 심상히 지나치던 건물에 붙은 특별전시 포스터를 보고 말았다. 구시가에서 성당을 제외하면 눈에 잘 띄는 건물은 대부분 식당, 카페, 호텔이지만, 잘 보면 박물관, 전시관, 누군가의 기념관이 섞여 있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밋밋한 벽에 뚫린 터널식 문을 잘 보니 빌뉴스 회화 미술관(Vilnius Picture Gallery)이었다. 리투아니아 국립미술관(Lithuanian Art Museum) 산하에도 여러 미술관이 있는데 그 리스트에 첫째로 나오는 곳이다. 포스터는 빌뉴스 창건자로 알려진 게디미나스 대공의 편지를 특별 전시하는 기한이 마지막 이틀 남았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이틀 남았다는데 놓치기 아까워서 들어갔다. 원래 2유로인 입장료를 오늘은 특가로 0.2유로만 받고 있었다. 왠지 횡재한 기분으로 둘러보는데, 안쪽으로 꽤 넓은 뜰을 둘러싼 큰 저택을 다 쓰는 미술관이었다. 17세기 초부터 자리 잡고 증축과 개축을 거듭한 유력 가문의 성(저택)이었다고 한다. 역시 유럽 건물은 거리에서는 외벽만 보일 뿐, 안에 들어가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기차 시간을 또 미루고 들어가 보았다.

유력 가문의 궁전(저택)을 사용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국립미술관 산하 빌뉴스 회화 미술관

특별 전시는 정말 그 편지 한 장이 다였다. 그래도 1323년에 썼다는 게디미나스 대공의 친필 편지 원본이 유리판 안에 멀쩡히 들어있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서유럽의 다른 도시국가들에게 쓴 공문서 같은 편지인데 ‘빌뉴스’라는 도시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문서라고 한다. 영어로 친절하게 번역도 되어 있다. 빌뉴스를 창건했다는 소개, 교황의 승인도 받고 성당과 수도원도 들어선 안전한 도시라는 내용, 그러니 기사, 상인, 기술자들이 오면 토지도 주고 세금 혜택도 주고 차별 없이 법적인 보장을 하겠다는 내용이다. 신도시에 투자유치를 하려는 초청장이었다. 이 편지가 빌뉴스 창건의 근거자료가 되었다. 그래서 빌뉴스는 2018년에 창건 695년이 되었다고 기념하고 있다. 

특별전시였던 빌뉴스 창건자 게디미나스 대공의 친필편지와 참고자료들

게디미나스 대공의 편지 한 장 외에는 상설전시였는데, 생각보다 이것도 흥미로웠다. 궁전 같은 저택이었으니 몇몇 방들은 재연하듯 살려서 빌뉴스 유력 가문의 호화 생활을 느끼게 해 놓았다. 유럽 어느 곳을 가도 귀족층이 열광한 고급 물건들은 프랑스나 이태리제 물건이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회화 미술관이었으므로 그림이 가득한 전시실들이 이어졌다. 17~19세기 그림이 주류였는데, 빌뉴스나 리투아니아를 그린 그림이 많을 줄 기대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리투아니아 예술가가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가서 그린 그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유학을 갔던 예술가가 많았고 리투아니아는 당시에 러시아 치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다양한 풍경은 이곳 예술가들에게도 로망이었는지 이탈리아 풍경화만 모아 놓은 전시도 진행 중이었다. 

인상적이었던 빌뉴스 유적의 상상 복원도와 말린 꽃 다발을 들고 있는 리투아니아 여인

전시 끝부분의 19세기~20세기 작품에 이르러서야 리투아니아 사람들, 리투아니아 경치, 특히 빌뉴스를 그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몇몇 화가들 사이에서 조국 리투아니아를 그리자는 움직임이 있었던 듯, 같은 화가 이름이 계속 등장했다. 그중 한 화가가 빌뉴스의 옛 건물 기록을 연구해서 당시에는 무너지고 없던 성채나 대공의 궁전, 성당을 상상하여 그렸다는 예쁜 그림들이 있었다. 그림 속 건물들이 지금 실제 복원된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서 놀라웠다. 그림 그릴 때는 흔적만 남은 유적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인 (또는 재건한) 빌뉴스의 랜드마크들이 당시 풍경과 거리 속에 들어가 있는 그림들도 흥미로웠다. 서울을 이렇게 그린 그림이 있나 생각해 봤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빌뉴스 관광의 시작점인 새벽의 문이나 작은 골목 그림들은 실제보다 훨씬 예쁘고 분위기가 있어서 작가들의 애정이 느껴졌다. 

지금도 익숙한 빌뉴스의 건물과 골목의 당시 모습들. 성당 앞 행사, 새벽의 문 앞 기도회, 골목의 모습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도시는 애정을 가지고 지키는 눈길과 손길이 있어야 오랜 생명력과 문화적 저력을 유지하게 된다. 천재지변이나 외침으로 파괴되어도 기억하고 되살리는 노력이 있으면 되살아나고 이어진다. 특히 문화적인 기준을 잡고 특정한 모습을 유지하려는 공감대가 있어야 그 모습을 이어갈 수 있다. 빌뉴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도시들도 신시가지는 얼마든지 모던하게 개발을 거듭하지만 구시가 중심은 각종 규제를 두어서 스스로 정한 '옛 모습'을 보존한다. 한국은 목조건축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남은 게 없다는 한탄만 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오래된 군사시설이나 저택을 개조한 박물관들이 곳곳에 숨어있고 보면 볼수록 많은 이야기가 드러나는 이런 구시가는 서울에는 불가능한 것일까? 최근에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서울편을 읽었는데 내가 몰랐던 서울 중심의 소소한 옛 모습을 찾고 지키는 노력이 있음에 참 감사했다. 시민들이 공감을 보태면서 노력을 계속하면 역사와 문화가 쌓인 서울 구시가의 모습은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매력적인 모습이 되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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