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입사 전 가장 큰 걱정은 '어떤 동료들을 만날까'였다. 워낙 다문화국가이기 때문에 국적이 겹치는 동료가 한 명도 없었고 문화 차이로 인해 텃세나 어떤 불화를 겪을까 두려웠다. 감사하게도 내가 일했던 매장은 모두 단합도 잘되고 분위기가 좋았다. 일하는 기간 동안 동료들끼리 불화가 일어났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적어도 우리 매장에서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성립되지 않았다. (물론 호텔 내에는 많았다) 잘 챙겨준 동료들 덕분에 퇴사 후에도 자주 만남을 갖고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람 스트레스가 아예 없을 수는 없는 일. 동료가 아닌 손님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한국 못지않았다. 어딜 가나 진상은 있다. 그들의 눈에 나는 그저 작은 동양인 여자에 불과했고 대놓고 티는 안내도 인종차별을 꽤나 느낄 수 있었다. 백인 동료에겐 웃으면서 주문하며 스몰 톡을 이어가다 나를 보고 바로 정색을 하거나 글로는 설명하기 다소 힘든 순간들이 가끔 있었다. 속셈을 알기에 이런 사람들은 네 다음 레이시스트~ 하고 넘어가는 게 속 편하다. 이외에도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어이없는 일이 참 많이 일어났다. 어딜 가나 감정노동은 뭐 같은 일.
일에 적응이 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일이 지겨워져 버렸다. 나는 풀타임이었기 때문에 초반 한두 달을 제외하고 거의 주 40시간씩 가끔은 초과해서 근무했다. 카페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알 테지만 한번 루틴을 익히고 나면 하루하루가 똑같아진다. 더군다나 우리 매장은 오피스 상권이라 많은 손님들이 같은 시간대에 출근도장을 찍듯 같은 음료를 마시곤 했다.
출근 후 2~3시간은 신나게 일하다가 러시를 쳐내고 나면 사람에 치여 급격히 텐션이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풀타임 잡을 찾아 적응하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고 3개월씩 오르는 시급이 발목을 잡았다. 해결방안을 찾고자 하루 일상 중 일이 차지하는 중요도를 낮추기로 했다. 운동도 하고 쉬는 날은 무조건 밖에 나가고 조금 더 행복한 외노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러 캐나다에 온건 아니니까.
그래서 영어 얼마큼 하셨는데요? 영어 많이 늘었나요?
출국 전 나는 사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은 것 치고는 영어를 꽤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토익 점수도 괜찮았고 평소 영어공부에 흥미도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쓰이는 영어는 정말 달랐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말하는 연습이 충분히 되지 않았기에 아는 문장도 입에서 한 번에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아마 많은 한국인들의 문제점일 테지만 자기 검열이 너무 심했다. 말하기 전부터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곤 했다. 한국인들끼리 영어 평가를 심하게 하는 문화도 한몫 했다. 유튜브를 보면 배우 혹은 가수들의 영어를 평가하는 영상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렇게 평가받기 위해 영어를 한 게 아닐 텐데 말이지.
아무튼 한인 가게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영어권 국가에서 먹고살려면 어떻게든 영어를 해야 한다. 너무 뻔하지만 영어가 느는 건 결국 본인의 공부량에 달렸다.
사실 카페에서 제일 많이 쓰는 표현은
How are you. What can I get for you?
Would you like a receipt?
Thank you / Have a good day
이 정도로 틸에 서서 기계적으로 같은 말만 반복하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
집에서 책으로 공부를 하던 밖에 나가 외국인 친구를 사귀던, 일단 시도를 해야 는다. 나는 가져갔던 영어책을 한 번도 펼쳐보진 않았지만 틈틈이 유튜브 강의를 보고 동료 및 친구들과 영어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스타벅스에서 기대했던 '스몰 톡'은 매장이 많이 바쁜 탓에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동료들과 얘기하는 시간이 더 알찼다.
1년 동안 공부보다 일에 집중했기에 이미 굳어버린 혀가 원어민처럼 말랑해지지 않았다. 영어가 많이 늘었다기보다는 말하기가 수월해졌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워홀 생각 중인데 영어를 못해서 걱정이라면 공부를 하면 됩니다!