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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운 Nov 16. 2024

이상한 병원

뭔가에 홀린 듯 들어간 병원의 시설은

제법 낙후되어 있었다.

'나갈까?'라고 생각하던 찰나

저 멀리 머리에 새하얀 까치집을 지은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낡은 슬리퍼를 끌며 

걸어 나오셨다.


"어떻게 오셨어요?"

보기와 다르게 목소리는 또 왜 이리 우렁찬지.

"아 남성난임전문이라기에 들어와 봤어요."

"정자가 시원치 않나 보네요"

초면에 돌직구를 날리는 할아버지가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병원이니까 

이해하기로 했다.


"네. 이런 것도 개선이 될 수 있을까요?"

"음 환자분 하기 달렸죠. 일단 접수부 터하시죠. 이름이?"

"김관희입니다."

"네 관희씨 따라오세요."

할아버지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로 들어간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낡은 가운을 걸쳐 입었다.

얼마나 오래 입었던 건지 

가운 밑단은 닳아있었고 

주머니는 해져있었다.

'이 할아버지가 의사라고...?'


"저희는 의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김관희씨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병원입니다."

할아버지는 삐그덕 대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삐그덕 대는 의자만큼 신뢰가 가지 않는 

할아버지의 말에 의사 선생님을

 의심해 보긴 처음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

"관희씨 여기에 오신 이유가 

정자가 건강하지 않은 게 맞죠?"

"네..."

"그럼 김관희씨 스스로 건강한 정자를 

채취해 오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정자검사를 위해 수없이 채취한 내 정자들이 

건강하지 않다고 이미 결론이 난 상황에서

건강한 정자를 채취해 오라니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건강하지 않은데... 

어떻게 건강한 정자를 채취한단 말씀이신지... “

”우리 병원에선 가능합니다. 

일단 소견서를 받으시고 정자채취실로 가시죠. “


신뢰가 도무지 가지 않는 선생님의 말에 

당장 병원을 나가고 싶었으나 

여기까지 온이상 그냥 선생님말에 

따르기로 했다. 

소견서를 구기듯 주머니에 쑤셔 넣고 

정자채취실로 향했다.


”정자채취는 많이 해보셨죠?

선생님은 정자채취용 컵을 쥐어주고는 

진료실로 돌아가셨다.

오래된 병원답게 정자채취실도 

굉장히 열악했다. 

어쨌든 들어온 이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채취실의 모니터를 켰다. 

어떤 영상을 볼까 고민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화면에 의사선생님이 나왔다.


정자채취실 화면에 의사 선생님이 나오다니 

이병원은 정자채취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옆에 벽에 달력이 보이죠 관희씨?”

“네” 

“관희씨가 생각했을 때 가장 건강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달력 연도를 바꿔봐요.”

‘뭐야 미신인가?... 

건강했던 시절? 대학생 시절이겠지?’

적응이 된 건지 이제는 뭐라고 하던지 

더 이상 이상하게 들리지도 않았다. 

달력의 연도를 2024년에서 

2006년으로 넘겼다.


모니터 속 할아버지는 사라졌고 

정자채취를 도울 영상리스트가 다시 나타났다. 

‘뭐야?’ 조금 이상했지만 정자채취를 위해 열을 올렸다.     

채취가 끝나고 채취실 밖으로 나왔다.

이 순간은 언제나 민망하다.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적막한 병원안에 나 혼자 컵을 들고 있었고

선생님께 전달하러 진료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진료실 문을 열었다.

허름한 진료실 그대로인데,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달라졌다.     

까치집처럼 하얗던 머리카락은

칠흑같이 검은색으로 변해있었고,

구부정하던 허리는 반듯하게 펴져있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아까 그 할아버지가 맞았다.     

낡은 가운의 주머니는 여전히 해져있었고,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순간 고개를 저으며 눈을 비볐다.

'내가 잘못 본 건가...'

하지만 눈을 떴을 때도

젊어진 의사는 그대로였다.


“누구시냐고요!!”

젊은 의사가 나에게 소리쳤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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